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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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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제 것이 아닌 남의 짐만 지고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분들이 있다. 바로 택배를 하는 분들이다. 택배를 하는 분들처럼 분주하지는 않지만 아버지 역시 하루 종일 남의 짐을 지고 헐떡거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짐을 내려놓고 풀어보면 짐보따리 속에는 허영과 망상이 가득하였다.

우리 인간의 비극은 언어를 사용하고 사유가 깊어져 가면서 시작이 되었다. 또한, 인간은 어머니의 젖을 떼고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무엇 무엇이 되어라 하는 꿈 꾸기를 강요받는다. 그러나 그 꿈이 젊은 날의 꿈이라면 감당하기가 쉬웠을텐데 '도대체 시(詩)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는 아버지에게 허영이었고 시인들과 쓸데없이 인연을 맺어 그들에게 뭔가 배워보려 애를 쓰던 일은 망상이었구나. 그러나,

"사랑하는 딸아, 우리 게으르게 살아보지 않으련?"

도회지 생활에서는 살려고 하는 몸부림에 오히려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배가 고파 쥐약이 섞인 빵을 먹고 비명횡사하는 생쥐가 그러하듯, 허기진 물고기가 강태공의 낚시바늘을 물고 뭍으로 끌려나오듯, 도회지의 생활은 활활 타는 장작불에 저 죽을줄 모르고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하루하루가 전쟁터이구나. 또한 도회지에서의 행복이란 남의 불행을 발판으로 터를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버지는 내 딸이 남의 불행을 마중물 삼아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남들 소고기 먹을 때 닭고기 먹자꾸나. 남들 50평 아파트 살 적에 허름한 단독집 옥상에서 위 아랫집 옹기종기 모여 삼겹살 구워먹으며 살자꾸나.

"사랑하는 딸아, 우리 게으르게 살아보지 않으련?"

아버지가 지금 이 나이에 '도대체 시(詩)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시를 써보고자 애를 쓰는 일이 허영이라도 좋고 망상이라도 좋다. 아버지가 시를 써서 네게 편지를 하면 너도 시 한 수 써서 화답을 해다오. 열두마지기 논에 반만 모를 내고 나머지 반은 물을 가둬놓고 연꽃을 피워보지 않으련? 아버지는 50평 아파트보다 소고기 먹는 일보다 연꽃 피우는 일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 여긴다마는,

우리 게으르게 살자. 게을러야 연꽃도 피우고 시도 쓸 수 있느니. 게을러야 신작로 가생이 들꽃도 눈에 들어오고 게을러야 사색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게을러야 오늘 할 일 내일로 제쳐두고 아버지에게 시 한 수 써서 편지도 쓸 수 있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딸아, 우리 게으르게 살자. 사람이 너무 악착같으면 시를 쓸 수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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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론 (詩人論)

- 임보 강홍기

한 소년이
시인은 무엇하는 사람이냐고 묻기에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며 살아가는
제법 멋있는 사람이라고
일러주었다.

한 청년이 또
시인은 무엇하는 사람이냐고 묻기에
과학자가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그런 것까지 보고 가는
눈이 깊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한 장년이
그런 질문을 또 하기에
가난하게 살지만
세상을 여유있게 하는
다정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나갔다.

한 노인이 멈춰 서서
소매를 붙들고 또 그렇게 물었다.
'정말 시인은 무엇하는 놈들이냐'고

'죽음을 너무 일찍 깨우친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놈'이라고
그의 귀에 대고 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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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딸 23, 4년 전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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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아버지와딸, #시집 ,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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