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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1심 선고재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70억원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된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떠나기 위해 호송버스에 오르고 있다. 2018.02.13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1심 선고재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70억원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된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떠나기 위해 호송버스에 오르고 있다. 2018.02.13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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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법정구속됐다. 롯데그룹이 대통령에게 청탁해야 할 '현안'이 있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를 충분히 인식해 뇌물을 주고받았다는 '제3자 뇌물죄'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순실씨에게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 원, 추징금 72억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K스포츠재단 지원을 명목으로 최씨가 롯데에게 받은 70억 원과 SK에 요구한 89억 원을 뇌물로 판단했다. 당연히 신 회장 역시 뇌물 공여가 인정돼 2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재판부의 잣대는 삼성을 피해갔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공모해 삼성으로 하여금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지원하게 한 '제3자 뇌물죄'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이나 중재인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아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단순뇌물죄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으면 혐의가 성립되지만, 제3자 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 인정돼야 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부정한 청탁은 뇌물을 주고받는 당사자끼리 대가 관계에 대한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있어야 한다. 묵시적인 의사표시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경우엔 뇌물을 건네는 사람과 뇌물을 받는 사람 모두 뇌물이 직무에 관한 대가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대통령의 도움이 필요한 '기업 현안'과 그에 따른 '기대', 이를 박 전 대통령이 보고받거나 지시한 정황이 필요하다.

롯데 '면세점 특허', SK '최재원 가석방'... 삼성은?

재판부는 당시 롯데와 SK에 중요한 현안이 있었고, 박 전 대통령이 이를 핵심 현안으로 인식했다고 판단해 최씨의 제3자 뇌물죄를 인정했다.

당시 롯데에게는 '면세점 특허'라는 중요 현안이 있었다. 롯데는 2015년 7월, 11월 두 차례에 걸친 면세사업자 선정에서 관세청의 부당한 점수 산정으로 탈락했고, 잠실 월드타워점, 소공동 롯데면세점이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신 회장은 2016년 3월 14일, 박 전 대통령과 단독 면담했다.

독대 한 달 뒤, 관세청은 4월, 롯데를 포함한 신규 면세 사업자 4곳을 추가로 선정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17년 이후에 면세 사업자 추가 선정이 진행돼야 했다. 롯데는 미르-K스포츠 재단에 1차로 45억 원을 출연했으나 다른 기업과 달리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을 추가로 출연했다. 그러나 검찰이 롯데를 압수수색 하기 전날, 70억 원을 다시 돌려받았다.

재판부는 "면세점 특허 취득이 당시 롯데의 최대 현안이었으며 박 전 대통령 역시 면세점 특허를 안 전 수석으로부터 여러 번 보고를 받은 점 등을 고려하면 롯데의 핵심 현안이라는 점도 잘 알았을 것"이라며 "신 회장 역시 현안과 관련해 대통령의 직무상 영향력을 유리한 방향으로 행사할 걸 기대하고 재단에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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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안종범, 신동빈 회장 3명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02.13
 최순실, 안종범, 신동빈 회장 3명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02.13
ⓒ 사진공동취재단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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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또한 여러 현안을 가지고 있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6년 2월 16일, 박 전 대통령과 40분 동안 단독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의 가석방, 워커힐 호텔의 면세점 사업권,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문제 등을 부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SK 현안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K스포츠재단의 가이드러너 사업 지원을 요구했다고 봤다. 또, 독대 전에 이 현안들이 모두 해결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SK 또한 이런 대가관계를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이 부분을 제3자 뇌물죄로 인정하면서 최씨는 SK 뇌물요구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법원, 이번에도 부정한 청탁 인정하지 않아

하지만 재판부는 왜 삼성의 현안을 인정하지 않을 걸까.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개별현안 11개와 포괄 현안인 '경영권 승계'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승계작업에 대해 보도하거나 언급하는 걸 보면서 '실제 (이 부회장에게) 승계작업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면서도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승계작업은 개념이 명확하고, 증거에 의해 증명돼야 하는데 승계 작업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부족하다"라고 했다.

삼성 현안이 SK와 롯데보다 구체적이지 않은 건 맞지만, 이 부회장이 개별 현안들로 핵심계열사에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확보해 이익을 본 사실을 놓고 보면 쉽사리 납득하기 힘든 판단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계자들의 증언, 안종범 업무 수첩, 김영한 업무일지 등을 보면 삼성과 청와대 사이에 커넥션도 드러난다. 또, 국정농단 전부터 최씨의 존재를 알고 있던 기업은 삼성이 유일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기금 운용본부장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삼성 합병을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 부회장과의 대가관계가 없었다면 박 전 대통령이 삼성 합병을 무리하게 지시했을 이유가 없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선고 뒤 이를 지적했다. 민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인해 이 부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가 문제시됐고, 박 전 대통령과 문 전 장관 등이 국민연금공단을 동원해 삼성 합병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승계작업을 부정한 건 사실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재판부가 최근 있었던 이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를 외면하지 못해 삼성의 부정한 청탁을 무죄로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이 부회장의 개별현안과 포괄현안 모두 '증거 부족'이라며 제3자 뇌물죄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뇌물을 공여한 대가로 어떤 특혜를 요구했다거나 실제로 취득했다는 증거가 없다"라며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로 내심 재판부의 선처를 기대했던 롯데 측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라 참담하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롯데 측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라며 "재판 과정에서 증거를 통해 무죄를 소명했으나 인정되지 않아 안타깝다"라고 밝혔다.


태그:#이재용, #최순실, #신동빈, #박근혜, #안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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