tvN 수목 드라마 <마더>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누구나 엄마가 되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엄마가 있기에, '엄마'는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단어다. 이 드라마의 원작 이야기를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겁이 났다. 눈물샘 자극하는 어머니의 희생이, 비현실적인 모성 신화가 또 한 번 드라마를 통해 강화되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게다가 아동학대가 모티브라 마음 아플 각오를 하고 보기 시작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이 드라마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극적이고 지나치게 마음 아픈 설정이긴 하지만 <마더>에서는 '모성신화'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모성이 그려지고 있었다. <마더>의 여성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성의 다양한 면을 살펴본다.

자신을 위해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통해 성장하는 엄마 : 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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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 tvN


아이를 유괴(?)해 엄마가 되는 주인공 수진(이보영)을 키워 준 엄마이자 배우인 영신(이혜영)은 아빠가 다른 세 딸을 키웠다. 젊은 날 영신은 남자에게 배신당한 후 스캔들로 망가진 자신의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 보육원을 찾았다가 수진을 만나 심리적 안정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수진을 입양한다. 즉, 자신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엄마가 된다.

때문에 어린 시절 수진은 영신의 투사의 대상이 된다. 분장실이든, 촬영장이든 늘 수진을 데리고 다니는 영신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수진을 꾸며준다. 수진은 영신의 분신과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다. 영신의 모성은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혹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가 대신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아이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고, 교육에 열을 올리는 현대의 어머니들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수진은 이런 엄마의 사랑에 숨이 막혔을 것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 10년 넘게 엄마와 연락을 끊고 지낸다. 그리고 이 시간들은 엄마 영신에게도 자식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게 만드는 깨달음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수진을 다시 만난 영신은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수진에게 입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됐다.

"수진아, 이제 더 이상 너는 나한테 속해 있지 않아. 나한테 아무런 의무도 없고, 마음껏 날아가."

그리고 수진을 진정 떠나보낼 수 있느냐는 재범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지금까지는 수진이가 어린 아이라고 생각해서 나도 어린 아이처럼 행동했는데 나도 엄마로서 성장한다는 걸 배웠다고나 할까?"

즉, 영신은 아이를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대상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아이를 통해 자신 역시 보다 독립된 사람으로 성장하는 엄마다.

아이를 위해 인생을 바친, 희생하는 엄마 : 홍희

한편 수진의 친모 홍희(남기애)는 자신과 수진을 학대한 남자를 죽이고 살인자가 된다. 그리고 살인자의 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수진을 보육원에 맡기고 자수한다. 아이를 버리고 모든 것을 체념했던 홍희는 TV에서 수진이 유명 여배우 영신에게 입양됐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TV에서 너를 본 순간, 누가 뒤에서 떠미는 것처럼 막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쩌면 다시 엄마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혹시 내가 필요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그 후 홍희는 수진이 학교를 다니는 길목에 이발소를 차리고 수진을 지켜보는 것으로, 그리고 혹시 필요할까봐 수진을 위해 적금을 부으며 자신의 인생을 보낸다. 홍희에게 아이는 자신의 모든 것이다.

홍희의 말처럼 "내 아이를 다른 삶으로 날아가게 하고 싶어서" 아이를 버린 엄마로서의 죄책감과 슬픔을 스스로 도맡았고, 그것도 모자라 아이 곁을 맴돌며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수진을 위해 자신의 나머지 삶도 투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 홍희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엄마를 상징한다.

아이에 대한 이중 감정을 가진 엄마 : 자영

 드라마 <마더>의 한 장면

드라마 <마더>의 한 장면 ⓒ tvN


자영(고성희)은 홍희와 비슷한 처지의 미혼모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홍희와는 다른 모성을 보여준다. 자영은 혜나(허율)를 사랑하면서도 자꾸 울어대고 자신의 자유를 제약하는 아이에 대한 미운 감정을 숨길 수 없다.

혜나가 예쁘지 않아, 혜나의 아빠인 남자친구가 떠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혜나에게 가끔씩 잘해주지만 기분에 따라 폭력적으로 대하기도 하고, 동거남의 학대를 묵인하고 함께 가담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혜나에게 수시로 "엄마가 행복해지는 게 혜나도 좋지?"라고 물으며 자신의 행복을 갈구한다.

하지만 자영의 마음이라고 편할 리 없다. 혜나에게 함부로 대하고, 엄마의 행복을 생각해달라고 강요하다가도 잠자는 혜나를 보고 죄책감을 느낀다. 특히 혜나가 실종된 후 '차라리 못 찾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혜나가 그리워서 눈물짓기도 한다.

혜나를 데리고 간 수진과 대면했을 때 "세상에서 제일 나쁜 엄마가 된다는 게 얼마나 싫은지 알아요?"라는 자영의 항변은 이 같은 양가감정과 죄책감으로 무너진 엄마의 외침이다. 자영이 아이를 함부로 대하고 학대하고 방치한 면들은 절대 용인되어선 안 된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힘들다'는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엄마라면 자영의 모성을 무턱대고 비난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체적이지만, 대물림되는 모성 :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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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 tvN


수진은 스스로 엄마가 되기를 선택한다. 결혼한 적도 없고 아이에게 관심도 없는, 모성과 거리가 멀어 보였던 수진은 학대받는 혜나를 보고 갑작스레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수진이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데는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있던 학대받던 시절의 기억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기억 저편으로 밀어버리긴 했지만, 학대받던 아동이었던 수진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하고 무의식 저편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비닐봉지에 버려진 혜나를 본 순간, 수진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어린 시절 상처투성이의 자신을 만난다. 그리고 수진은 이 아이를 치유하는 것이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는 것이라는 걸 직감했을 것이다. 때문에 너무나 위험하지만 엄마가 되기를 선택한다. 즉, 주체적으로 엄마가 된 것이다.

그런데 수진이 엄마가 되는 방식은 영신의 방식과 닮아 있다. 영신이 안정을 찾고자 하는 자신의 내면의 욕구에 따라 수진을 입양했듯, 수진 역시 이유는 다르지만 자신 내면의 울림을 따라 혜나를 선택한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와 닮아 있음을 보여주는 설정은 우리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부모의 방식을 배울 수밖에 없다는 심리학의 논리를 뒷받침 한다. "저 엄마 스타일 맞는데요? 갑작스럽게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거." 수진의 대사는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그 흔적을 지워버리기 힘든 모성의 대물림을 상징하는 것이다.

확장된 모성과 좁아진 모성: 보육원 선생님과 이진

한편, 수진을 돌봐주었던 보육원 선생님 글라라(예수정)과 두 아이의 엄마인 수진의 동생 이진은 대조적인 모성을 보여준다. 보육원 선생님은 자신이 낳은 아이들은 아니지만, 그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다. 선생님의 모성은 종교와 만나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닌 공동체적 사랑으로 넓어진다. 모성이 보다 큰 그림의 보편적인 인류애로 발전한 것이다. 이런 모성은 엄마가 된 후, 내 아이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귀중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환경운동에 나서는 것과 같은, 사회적으로 확장된 모성을 상징한다.

반면 수진의 동생 이진(전혜진)이 보여주는 모성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때로는 이기적이다. 피아노 전공자인 그녀는 아이를 낳은 후 엄마로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피아노를 그만둔다. 대신 아이를 최고의 유치원에 입학시키고 항상 좋은 옷을 입히며 방과 후에 최고의 교육을 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남편의 성공을 위해 뒷바라지 하고 검사인 남편에게 누가 될까 집안을 단속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그녀의 대사처럼 "내 남자에게 최고의 음식을 먹이는 것"이 그녀의 기쁨이다. 하지만 혜나를 돌보는 건 마지못해 하고 혜나의 커다란 상처 앞에서도 아이와 남편의 안위가 먼저다. 오직 자신의 가족만 생각하는 모성인 셈이다.

한 어머니 안에 있는 다양한 모성의 스펙트럼

드라마는 이 모든 모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아동학대와 유괴라는 극적인 설정 안에서 아무런 평가도 더하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보여준다. 희생적이고, 공동체적인 모성을 찬양하지도, 양가적이고 이기적인 모성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세상의 엄마들이 조금씩이라도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인 엄마이든 그렇지 않든,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본 여성이라면 알 것이다. 아이가 아프거나 힘들 때 대신 아파주고 싶을 만큼 모든 걸 줄 수 있을 것 같다가도(홍희의 모성), 때로는 아이로 인해 제약받는 엄마로서의 삶이 힘겨울 때가 있음을.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간 사이 엄마가 아닌 '나'로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있음을 말이다(자영의 모성).

또한, 아이가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펼쳐가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을 기대하기도 한다. 내가 가진 꿈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데서 완전히 자유로운 어머니 또한 없을 것이다(영신의 모성). 엄마로서 아이에게 잔소리를 할 때 가끔 친정엄마와 똑같은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란 경험도 해봤을 것이다(수진의 모성). 텔레비전에서 불행한 아이들의 소식을 들으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분노하고, 도와주고, 봉사를 하다가도(수진 보육원 선생님의 모성), 내 아이가 학교에서 작은 불이익이라도 당하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때도 있을 것이다(수진 동생의 모성). 결국 <마더>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모성은 정도는 다르지만, 어쩌면 한 어머니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모성의 면면들인 것이다.

모성은 이렇듯 다채롭다. 가부장적 전통에서 남성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모성 신화. 그러니까 어머니로서의 헌신과 희생이 아름다우며, 모든 여성은 본래적으로 그렇다는 모성신화가 <마더>에서는 미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더>는 극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이며, 매력적이다. 10회까지 방영된 현재, 탈출 직전의 혜나가 자신을 학대했던 '삼촌'에게  납치를 당했다. 아마도, 다음 회부터는 이 다채로운 엄마들이 함께 힘을 모아 혜나를 구해내려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안의 다양한 엄마들이 혜나를 구해내고, 연대를 통해 폭력에 대항하는 모습이 그려진다면, 정말로 <마더>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더 모성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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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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