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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한 군인을 보았다. 누굴 만나기로 했는지 앳된 얼굴의 다소 수줍은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군복과 베레모가 어딘지 어색해 보이는 걸로 보아 자대배치 후 첫 휴가를 나온 게 아닐까 짐작되었다. 주책맞게 빤히 쳐다보는 사이 당치않는 모성본능이 발동되었다. 군에 간 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군 입대통지서를 받아든 아들의 표정은 무척 복잡해 보였고 큰 고민거리가 생긴 사람처럼 연이어 긴장된 한숨을 뿜어내었다. 이미 한번 연기를 한지라 또 연기를 한다고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입대를 하기로 마음먹고 휴학을 한 후라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다. 대신 입소 마지막 날까지 지구의 종말이라도 온 듯 남은 한 방울의 시간까지 꾹꾹 눌러 짜서 노는데 탕진하였다. 마치 사형수의 마지막 만찬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제18회 인제 빙어축제 사흘째인 1월 30일 남면 부평리 소양강댐 상류 빙어호 일원을 찾은 군 장병들이 얼음 벌판에서 단체로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제18회 인제 빙어축제 사흘째인 1월 30일 남면 부평리 소양강댐 상류 빙어호 일원을 찾은 군 장병들이 얼음 벌판에서 단체로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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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입소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치 마른 우물에 물이 차오르듯 온 몸에 눈물이 차오르며 저 깊은 곳 어딘가가 뻐근하고 아파온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던 아들은 꽤 큰 덩치에 떡 벌어진 어깨로 만만해 보이지 않는 듬직함이 있어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입소식을 마치고 이제 헤어질 때가 되자 그동안 억눌러 왔던 퉁방울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마치 마지막이라도 되는 듯 그지없이 슬픈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라면 저런 표정일까. 꿋꿋이 웃으며 보내리라 다짐했던 마음은 와르르 무너지며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솟아올랐다.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는 아들의 뒷모습이 어찌나 슬프고 측은해 보였던지 도무지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어느 여름날 오후 아들은 군 입대를 하였다.

저렇게 얼띤 모습으로 어떻게 나라를 지킨다는 것인지, 나라는 내가 대신 지켜줘야 할 것 같은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그 군인은 그저 군복을 입은 모습 하나로 나를 온통 사로잡았다. 냉큼 손을 잡아끌고 가서 따뜻한 국밥이라도 사 먹이고 용돈이라도 꼭 쥐어주고 싶은 엉뚱한 마음을 간신히 누르고 그냥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바로 돌아서서 뒷모습을 스토킹하며 애처로운 시선을 쏘아 보낸다. '에고, 내가 왜 이러는지' 휴가 나온 군인만 보면 눈을 번뜩이니 누가 보고 미친 사람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국군의 날을 앞두고 우리는 연례행사처럼 국군아저씨께 위문편지를 쓰도록 독려되었었다. 멋도 모르는 우리들은 그저 귀찮은 숙제려니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건성으로 지어내어 적어 보내곤 했었다.

그때는 한없이 크고 강인한 존재처럼 느껴지던 군인아저씨들이었는데. 엄마가 되어서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보니 군인아저씨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수퍼히어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었고 누군가는 자식을 군에 보내놓고 밤잠을 설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다지 완전한 어른 같지도 않은 미숙한 아이들이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 밤도 혹독한 추위 속에서 밤새워 보초를 서며 시린 손과 발로 나라를 지키고 있을 군인아들들을 생각한다. 허리가 동강나 성치 못한 나라를 언젠가는 이어 붙여 통일을 이루겠다고,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지키겠다고 불철주야 고생하는 대한의 아들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군대를 보내보니 알겠다. 모든 군인들이 다 같은 소중한 내 아들들임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건강하게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어린 시절 위문편지를 장난스레 써 보냈던 아이는 커서 군인의 엄마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성껏 예쁘게 써서 보낼걸 그랬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말이다.


태그:#군대, #입대, #군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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