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학과, 16학번 ㅇㅇㅈ양, 남자친구 있는지 알려주세요. 너무 궁금하네요. 한번 만나고 싶어요."

"○○○○라운지, 알바 여자분 예뻐요. 이름을 알고 싶어요!"

"○○○ 과목 듣는 여자분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앞머리 있으시고 어깨보다 조금 긴 머리인 여자분인데요. 저번 주에 친구 2명이랑 앞자리에 앉았는데, 매번 눈길이 갔지만 저번 주에는 유독 이쁘셔서 혹시 남자친구 있는지 궁금합니다."

"도서관에서 반납 데스크 근로하시는 분 남자친구 있으세요? 이쁘세요."

새 학기를 앞두고 각 대학의 익명 페이스북 커뮤니티인 <대나무숲>에 실제로 올라온 글들이다. 주로 '예쁘다'라거나 '마음에 든다'며 마주친 곳과 인상착의를 올려 애인이 있는지 묻거나 찾아달라고 요청하는 글이다.

각 대학의 대나무숲 페이지에 실제로 올라온 게시글. 주로 ‘예쁘다’고 시작하여, 마주친 곳과 인상착의를 올리고 애인이 있는지 묻는다.
 각 대학의 대나무숲 페이지에 실제로 올라온 게시글. 주로 ‘예쁘다’고 시작하여, 마주친 곳과 인상착의를 올리고 애인이 있는지 묻는다.
ⓒ 화면캡쳐

관련사진보기


각 대학의 대나무숲 페이지는 해당 학교 재학생의 메시지를 익명으로 올려주는 페이지다. 간단한 인증절차만 거치면 운영자가 대신 선별하여 올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의 이름으로 페이지가 운영 중이며, 비슷한 페이지로 '대신 말해드려요', '말해드립니다', '전해드립니다' 등이 있다.

애초 대나무숲은 구성원들이 서로 고민을 나누고, 학내 문제를 함께 토론하는 익명의 커뮤니티로 시작됐다. 교수의 위안부 비하 발언이나 성추행 의혹 등 학내의 주요 사건이 이곳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공개 페이지로 운영되므로 해당 학교의 학생이 아니더라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부 구성원들은 자신의 이상형이나 짝사랑을 앞세워 스토킹이나 집착을 미화하는 게시글을 올려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대상을 특정하는 게시글은 필터링하고 있어 직접 실명을 거론하지는 못하지만, 구성원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힌트를 줘서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나무숲에서는 스토킹이나 집착이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대나무숲에서는 스토킹이나 집착이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 화면캡쳐

관련사진보기


게다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상대방의 개인 정보를 캐기도 한다. 심한 경우 '남자친구가 있는지 궁금하다'는 게시글의 댓글에는 실제로 특정인이 태그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 한 대학의 대나무숲에는 이러한 세태에 대한 일침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14일, 한 대학의 대나무숲에는 자신의 이상형이나 짝사랑을 앞세워 스토킹이나 집착을 미화하는 글에 대해 성토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지난 14일, 한 대학의 대나무숲에는 자신의 이상형이나 짝사랑을 앞세워 스토킹이나 집착을 미화하는 글에 대해 성토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 화면캡쳐

관련사진보기


지난 14일, 익명으로 올린 이 게시글은 "가끔 대숲을 읽다 보면 이상한 글들이 올라옵니다. 자신의 그리움이나 사랑을 앞세워서 스토킹이나 집착을 미화하는 글 말입니다"라고 시작한다.

이어 "왜 사람 연락처를 캐내고, 집 주변을 맴돌고, 헤어지고 나서 진상 바득바득 부린 행위를 '널 향한 마음이 무거워서'라고 표현하나요?"라며 꼬집었다. 또, "그런 뉘앙스로 글을 써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이 조금이라도 가벼워 보이게 만들고 싶어요? 상대가 그 글을 읽고 '아, 쟤가 저런 마음이니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나요?"라고 썼다.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마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는 행동입니다. 상대 마음을 지레짐작하지도 마세요. 대부분 사람은 그런 행동에 짜증과 공포를 느낍니다. 지금껏 당신이 해온 행동들이 결코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없는 행동들이고, 때로는 범죄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글 공개적으로 쓰지 마세요."

그렇다. 대나무숲에 무심코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정인을 집착하고 인상착의 등의 신상정보를 올리며 애걸하는 행위는 결코 관심의 표현이 아니다. 때로는 자칫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때로는 범죄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있다. 끈질기게 접근하면 여성이 구애를 받아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참 무서운 속담이다. 그러니 '이게 무슨 죄라고?'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그건 100년 전에나 내뱉을 수 있는 속설에 불과했다. 아무리 익명이라 할지라도 SNS상에서 마음에 드는 특정 여성을 지칭하여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면 그것은 엄연한 범죄다.

지난 2012년 2월 27일 의결된 '경범죄처벌법' 개정안은 이동통신·이메일·게시판·SNS 등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행위도 특별히 사이버 스토킹(cyber stalking)이라는 범죄로 구분하고 있다.

배려하니까 '청춘'이고, 올바르니까 '대나무'다. 답답할 때 소리 지르러 갈 수 있는 상아탑의 대나무숲이 되었으면 한다.


태그:#대나무숲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존 언론들이 다루지 않는 독자적인 시각에서 누구나 공감하고 웃을수 있게 재미있게 써보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사, 저에게 맡겨주세요~^^ '10만인클럽'으로 오마이뉴스를 응원해주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