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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가 '적폐 탐정단'을 꾸렸습니다. 이름 그대로 권력의 그늘 아래서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가 추적 대상입니다. 그 첫 번째로 국회 사무처를 택했습니다. 시민 세금이 1년에 900억 원 넘게 쓰이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외부 감사는 없습니다. 국회의원들 또한 '집안 문제'라고 사실상 모른 척 합니다.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모두 공개하지 않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17년 9월부터 33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그 실태를 파고들었습니다. [편집자말]
국회사무처는 세금이 1년에 900억 원 넘게 쓰이지만, 외부 감사조차 받지 않고 있다.
▲ 감시가 필요한 국회사무처 국회사무처는 세금이 1년에 900억 원 넘게 쓰이지만, 외부 감사조차 받지 않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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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용역 (보고서) 못 먹으면 바보다, 이런 얘기가 나와서야 되겠습니까? 용역 결과물이 부실한 보고서인지 베껴 쓴 것인지 검증 절차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2017년 11월 7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장. 정양석 자유한국당 의원(서울 강북구 갑, 재선)의 말이다.

그는 국회 용역 보고서 예산을 '눈먼 돈'이라고 표현했다. 정 의원이 2017년 국회 용역 보고서 내역을 조사한 결과, 국회사무처·예산정책처·입법조사처·국회도서관에서 총 106건, 18억 9965만 원을 집행했다. 한 해에만 용역 보고서에 19억 원의 세금이 투여됐는데 베껴 쓴 것인지 검증하는 절차가 없다는 것이 정 의원의 주장이다. 과연 사실일까.

<오마이뉴스>는 국회사무처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국회사무처 정책연구용역 내역'을 받았다. 이 가운데 유독 매해 국회 사무처의 연구용역을 받는 단체가 눈에 띄었다. 전직 보좌진들이 주축이 된 '입법정책연구회'와 전현직 입법부 공무원이 주축이 된 '한국의정연구회'다.

그 중 입법정책연구회 보고서부터 살펴봤다. 2008년부터 10년 간 국회사무처가 입법정책연구회에 맡긴 정책 연구 용역 보고서는 총 48건이다. 총액만 9억 7000만 원(2008년과 2009년에는 2500만 원짜리 각각 4건, 2010년부터 2014년 까지 매해 2000만 원짜리 용역 5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매해 1800만 원짜리 5건)에 달한다.

48건 가운데 표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5건의 보고서를 무작위로 뽑았다. <비정규직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정책방안>(2008), <고령화시대 노동시장 정책과제>(2009), <저출산 극복을 위한 가족 친화 정책방안>(2011), <청년실업해소를 위한 정책방안>(2011), <물 자원 이용의 정책 방안>(2012)을 논문 표절 검사 프로그램으로 검증한 결과, 모두 표절 기준을 위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인적자원부가 2008년 발표한 '표절 기준'은 ▲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는 경우 ▲ 생각의 단위가 되는 명제 또는 데이터가 동일하거나 본질적으로 유사한 경우 ▲ 타인의 창작물을 자신의 것처럼 이용하는 경우이다. 또, 창작성이 인정되지 않는 짜깁기, 연구결과 조작, 저작권 침해 가능성이 높은 저작물의 경우에는 '중한 표절'로 분류해 파면, 감봉 등 중징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5건 보고서 모두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표절이었다. 특정인의 논문을 거의 '복사해서 붙이기' 수준으로 차용한 보고서도 있었다.

2500만원짜리 보고서, 3분의 1을 다른 논문에서 '복사+붙이기'

왼쪽이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고 오른쪽이 입법정책연구회에서 발간한 보고서다. 소제목부터 본문까지 모두 똑같다.
 왼쪽이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고 오른쪽이 입법정책연구회에서 발간한 보고서다. 소제목부터 본문까지 모두 똑같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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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정책방안>은 서론부터 결론까지 빠짐없이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박사(현 청와대 비서관)의 <비정규직과 한국노사관계 시스템 변화>(2007) 논문을 차용했다. 특히 제 4장(보고서 119p~148p)의 경우 단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위 논문(182p~235p)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 외에도 제 3장은 57p부터 93p까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2008) 보고서를 '복붙(복사+붙이기)'했다. 이 보고서는 2500만 원 짜리다.

<고령화시대 노동시장 정책과제> 역시 70p(전체 보고서 183p 분량)에 달하는 부분을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주력산업의 인력고령화 전망과 대응방안>(2007) 논문에서 통째로 가져왔다. 일부 어미만 변경했을 뿐 목차도 동일하다. 더 큰 문제는 입법정책연구회에서 한 해 전 발간한 <고령사회 생산인력 수급정책>(2008) 보고서 역시 <주력산업의 인력고령화 전망과 대응방안> 보고서의 같은 부분을 표절했다는 점에 있다. 2008년 표절한 보고서를 2009년 또 다시 표절해 용역비를 받았다. 두 보고서의 책임연구위원은 동일한 인물이다. 각각 2500만 원 짜리 보고서다.

5개 보고서 모두 '숫자 밀어쓰기'를 애용했다. 과거에 나온 논문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되, 용역 보고서를 작성한 시점에 맞게 내용은 그대로 두고 '최신형'으로 자료 숫자만 고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출산 극복을 위한 가족친화 정책 방안>의 경우 제 3장 본문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주요국의 저출산 고령화 대비 성장전략 연구화 정책 시사점>(2010) 보고서를 그대로 복+붙(복사+붙이기) 했는데, 그 와중에도 숫자만 고쳤다. '성별 대학진학률 격차'에 대한 1980년 자료는 1985년으로, 2005년 자료는 2010년으로 고쳤다. 200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도 2010년 것으로 둔갑 시켰다.

'숫자 밀어쓰기'를 하다 보니 '팩트'가 틀린 부분도 발견됐다. <청년실업해소를 위한 정책방안> 2장의 경우 한국노동연구원의 <청년층 노동시장 진입 및 정착방안연구>(2011)를 베끼면서 표나 연도의 숫자를 한 해씩 더해서 기입했다. 2000년도 경제활동 인구를 2001년 자료로, 2005년 15세 이상 인구를 2006년 자료로 숫자만 고친 것이 그 예다. 이 과정에서 원문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수정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결론조차 베끼기... "입법에 활용되기 바란다"며 구색맞추기

왼쪽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보고서, 오른쪽이 입법정책연구회 보고서다. 왼쪽 보고서의 서론 부분을 앞뒤만 바꾸어 결론 부분에 가져다 붙였다.
 왼쪽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보고서, 오른쪽이 입법정책연구회 보고서다. 왼쪽 보고서의 서론 부분을 앞뒤만 바꾸어 결론 부분에 가져다 붙였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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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의 결론은 어떨까. 정도만 다를 뿐 5건의 보고서 모두 '베끼기'를 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가족친화 정책 방안>은 한국조세연구원이 펴낸 <저출산 극복 및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가족친화정책>(2007)의 서언을 앞뒤 순서만 바꿔서 기재했다. 결론 뒷부분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저출산 극복을 위한 긴급제언>(2010)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물 자원 이용의 정책 방안>의 결론 역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물 자원의 가치 변화와 물 산업 선진화 전략>(2011) 국문요약을 앞뒤 순서만 바꿔서 짜깁기 했다. '필요성이 있다'는 '필요할 것이다'로, '바람직할 것이다'는 '바람직하다'로 살짝만 수정했다. 마지막 문장에 "~을 위한 정책방안을 국회 해당 상임위에서 수립하여 그에 따른 입법의 제 개정에 본 연구보고서가 유용하게 활용되기 바란다"를 추가해 국회용 보고서 구색을 갖췄을 뿐이다.

<청년실업해소를 위한 정책방안> 결론도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청년층 노동시장 진입 및 정착방안연구>(2011)의 서론과 결론 부분을 짜깁기 했다. 끝은 "일자리 예산 집행의 선진국형 모델을 만들어가기 바라며 본 연구 보고서가 정부와 국회의 업무에 참고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로 마무리 했다.

"용역 보고서 눈먼 돈, 국회 내부 문제다 보니 제 식구 감싸기로 넘어가"

해당 보고서들은 '참고문헌' 목록에 베낀 논문, 보고서를 기재했다. 그러나 보고서 어디에도 각주는 없었다. 어떤 논문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큼 참고했는지 알 수 없다. 과연, 짜깁기와 복+붙으로 만들어진 보고서들이 "국회 업무에 참고"가 될 수 있을까. 정양석 의원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정 의원은 1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국회 용역 보고서에 대해 검증 제도가 없다, 눈먼 돈이 돼버렸다"라며 "다른 피감기관이었으면 국회가 난리를 쳤을 거다, 국회 내부 문제다 보니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 의원은 "용역 보고서는 국회사무처, 국회예산정책처 등 기관의 기관장들이 '베푸는' 구조다, 돈만 확보되면 자기들끼리 쪼개서 줘버린다"라며 "국회사무총장 및 관계 기관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용역 보고서 관련 규정을 만들어 국감 때 해당 기관에 대해 체크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의 표절 의혹 제기에 대해 국회사무처는 "연구용역보고서 표절 등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2017년 9월 '국회사무처 정책연구용역 관리내규'를 개정하여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라며 "향후 표절검사 프로그램 도입 등 연구용역 결과 검증 절차를 보다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입법정책연구회는 어떤 곳?
입법정책연구회는 1995년 대한민국 국회 보좌관회로 출범해 1996년 국회에 등록된 정책연구단체다. 입법정책연구회 소개글에 따르면 '국회 정책연구용역을 정기적으로 담당하는 정책연구모임으로 역량을 쌓아가고 있으며, 여야 구분 없이 전현직 보좌진들간의 친목 도모와 토론 공간이 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입법정책연구회는 성숙한 의회민주주의와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입법연구에 매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고 있다.

입법정책연구회는 국회 의원회관 10층에 사무실이 있다. 1996년 7월부터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회사무처는 "의원의 의정활동 지원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아 정책적으로 사무실을 제공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태그:#국회사무처, #연구용역보고서,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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