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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평화공원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버스 안에 앉으니 몸이 풀렸는지 스르르 잠에 빠졌다. 아들이 깨워 일어나니 눈 세상에 와 있었다. 여행 전에 온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제주 시내에는 눈이 다 녹았는데, 이곳은 한라산 중턱부근이라 기온이 낮아 눈이 녹지 않았다.

올해는 4.3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48년 4.3의 시발점은 그 1년 전인 1947년 3.1절 기념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회에는 3만 명의 제주 도민이 모여, 미소에 의해 우리나라가 분리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통일 독립'을 외쳤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미군정하의 경찰 발포로 6명이 사망하게 되었다. 이에 제주 시민은 총파업을 벌였고, 당시 경무부 최경진 차장은 "제주도는 주민 90%가 좌익"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3월 17일 경찰이 또 다시 발포하여 8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주민과 경찰의 대립이 극으로 치달았다.

1948년 2월 이승만은 남한 단독선거를 주장하였으며, 김구는 이에 반대하는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리게 되었다. 그리고 3월 민간인이 경찰의 고문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4월 3일 무장 자위대의 봉기가 시작되었다. 무장봉기가 시작된 이 날을 4.3사건의 기념일로 지정하였다. 이 이후에 주민들의 저항은 더 심해졌고 경찰과 군대의 탄압 또한 거세졌다.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 정부인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고, 1948년 10월 17일부터 이승만 정부로부터 광기의 학살이 자행되었다.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구역이 해제될 때까지 제주 인구의 9분의 1인 약 3만 명가량이 학살당했다. 그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이들을 빨갱이로 몰았는데, 희생된 대부분의 사람은 선량한 제주 주민들이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 어느 누구도 국가에게 사람들을 학살하라고 권력을 준 적이 없는데, 국가 권력은 자기 마음대로 국민을 학살한 것이다.

기념관에 전시된 사진들은 정말 비참했다.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존자의 육성 녹음된 증언을 들으니 눈물이 났다. 109개의 마을이 붙 타서 사라졌고 돌담만이 해골처럼 남았다. 서북청년단과 군인, 경찰에 의해 자행된 살상은 제주도를 지옥의 섬으로 만들었다. 1947년 발생 초기 미군정에서 제대로 수습을 하였다면 사태가 이렇게 까지 확산되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아쉬웠다. 또한, 이승만 정권이 국민에게 저지른 학살은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등 군사정권의 역사 은폐와 연좌제를 통해 계속적으로 제주 도민을 괴롭힌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잔인한 폭력이었다.

내가 제주 4.3을 처음 접한 것은 1984년 군대에서다. 제주 출신들에게 4.3 사건을 들었는데, 들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반공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 나로서는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이 이 기념관을 찾는 것이 두 번째이다. 2005년경에 전국작가대회가 이곳에서 열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참여하여 이 사건을 좀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박정희 등 군사정권은 철저히 이 사건을 숨겼으며, 역사 속에서 배제하려 들었다.

이 사건을 밝히려는 제주시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에 4.3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었고, 2003년에는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2014년 4월 3일 국가 지정 추념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억울한 죽음을 추념한다는 의미이지 진상 규명 및 배상이 완결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직도 4.3은 진행 중인 역사다.

4.3이 발생한 지 올해로써 70년이 되었다. 내가 태어나기 불과 15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과정에서 난 이 사실을 몰랐으며, 아직도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4.3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하며, 후손들에게도 바르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국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4.3의 모든 진상이 밝혀져 대한민국의 올바른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4.3기념관을 나오는데 눈이 내렸고, 기념관 근처에는 엄청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한 10분 정도 내려오자 신기하게도 눈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불과 10분 정도 내려왔을 뿐인데 그토록 많은 눈이 하나도 보이지 않다니, 울산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승만, 박정희를 비롯한 군사정권이 아무리 역사를 은폐하려해도 그것은 실체를 눈으로 덮는 행위에 불과하다. 봄이 오고 따뜻한 햇살이 비치면 눈은 녹기 마련이고 은폐된 역사는 하나도 숨김없이 들어날 수밖에 없다.'


태그:#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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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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