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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이동이 시작되는 설이다. 이번 명절 연휴는 15일부터 18일까지 총 나흘. 멀리 여행을 다녀오기에는 촉박하고, 가족·친지들과 떡국 한 그릇 먹고 끝내기에는 아쉬운 이들에게 아트 투어를 추천한다. 예약과 채비 없이도 대중교통 타고 당일치기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한다면 오산이다. 작가들의 미술작품에서 뜻밖의 영감과 동력을 얻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작품들을 보면서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설 선물'로 받았다. 연휴에도 열리는 서울 지역 전시회 3곳을 골라봤다.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 한국·일본·중국]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특별전

다른듯 같은듯 다양한 호랑이 그림
 다른듯 같은듯 다양한 호랑이 그림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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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로 향한다. 2018년은 십이간지 중 개의 해이기는 하지만, 평창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모아 동아시아에서 상서로운 동물 중 최고로 치는 호랑이를 주제로 전시를 하고 있다. 평창 마스코트 '수호랑'도 백호를 상징한다.

한국은 '호랑이를 부리는 군자의 나라'라 불릴 만큼 호랑이와 친숙하다. 단군신화에도 나온다. 한국의 호랑이는 고분미술에서는 수호신으로, 불교미술에서는 산신의 정령으로, 회화에서는 군자와 벽사의 상징으로 표출됐다.

중국은 호랑이 숭배문화가 일찍부터 형성돼 수호신으로 쓰였다. 군자, 덕치, 권력의 상징이자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이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장신구와 공예품의 장식으로 사랑받았다.

일본의 경우는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예술작품에서 두루 쓰였다. 도교 미술에서는 사신과 십이지로, 불교 설화에서는 맹수로 등장했다. 에도시대에는 무기와 복식, 도자기, 장신구 등에 새겨져 무사들의 용맹과 길상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용과 호랑이를 그린 병풍.  소가 조쿠만.  종이에 먹
 용과 호랑이를 그린 병풍. 소가 조쿠만. 종이에 먹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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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당대 최고 그림 속에 남아 있는 호랑이들의 눈빛과 손대면 콕 찌를 듯이 한 올 한 올 서 있는 털을 묘사한 필치를 보고 있자니 배낭을 메고 있느라 살짝 굽어졌던 등이 쑤욱 펴진다. 닮고 싶다. 뚫어지라 쳐다보는 호랑이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니 잡념들이 사라진다. 가벼운 것들은 가볍게 흘려 버릴 것, 그러나 행해야 할 것은 분명히 행할 것. 전시장 내의 공기를 빨아들여 다시 내뿜는 호랑이의 숨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듯했다.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한국·일본·중국'전은 오는 3월 1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02-2077-9000)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 설날 당일에는 휴관한다. 입장료는 성인 3000원, 초·중·고·대학생 2500원, 65세 이상 및 유아(5~7세)는 2000원이다.

[박대성,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 한국화의 거장

독도,박대성.  218x800cm, Ink on paper, 2015
 독도,박대성. 218x800cm, Ink on paper, 2015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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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은 갈 때마다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역시 오늘도 보물상자 발견!

小山(소산) 박대성.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고는 하나 겸재 정선에서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선생으로 이어지는 실경산수의 계보를 잇는 한국화의 거장으로 불린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여의고, 왼쪽 팔까지 잃었지만 그림에 대한 사랑은 그를 '작은 산'이 아니라 큰 산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는 1965년 국제미술대전 첫 입선을 시작으로 6년 연속 입선했다. 대만 유학 기간에는 대만 고궁박물관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그림을 매일 두 점씩 볼 수 있는 참관증을 받아 자신의 그림 세계를 성숙시켰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1994년에는 미국의 뉴욕 소호에서 현대미술을 접하면서 전통의 중요성과 서(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전시장을 들어서자 벽 한 면을 한 점의 작품으로 꽉 채운 그 기운에 압도당한다. 붓을 쓸어내리며 눈을 내리고 꽃을 피우는 노화가의 모습이 화폭 속 세계에 사는 느낌이다. 과거의 산물인 전통과 현대의 해석이 어우러져 새로운 예술적 생명력이 탄생한 듯하다.

박대성
 박대성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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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는 최고의 회화야.
그중에서도 최고는 초서와 예서지.
이왕 하려면 제일 좋은 것을 하는 거지 뭐."
- 박대성

한자를 못 읽으면 어떤가. 초서와 예서를 구별 못 해도 좋다. 허공에서 손끝으로 먹선을 따라가 본다. 어떤 곳에서는 어깨춤이 나오다가 손목이 물결처럼 춤을 추고, 어떤 곳에서는 발가락이 까딱인다. 서(書)를 그림으로, 리듬으로 즐겨 본다.

'박대성,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전은 3월 4일까지 인사동 인사가나아트센터(02-736-1020)에서 열린다. 명절 당일은 휴관한다. 입장료는 3000원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 교과서에 나온 조각가

걸어가는 사람.알베르토  자코메티. 원본 석고.
 걸어가는 사람.알베르토 자코메티. 원본 석고.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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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자코메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작품 '걸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걸어가는 사람'은 단지 걸어갈 뿐이었지만 첫눈에 마음을 훅 빼앗겨 버렸다. 앙상하고, 길쭉하고, 만지다 만 듯, 휘청휘청 걸어가는 모습이 그냥 그대로 '사람'이었다. '사람'은 외로웠고, 불안했고, 마음의 상처가 있으며,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러나 한 발을 내디뎌 걸었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걸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 알베르토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의 석고 원본을 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난다. '걸어가는 사람'은 나처럼 걷고 있는 듯했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고, 알고 있더라도 걸어야 하는 그런 길을 걷고 있는 듯이...

전시장을 다시 처음부터 돌아본다. '앉아 있는 남자의 흉상(로타르 Ⅲ)'이 마음을 붙잡는다. 가만히 앉아 있는 그를 매만지는 자코메티가 보이는 듯하다. 그는 석고 원본을 매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로타르의 영혼을 매만졌을 것이다. 그의 유작이라서 그런지 마음에 더 남는다. 조형은 대체로 감상하기가 어려웠는데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한 번 더 가서 더 천천히 보고 싶다.

알베르트 자코메티전 전시장 입구
 알베르트 자코메티전 전시장 입구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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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자코메티. 피카소마저도 질투를 했고, 사르트르와 보부와르가 존경하고 우정을 나눴던 사람. 1차·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숱한 죽음을 본 사람. '인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죽어버릴 수 있기에' 한 발을 내디뎌 걸어야만 했던 사람. 그래서 걸으라고 이야기하는 자코메티. 그의 전시회에는 아릿하면서도 마음이 꽉 차오르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은 4월 15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02-532-4407)에서 열린다. 설날에도 정상 개관한다. 입장료는 성인 1만6000원, 청소년 1만 원, 어린이 8000원이다.

좀 더 여유가 있다면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4월 15일까지 전시되는 '예르미타시박물관전, 겨울 궁전에서 온 프랑스 미술'전이나 한가람미술관에서 3월 11일까지 전시하는 '마리 로랑생'전도 가보길 추천한다. 언제나 그렇듯 예술은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꽁꽁 감춰놨던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태그:#동아시아의 호랑이미술, #박대성,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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