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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설성면에 위치한 '박홍구 Wood studio'앞에 선 박홍구 나무작가
 이천시 설성면에 위치한 '박홍구 Wood studio'앞에 선 박홍구 나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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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구(52) 작가에게 목공예(木工藝)는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다. 박 작가는 청년 시절 나무 가구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에는 자개장부터 이태리 현대가구까지 다양한 가구를 만들었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이고 기능적으로 대량 생산을 했다. 하지만 지나온 날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다. 나무에 대한 지식과 목공예 기술이 축적되는 시간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어느 순간부터 작품관이 달라졌어요. 조금 더 아름답고 좀 더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아이가 평안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었고요. 그런데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도시에서는 어떤 변화를 주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어요. 도시 생활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생활이잖아요."

박홍구 작가 가족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여러 지역을 탐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이천에 다녀오더니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 길로 나무공방을 접고 이천시 설성면으로 내려왔다. 아이가 4살 되던 해였고 그로부터 14년이 흘렀다. 그동안 아이는 자연 속에서 나무와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섭리를 알아가면서 훌쩍 자랐다. 어느 날부터 스스로 볼펜 등 목공예 오브제를 만든다. 박홍구 작가에게 작가로서 전원생활에 대해 물었다.

"이천은 한눈에 사람을 사로잡는 큰 산이나 강은 없어요. 그게 단점일 수도 있는데 작업자에게는 굉장한 장점이에요. 경치 좋은 곳은 작가의 시야를 복잡하게 할 수 있거든요. 마음이 들뜨고 울렁거려서 작업에 집중하기 어렵고요. 이천은 일조량이 좋아요. 바람이 세지 않고 자연 재해도 드물죠. 능선과 들판은 잔잔하고 조용하고요. 이것은 작업자에게는 매우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업하는 사람의 마음이 흔들림 없이 평온하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작업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추상탄화로 제작한 박홍구 나무작가의 『나머지(What is left)』.나무를 불에 태워 무늬를 내고 작품을 보다 더 단단하고 강하게 해주는 박홍구 탄화시리즈 중 조형물 오브제
 추상탄화로 제작한 박홍구 나무작가의 『나머지(What is left)』.나무를 불에 태워 무늬를 내고 작품을 보다 더 단단하고 강하게 해주는 박홍구 탄화시리즈 중 조형물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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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구 작가는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천으로 이사 와서 마당에 심은 어린 느릅나무가 자라는 과정,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자연, 집과 작업장 등 주변의 모든 것에 마음을 연다. 관찰하고 사색한다. 박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소비자의 성격과 가구의 쓰임새, 가구가 놓일 주거 환경 등을 고려한다. 박홍구 작가의 사용자를 위한 마음과 철학을 온전히 담는다.

"성격이 까칠하고 딱딱한 사람한테는 부드럽고 밝은 나무를 사용해요. 나무를 보고 만지면서 마음이 포근해질 수 있도록요. 감각이 둔한 사람에게는 감각을 깨워주는 나무를 선택하고요. 나무를 통해 소비자가 좋은 에너지를 갖게 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거든요."

박홍구 나무작가의 『감성의자』와 『벤치』
 박홍구 나무작가의 『감성의자』와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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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자작나무로 만든 <감성의자>는 박홍구 작가의 분신과도 같다. 박 작가가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데 주위를 둘러봐도 기댈 구석이 없던 즈음이었다. 그 무렵, 숱한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이 '감성의자'다.

목이 긴 기린을 연상시키고, 기능성에 아름다움을 더한 이 의자는 평소 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하다. 앉은 사람의 자세를 규정짓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자유롭고 편안하게 앉을 수 있다.

박홍구 나무작가의 추상탄화시리즈 중 '소반'
 박홍구 나무작가의 추상탄화시리즈 중 '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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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자'에 이어 박홍구 작가는 나무를 불에 태워 무늬를 내고 작품을 보다 더 단단하고 강하게 해주는 박홍구 탄화시리즈 중 추상탄화기법을 사용하여 '소반', '접시', '벤치' 등의 작품을 제작했다. 뒤를 이어 선보인 작품은 삼각뿔 조형물 오브제 <나머지>(What is left)다.

"굉장히 근사하고 멋진 작품이 나올 거라는 큰 꿈을 갖고 시작했죠. 그런데 결과물은 아주 단순했어요. 작품이 나오기까지 저에겐 상당한 갈등과 고민의 시간이었고요. 목수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나무고, 보통 쓰지 못하여 버리는 것을 '나머지' 라고 하는데 제 작품 '나머지'는 쓸 수 있는 나무의 70퍼센트를 버렸거든요."

욕심을 버리고 비움으로서 탄생한 작품, 박홍구 작가의 철학이 오롯이 스며있는 오브제 작품 '<나머지>(What is left)는 오는 2월 21일부터~2월25일까지 영국 사치갤러리에서 주관하는 콜렉트(Collect)에 출품 된다.

박홍구 작가의 집 마당에는 나무가 있다. 땅에 뿌리를 깊이 박은 나무, 강원도 어디쯤에서 자라다가 여행 온 나무 등. 그 나무들은 때로 비바람을 맞고 때로 따스한 볕을 쬔다. 들녘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매섭고 차가운 겨울을 온몸으로 견딘다. 그렇게 나무는 깊어지고 순해진다. 박홍구 작가는 나무에게 기대고 나무는 박 작가를 통해 나무 본연의 빛을 발한다. 박홍구 작가와 '나무'는 삶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다.


태그:#이천시 설성면, #나무작가 , #감성의자, #나머지, #사치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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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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