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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나무'를 품고 있는 해남 대흥사는 유서 깊은 절집이다. 천불전의 문살에서도 세월의 무게가 느겨진다.
 '전라도 천년나무'를 품고 있는 해남 대흥사는 유서 깊은 절집이다. 천불전의 문살에서도 세월의 무게가 느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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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을 부리던 맹추위가 물러나고 있다. 서서히 봄마중을 해야 할 때다. 설날도 코앞이다. 한편으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시간을 붙들어 매놓고 싶다. 한 살 더 먹은 나이도 이제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해를 붙잡은 나무를 찾아간다. 올해가 전라도 정도 천년이다. '전라도'라는 지명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게 1018년(고려 현종 9년)이다. 전주를 중심으로 한 '강남도'와 나주·광주·승주를 중심으로 한 '해양도'를 합치고,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 이름 붙였다.

경상도가 그로부터 296년 뒤인 1314년, 충청도는 그보다도 42년 뒤인 1356년에 생겨났다. 강원도는 1395년, 평안도는 1413년, 경기도가 1414년, 황해도가 1417년, 함경도가 1509년에 등장했다. 전라남·북도와 광주광역시가 손을 잡고 올해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다.

두륜산 만일암 터에 우뚝 선 수령 1100년의 느티나무. '전라도 천년나무'로 지정됐다.
 두륜산 만일암 터에 우뚝 선 수령 1100년의 느티나무. '전라도 천년나무'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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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나무의 위용. 성인 예닐곱 명이 두 팔을 벌려야 닿을 정도로 굵다. 수령이 1100년 가량으로 추정된다.
 전라도 천년나무의 위용. 성인 예닐곱 명이 두 팔을 벌려야 닿을 정도로 굵다. 수령이 1100년 가량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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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을 기념하는 '천년나무'도 최근 선정됐다. '전라도 천년나무'다. 전남도내에는 보호수와 천연기념물 등으로 지정된 나무가 4100여 그루 있다. 전라남도는 이 가운데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해남 느티나무와 강진 푸조나무, 진도 비자나무 세 그루를 뽑았고, 이를 대상으로 SNS 설문조사를 거쳐 해남 느티나무를 '전라도 천년나무'로 선정했다.

전라도 천년나무는 해남 두륜산의 만일암(挽日庵) 터에 있다. 북암에서 정상으로 가는 중간쯤이다. 나무의 높이가 22m, 둘레는 성인 예닐곱 명이 두 팔을 벌려야 닿을 정도인 9.6m에 이른다. 수령이 1100년 가량으로 추정된다.

전라도 천년나무의 가지들. 초록으로 무성하지 않고, 이파리도 하나 남지 않은 앙상한 모습이지만 아름답기만 하다.
 전라도 천년나무의 가지들. 초록으로 무성하지 않고, 이파리도 하나 남지 않은 앙상한 모습이지만 아름답기만 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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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초록이 무성하거나, 이파리가 빨갛게 노랗게 단풍 든 가을에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파리를 다 털어내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모습도 아름답다. 그 사이로 드러나는 하늘과 구름이 예쁘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겨울햇살도 눈부시다. 엄동설한을 견뎌내며 초록을 준비하는 듬직함도 엿보여 경이롭다. 편견과 달리 겨울나무가 달리 보인다.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모양새가 더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전라도 천년나무'를 만나러 만일암 터로 가는 길. 산길에 흰눈이 수북한 지난 2월 6일 풍경이다.
 '전라도 천년나무'를 만나러 만일암 터로 가는 길. 산길에 흰눈이 수북한 지난 2월 6일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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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암 터의 5층석탑. 주변에 석등 부속자재와 우물터 등이 흩어져 있어 절터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일암 터의 5층석탑. 주변에 석등 부속자재와 우물터 등이 흩어져 있어 절터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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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나무가 우뚝 선 만일암 터는 두륜산의 정상부인 가련봉(703m) 아래에 있다. 5층 석탑이 세워져 있다. 주변에 석등 부속자재와 우물터 등이 흩어져 있어 절터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석탑은 높이 5.4m, 고려 중기 12∼13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탑의 꼭대기는 남아있지 않다. 전해오는 고서(挽日庵址)에서 암자의 마당 가운데에 7층 석탑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7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만일암도 대흥사보다 100여 년 앞서, 백제 구이신왕 때(426년) 정관존자가 세웠다는 기록(挽日庵古記)도 전해지고 있다.

'전라도 천년나무'를 찾아 만일암 터로 가는 길. 만일암 터가 300미터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지난 2월 6일 오후 풍경이다.
 '전라도 천년나무'를 찾아 만일암 터로 가는 길. 만일암 터가 300미터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지난 2월 6일 오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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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나무'로 지정된 해남 두륜산의 느티나무. 미륵불 조성과 관련, 해를 붙잡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전라도 천년나무'로 지정된 해남 두륜산의 느티나무. 미륵불 조성과 관련, 해를 붙잡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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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나무와 관련된 전설도 전해진다. 해를 붙잡은 나무라는 얘기다. 만일암(挽日庵)의 '悗日'은 한자로 잡아당길 만, 해 일을 쓴다. 해를 잡아 매 놓은 암자다. 북미륵과 남미륵 조성 전설과 엮인다. 이 나무에 해를 매달아 놓고 하루 만에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과 남미륵암의 마애불입상을 조성했다는 전설이다.

아주 오랜 옛날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에 천동과 천녀가 살았다. 이들은 어느 날, 천상의 계율을 어겨 지상으로 쫓겨났다. 그곳이 해남 두륜산이다. 천동과 천녀는 옥황상제한테 손이 발 되도록 빌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얻었다. 하루 만에 바위에다 불상을 조각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천동과 천녀는 하루에 불상을 조각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꾀를 냈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매어두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든든한 끈으로 이 나무에다 해를 매달아 놓은 천녀는 북쪽바위(북암)에 좌상의 불상을, 천동은 남쪽바위(남암)에 입상의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느티나무에 해를 붙잡아 매어두고 천녀가 조각했다는 전설을 지닌 두륜산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 국보 제308호로 지정돼 있다.
 느티나무에 해를 붙잡아 매어두고 천녀가 조각했다는 전설을 지닌 두륜산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 국보 제308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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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붙잡아 둔 천동과 천녀는 따로 열심히 불상을 깎았다. 해가 넘어갈 무렵, 앉은 미륵불(좌상)을 조각하던 천녀가 입상을 조각하는 천동보다 먼저 조각을 끝냈다. 미륵불 조각을 끝낸 천녀는 해를 붙잡아둔 느티나무에서 천동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천동이 오지 않았다.

천녀는 불안해졌다. 해가 자꾸 서산 너머로 기울려고 해 마음이 초조해졌다. 하늘나라로 빨리 올라가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망설이던 천녀는 해를 매달아 놓은 끈을 잘라버리고, 혼자서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렸다. 해를 놓쳐버린 천동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두륜산 산신령으로 남았다는 전설이다.

천녀가 조각한 불상이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이다. 천동이 깎은 불상은 남미륵암의 마애불입상이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천동과 천녀가 매어둔 큰 나무가 두륜산 느티나무이다. 이 나무가 '전라도 천년나무'다.

전라남도는 오는 3월 하순, 이 나무 앞에서 천년나무 현판식을 한다. 나무가 경사지고 바위가 많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점을 감안, 방문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비하고 포토존도 설치할 예정이다.

대흥사에서 연리근을 이루고 있는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비유해 ‘사랑나무’, 절집에서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행운나무’로 불린다.
 대흥사에서 연리근을 이루고 있는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비유해 ‘사랑나무’, 절집에서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행운나무’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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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 ‘누워있는 비로자나 와불(臥佛)상’. 두륜봉이 부처님의 머리, 가련봉은 가슴, 노승봉은 손, 고계봉은 발의 형상을 하고 있다.
 두륜산 ‘누워있는 비로자나 와불(臥佛)상’. 두륜봉이 부처님의 머리, 가련봉은 가슴, 노승봉은 손, 고계봉은 발의 형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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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에도 눈길 끄는 나무가 있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느티나무다. 수령 500년 된 나무의 뿌리가 한데 엉켜 연리근을 이루고 있다.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비유해 '사랑나무'라 부른다. 절집에서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행운나무'로도 불린다. 해마다 입시 때면 수많은 학부모들이 찾아와 자녀의 합격을 비는 기도를 올리는 나무이기도 하다.

대흥사에서 보이는 '누워있는 비로자나 와불(臥佛)상'도 일품이다. 대흥사 해탈문에서 산정을 올려다보면 보인다. 두륜봉이 부처님의 머리, 가련봉은 가슴, 노승봉은 손, 고계봉은 발의 형상을 하고 있다.

절집 당우에 걸려있는 편액도 눈여겨봐야 할 유물이다. 무량수각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다. 서산대사의 유품이 보관돼 있는 표충사의 편액은 정조대왕이 썼다. 대웅보전은 완도 신지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차문화의 성지 일지암도 대흥사에 딸려 있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숲길도 아름답다.

대흥사 일지암은 한국 차문화의 성지로 통한다. 일지암으로 오르는 계단에 하얀 눈이 쌓여 더 아름답다.
 대흥사 일지암은 한국 차문화의 성지로 통한다. 일지암으로 오르는 계단에 하얀 눈이 쌓여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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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차문화의 성지로 통하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 눈이 내린 지난 2월 6일 풍경이다.
 한국 차문화의 성지로 통하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 눈이 내린 지난 2월 6일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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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전라도 천년나무 찾아가는 길
대흥사에서 2㎞ 남짓 떨어져 있다. 서산대사를 기리는 표충사 앞에서 가련봉·두륜봉으로 가는 산길을 따라 일지암 앞을 거쳐 만일암 터로 간다. 숲길이 잘 단장돼 있다. 경사는 조금 있지만 산책코스라 해도 무방하다.



태그:#전라도, #전라도천년나무, #천년수, #해남 대흥사, #만일암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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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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