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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내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갈등하고 불화하는 '위기의 주부' 이야기입니다. 정체성의 혼란과 번뇌를 글로 풀어보며 나의 언어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임금노동자가 작업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돌보고 음식과 청소 및 집안의 자잘한 일들을 처리해줄 사람이 필요해졌으나 별도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무임금 노동'으로 대체했고 경제에서 지워버렸다.
 임금노동자가 작업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돌보고 음식과 청소 및 집안의 자잘한 일들을 처리해줄 사람이 필요해졌으나 별도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무임금 노동'으로 대체했고 경제에서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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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등하게 생계를 책임지던 우리 부부는 아기가 태어난 이후, 누가 시키지도 계획하지도 않았지만 완벽한 성별 분업을 자연스럽게 이루었다. 남편은 임금 노동자이면서 생계 부양자가 되었고 나는 가사 및 돌봄 노동자가 되었다.

사실 내가 무엇이 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아기를 돌보고 방과 주방을 오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직업란을 보니 망설여졌다. 나는 '주부'인가. 언젠가부터 '전업'이라는 말이 붙어버린, 직업이 되어버린 주부. 그 말이 내 목구멍에 턱 걸렸다.

회사원과 주부. 식탁과 의자처럼 익숙해 보이는 조합이지만 알고 보면 최근에야 만들어진 매우 낯선 분업형태다. 식구들이 같이 밭일하던 시절, 아이들 돌보기나 집안일은 나눠서 하거나 사람을 두며 처리했다. 회사원도 없었지만 주부도 없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진행되면서 자급자족 경제가 불가능해졌고 식구 중 일부는 공장이나 회사로 출퇴근 하며 전일제 근무를 하고 임금노동을 받게 되었다. 가정은 살벌한 바깥세상에서 뒹굴고 온 이들을 감싸줄 따듯한 보금자리가 되어야 했다.

임금노동자가 작업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돌보고 음식과 청소 및 집안의 자잘한 일들을 처리해줄 사람이 필요해졌으나 별도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무임금 노동'으로 대체했고 경제에서 지워버렸다. 가정을 아늑하게 꾸리는 임무 또한 부여받은 누군가로 말이다. 바로 주부다. 

남편에게 아침을 차려주지 않고 육아와 가사에 허덕이면서도 마음을 쏟지 못하고 그렇다고 직장을 다니지도 않는 나는 직무유기 하는 기분이었다. 돈벌이를 하지 못하는 기혼 여성은 자동으로 전업주부로 호명되지만 쉽게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업주부임을 인정하면 가부장체제 유지를 위한 성별 역할분업에 군소리 없이 만족해야 할 것 같았고, 전업주부를 거부하면 육아와 가사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만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3년 넘게 정체성의 분열을 거듭하며 마음속으로 싸움과 화해를 반복됐다.

워킹맘과 전업맘이라는 말

전업주부만큼 '워킹맘'이라는 말도 범람했다. 10년 가까이 했던 직장생활은 무용해졌고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들어왔다. 나는 소외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직장에서 하는 일이 '일(work)'이면 집안에서 하는 주부의 일은 '일(work)'이 아닌 무언가 싶었다. 버젓이 전'업(業)'이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주부가 파업하면 경제적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와 상관없이, 육아와 가사는 '비생산활동'이고 전업주부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비경제활동인구란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으로 학생, 군인, 전업주부 등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전업주부는 직업처럼 보이지만 엄연히는 직업은 아닌 것이다.

또 무보수 노동이고 수치화, 가시화되지 못하기에 직업(working)으로도 치지 않는다. 대신 '전업'을 붙임으로써 직업처럼 일해야 한다는 무언의 강요가 있다. 아무리 육아와 가사가 위대하고 가치 있다고 항변해도 이런 언어 앞에선 무력했다.

'전업맘'이라는 말도 이상하다. 엄마 역할에 '전업'이 있다면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부업맘'인가. 워킹맘의 상대어로 '육아맘'도 있는데 워킹맘 역시 육아를 한다. 하루 중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 해도 직장을 다녀도 아이가 아프면 달려가야 하는 육아는 엄마에게 할당되어 있다. 워킹맘이란 말이 전업맘의 노동을 가린다면, 전업맘이란 말은 워킹맘의 육아를 가리는 건 아닐까. 사실은 엄마들은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일하는 엄마'인데 말이다.

워킹맘의 기준은 뭘까. 대부분 전일제 근무를 기준으로 하는 것 같다. 카페에서 하루 3시간 시간제 근무를 하는 여성, 집에서 부업을 하는 엄마들은 따로 '알바맘'이라고 한단다. 그렇게 보면 '워킹맘'의 정확한 표현은 '직장맘, 취업맘'이어야 하고, 워킹맘의 또 다른 부류는 '프리랜서맘이거나 알바맘'일 것이다. 하지만 애매한 위치에 걸쳐 있거나 무보수 활동을 하는 주부들은 자신을 '전업주부/전업맘'라고 쉽게 칭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식의 역학관계가 조금 이상하다.

전업주부는 균질하지도, 영원하지도 않다

나는 전업주부로 주로 호명되므로 이에 대해 써보겠다. 전업주부들을 집안의 CEO라고 추켜 세워주는 자기계발서도 있지만, '노는 여자들'이라는 혹평도 난무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평가받는 주부들의 실체가 있기는 한 걸까 궁금했다.

아이가 어릴 땐 온종일 육아하느라 쉴 겨를 없다. 조금 커서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면 집안일 마치고 잠시 쉬더라도 아이들이 집에 오면 그때부터 '근무 시작', 퇴근도 휴일도 없다. 이 와중에 뭐라도 배우거나 적은 돈이라도 벌어보겠다면서 분투하는 게 내가 겪고 보아온 '평범한' 주부들의 실태다.

전업주부들에 대한 과대평가와 시기 혹은 무시는 여성학자 정희진이 지난 2012년 11월 <한겨레> 칼럼에서 언급했듯 "이 나라 2500만 여성의 처지가 모두 다른데 극소수 여성을 과잉 재현, 이들만 여성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취업 상태가 아닌 기혼여성들을 단일한 특성으로 묶고 동질적인 존재로 규정하기에 벌어진다.

남편 월급이 넉넉해 전업주부가 되었다고 한 다발로 묶으려 하지만, 육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경력단절여성이 되거나,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아이를 더 잘 돌보고 싶어 자발적으로 주부가 되기도 한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애매한 경우는 수두룩하다. 남편 월급이 빠듯해도, 육아와 가사에 소질도 적성도 맞지 않아도, 전업주부 이외의 선택지가 없는 경우도 많다. 직장인이 그렇듯 저마다 주부가 된 이유도, 주부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도 다양하다.

평생직장이 사라졌듯 전업주부 역시 임시직이며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이다. 이혼, 남편의 실직, 늘어나는 교육비로 전업주부직을 박탈당하고, 40대 후반 이후에서야 생계부양자로 전환된 여성의 사례를 나는 수시로 목격한다. 반대로 남성 생계부양자 역시 언젠가 전업주부가 되어 배우자(아내)의 양말과 속옷을 빨아줘야 할 날이 온다. 지금의 근로자들은 잠재적 전업주부이며 지금의 전업주부들도 잠재적 근로자이다. 

집에 있는 기혼여성이라고 해서 다 집안일을 전업으로 하진 않는다. 전업주부(맘)라고 한다면 하루 9~10시간 이상 집안일(육아)만 한다는 건데, 전업주부라고 불리는 엄마들 중 상당수가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면서 집안일이 아닌 다른 활동을 시작해 '전업'주부에서 이탈한다. 임금노동을 받지 않는 사회 활동, 배움, 취업 준비 등 취미 이상으로 노력을 쏟는 일을 하거나 시간제 근무나 비정기적 벌이를 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나 역시 전업주부로 보이지만 글쓰기에 취미 이상의 노력과 시간을 들이고, 10년간 본업이었던 디자인 일을 조금씩 하기도 한다. 워킹맘도 전업주부도 아닌 그 사이에 있다. '주부 역할'이 일부 있지만 '전업'은 아닌 것이다.

직장인이라는 말이 각각의 근로자들(파트타임, 프리랜서, 비정규직, 정규직)을 설명할 수 없듯이, '전업주부'라는 말도 각각의 주부들, 집에 있는 여성들을 통합하지 못한다. 그런데 왜 '전업주부'라는 말로 깡그리 묶으며 '전업 집안일'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하는 걸까. 다른 일을 해도 집안일만큼은 전업을 유지하라는 말일까. 나는 궁금하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도 괜찮아 

 워킹맘(직장맘, 취업맘, 취업주부)은 직장일을 하면서도 엄마이자 주부여야 하는 이중부담을, 전업맘(전업주부, 육아맘) 육아와 가사를 프로처럼 해야 하는 압박감을 표현한다.
 워킹맘(직장맘, 취업맘, 취업주부)은 직장일을 하면서도 엄마이자 주부여야 하는 이중부담을, 전업맘(전업주부, 육아맘) 육아와 가사를 프로처럼 해야 하는 압박감을 표현한다.
ⓒ tvN 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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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직장맘, 취업맘, 취업주부)은 직장일을 하면서도 엄마이자 주부여야 하는 이중부담을, 전업맘(전업주부, 육아맘) 육아와 가사를 프로처럼 해야 하는 압박감을 표현한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엄마들의 노동세계를 쉽게 명명하는 수단이 되었다.

동시에 엄마들을 '일하는 엄마/경제활동/임금노동'이거나 '육아하는 엄마/비경제활동/무임금노동'으로 무 가르듯 나눌 수 있다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앞에서 확인했듯 워킹맘과 전업주부 사이에 존재하는 식별 불가능한 무수한 엄마들을 싹 지워버렸다. 워킹맘이라고 하기엔 임금노동의 형태가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고, 전업주부라고 하기엔 육아와 가사만으로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은 많은 엄마들이 그 사이에 촘촘히 박혀있지만 명명되지 못한 채 헤맨다.

별거 아닌 단어 가지고 시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언어'는 생각보다 강력하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워킹맘과 전업주부(맘)은 엄마들의 상황과 입장을 대변하는 언어인가? 혹시 엄마들을 특정 정체성 안에 가두고 구별 지으며 편 가르지는 않는지, 분류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배제하고, 동시에 분류에 넣기 위해 계속 단일하게 규정지으며 억압으로 작동하고 있진 않은지. 여전히 "일할래, 육아(집안일)'만' 할래"라고 물으며,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는 아닌지 묻고 싶다. 아빠들에겐 아직까진 누구도 묻지 않는 질문.

엄마의 일, 주부의 일, 돈벌이로써 일,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 그 어딘가에서 헤매면서 혼란과 갈등을 반복하지만 어디에도 쉽사리 나를 두고 싶지 않다. 특정 정체성으로 나를 설명할 수 없기에, 나에겐 무수한 의문과 질문이 감히 탄생했다.

이 물음들을 기꺼이 껴안으면서, 워킹맘도 아니고 전업주부도 아닌 어딘가에서 나의 언어, 나의 자리를 찾고 싶다. 물론 혼자서는 못 한다. 남편과 함께. 나의 좌표가 이동하는 만큼 남편의 좌표 또한 움직여야 할 테니. 그 어딘가로.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중복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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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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