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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중 동물을 구조하는 방법에 대해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야생동물, 유기동물, 학대동물을 구하는 법은 알고 있을까? 만약 그들을 맞닥뜨리면 어떻게 할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법은 이렇다.

"구청에 신고하세요."

신고 후엔 어떻게 될까? 만약 치료가 시급하다면? 내가 직접 안아 들어 눈 맞춘 작은 생명의 이후 안위가 궁금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목줄을 매단 채 겁에 질려 질주하는 요크셔테리어를 봤다. (자료사진)
 목줄을 매단 채 겁에 질려 질주하는 요크셔테리어를 봤다. (자료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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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의 한 대로에서 운전 중, 목줄을 매단 채 겁에 질려 질주하는 요크셔테리어를 봤다. 인도에 행인은 많았지만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보행신호를 알 리 없는 강아지는 자동차 경적에 더 놀라 그저 앞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차선을 바꿔 유턴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차에 치이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운 좋게 어느 여학생이 가까스로 '요키'를 붙잡았고 경찰서에 전화하여 방법을 물었다. '구청에 신고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우선 요키에게 인식칩이 있나 확인하러 동물병원에 갔다. 엑스레이까지 찍었지만 나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간혹 몸 안에서 교묘히 자리를 잡아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혹시 근처를 배회하던 보호자가 찾을까 싶어 우리의 인적사항을 기록해 놓고 관할 구청으로 갔다.

우리는 '일자리 지원센터' 담당자를 만났다. 유기동물 접수도 함께 맡고 있다고 했다(구청마다 조금씩 다르다). 몇 가지 정보를 기재한 뒤 요키를 현관의 이동장에 넣어 놓으면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이하 동구협)에서 데려간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 두고 돌아와 발 뻗고 잘 잤을까...?

그럴 수 없었다. 첫째, 이동장이 오염되어 있었고 사료도 물도 없었다. 둘째, 동구협에서 언제 올지 몰랐다. 가장 중요한 셋째, 바로 아래 이동장에 의식이 희미한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는 가까스로 숨이 붙어 있는 듯 보였는데 담요 한 장, 물 한 모금 없었다. 이 아이는 지금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하자 담당자가 답했다.

"어? 언제 왔지? (일지를 넘기며) 아, 오후 2시. 제가 오늘 당직이라 몰랐어요."

오후 7시를 넘기고 있는 시점이었다. 아이는 수 시간 째 차디찬 구석에서 힘겹게 생을 붙잡고 있었던 거다. 고양이는 동구협이 아닌 다른 협회에서 데리러 오는데, 정확한 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이 또한 지역마다 방법이 다르다).

그곳에서 고양이를 보고 놀란 우리는 요키를 차마 그곳에 둘 수 없어 집에서 보호했고, 늦은 밤 동구협에 인계했다. 그래서 이제야 발 뻗고 잘 잤을까...?

역시 그럴 수 없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 메일을 보냈다. 이런 실정을 알고 있는지, 시민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였다. 곧 답이 왔다.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꿋꿋한 '민원 넣기'라고 했다.

(지난 26일 해당 구청 담당자에게 당시 고양이가 왜 곧바로 인계되지 못했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당직자에게 당직일지를 통해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있다, 우리는 동물을 방치할 이유가 없다"라며 "당시 그 고양이의 경우 '인계 전 폐사'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죽은 줄 알았거나 살아날 가망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사에게 바로 인계하는 게 불가능한가'라고 묻자 "현재 방식을 바꾸기는 힘들다"라며 "고양이가 오면 자원봉사자에게 연락하고 강아지가 오면 동구협에 연락한다. 그들이 데려가서 입원 여부를 결정한다"라고 답했다.)

유기동물의 입양처를 직접 찾는 사람들

자, 동구협에 간 요키는? 구조 장소, 외적 특징,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약 10일간 보호하며 입양자를 찾는단다. 보호자도 입양자도 못 찾으면? 안락사다. 그 10일 동안 구조자와의 면회는 이루어질 수 없다 하여 우리는 얼른 입양신청서를 작성했다. 길을 잃었다는 이유로 죽게 놔둘 순 없었다.

며칠 후 요키의 사진이 떴다. 발판도 없는 좁은 철창에 갇혀있었다. 그래, 수백 마리가 있으니 일일이 배변패드를 깔아주긴 힘들겠지. 마음 아팠지만 이해했다. 전단지를 붙이고 SNS에 퍼뜨리고 '강사모'와 같은 카페에 글을 올리며 하루빨리 보호자를 찾으려 애썼다. '요키, 조금만 기다려줘.'

열흘째 되는 날 동구협에 전화하니 요키가 입양됐단다!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누군가에게 안겨 있는 요키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언제, 누구에게 입양된 걸까 궁금했지만 알 방법이 없었다. 입양자가 직접 근황을 알려주지 않는 한 확인이 안 된다.

유기견의 삶은 '입양'으로 만사형통이 아니다. 누가 어떤 곳에, 무슨 마음으로 데려갔는지가 그 아이의 안위를 결정한다. 사설보호소에서 사전 조사와 가정 방문 이후에도 늘 입양자의 안부를 묻는 이유다. 우리는 요키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마음을 접어야 했다.

위키백과 등에는 '동구협을 통해 구조된 반려동물의 상당수가 안락사, 자연사 된다'고 쓰여 있다. 내가 구조한 동물을 안락사의 위험에서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조자가 알아서' 해야 했다. 보호단체, 관련 모임, 온라인 카페, 병원, 지인 등을 수소문해 본인이 직접 입양처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동구협의 한 관계자는 26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구조된 동물의 절반은 입양 또는 임시보호, 나머지 절반은 자연사, 안락사라고 볼 수 있다"라며 "직원은 적고 동물은 많아 힘든 실정이다"라고 전했다.

요키의 입양 정보와 관련해서는 "입양자가 원할 경우에만 구조자에게 안부를 전한다"라며 "당시 입양된 요키의 경우, 입양자에게 연락해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려달라 요청해보겠다"라고 전했다. 이어 "입양자 선정은 입양신청서를 받고 통화 후 결정한다"라며 "물론 유기하거나 학대한 과거를 숨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의 경력으로 최대한 걸러내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나의 반려견 가을이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했다. 그곳 봉사자들은 입이 아프도록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를 부르짖지만 더 목 터져라 외치는 건 '대문유기 하지 마세요'다. 대문유기란 보호소 대문 앞에 동물을 버리고 가는 행위를 말한다.

개, 고양이, 고슴도치, 새, 햄스터, 토끼... 보통은 버려두고 그림자도 없이 사라지지만 당당한 의견을 펼치는 사람도 있다. 길에 버리는 것보단 낫지 않느냐, 유기견 보호소니까 받아 줘야 하지 않느냐.

영 틀린 말도 아니다. 다만, 국내 사설 보호소는 독일의 티어하임(Tierheim, 동물보호소)과 다르다. 직원이 없고 운영비가 적자다. 상주 수의사도 없고 침대며 장난감도 없다. 산책은커녕 털, 발톱 미용도 못 받는다. 공통점이라고는 '동물이 있다'는 정도.

국내 동물보호단체의 상황은 어떤가. 그들은 뜬장(철장 케이지)과 개농장, 학대자들과 육견 협회에 대한 대응, 그리고 동물보호법 제정, 캠페인, 교육 등의 일만으로도 하루가 빠듯하고 재정적으로도 여유가 없다.

언제까지 동물은 '뒷전'이어야 하는가

이쯤 되면 듣는 말이 있다.

"사람도 힘들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많은데 어찌 동물에게 손쓸 여력이 있겠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동물을 구조하는 누구도 '사람은 안 힘들다'고 말한 적 없다. 사람을 돕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누구든 목숨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넘어진 누군가를 일으켜 주고 싶고 울고 있는 아이의 집을 찾아주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하물며 물건을 주워도 안전하게 보관한 뒤 주인을 찾아주려 애쓴다.

중요한 건, 가족 잃은 사람이나 주인 잃은 사물을 위한 매뉴얼에 비해 동물을 위한 그것은 터무니없게 취약하다는 점이다. 지극히 형식적인 데다 그 방식대로 할 경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OECD 회원국이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목전에 둔 나라에서 아직도 '동물복지'를 논하기엔 이른 걸까?

지난해 10월,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서울시에서 구조된 유기동물에 한하여 치료와 보호 후 입양까지 연계해주는 시설이다. 하지만 이곳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고양이는 오직 품종묘(귀가 접히거나 털이 긴)다. 그 외의 고양이는 '유기동물'이 아닌 길고양이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강아지 역시 개인구조가 아닌 보호단체나 구청을 통해서만 입소가 가능하다.

이쯤 되면 듣는 말이 또 있다.

"순리대로 가게 내버려 둬라."

지금이 석기시대고 이곳이 초목이 우거진 숲이라면 나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허나 21세기, 굳게 닫힌 회색 건물이 즐비한 환경에서 인간의 도움 없이 제 명에 살아남을 동물은 사실상 없다. 사냥을 할 수도 없고 몸을 숨길 곳도 없다. 소수의 인간이 사료를 내놓으면 그조차도 내동댕이쳐지는 게 현실이다. 산을 뚫어 도로를 냈고 번식장에서 찍어내듯 동물을 생산해왔다. 순리를 거스른 건 인간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쯤 되면 듣는 말이 하나 더 있다.

그나마 길고양이라 할인 혜택을 받은 게 이 정도다. 아지라이는 지난 23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 구조했던 고양이 아지라이가 4일간 입원했을 때 영수증 그나마 길고양이라 할인 혜택을 받은 게 이 정도다. 아지라이는 지난 23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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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나 마라."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단순 변심고객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무엇이 그리 힘들었을지 헤아려봐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인 병원비만 얘기해보자. 주기적인 예방약에 적절한 음식, 포근한 집을 갖추어도 살면서 안 아픈 애는 없다.

길에서 구조한 나의 반려묘 스밀라는 어느 날 범백혈구바이러스에 걸렸다. 입원하며 치료하는 동안 총 71만2400원이 나왔다. 15살인 가을이는 지난해 12월, 치첨농양(치석이 잇몸에 괴사를 일으키는 질병)으로 5개의 이를 뽑았다. 67만1000원. 노견이라 마취 전 검사 항목이 많았고 일주일 처방약 까지 합친 액수다. 그래도 신부전증으로 일주일 입원하고 90만6800원을 5개월 할부로 결제할 때 보단 손이 덜 떨렸다. 내가 바가지를 쓴 게 아니다. 다견, 다묘 가정에서는 분명 '응, 그 정도 나오지' 할 일반적인 비용이다.

저출산 국가가 된 한국. 1인 가구는 갈수록 늘어날 추세이고 반려인구(반려동물과 살고 있는 인구)는 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한편, 매년 유기되는 동물은 십만 마리이고 2017년 누적된 가계부채는 1500조 원이란다. 선진국 같기도 극빈국 같기도 한 대한민국.

언제까지 우리는 살려는 자를 살리면서 생계를 위협받아야 하는가. 마땅히 나라가 해야 할 일을 꾸역꾸역 개인이 떠안는데 왜 못 본 척하는가. 모든 인간이 구제받을 때까지 '미천한' 동물은 스러져가야만 하는가.


태그:#유기동물, #길고양이구조, #유기견 구조, #동물병원 비용, #동물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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