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 12일 오후 2시15분]

"진짜 역겹다. 이래서 '기레기'라고 하는 것이다(This is really disgusting. This is where '기레기' comes from)."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질문해 눈길을 끌었던 애나 파이필드 미 <워싱턴포스트> 도쿄 지국장. 그는 지난 8일 <연합뉴스>가 북한 응원단이 휴게소 화장실 내에서 촬영한 사진들에 대해 자신의 트위터에 위와 같은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기레기'라는 단어를 한국어로 표기해 강조하기까지 했다.

 <워싱턴 포스트> 애나 파이필드 기자 트위터 갈무리

<워싱턴 포스트> 애나 파이필드 기자 트위터 갈무리 ⓒ 트위터 캡처


외신 기자의 눈에, 그것도 여성 기자의 눈에 <연합뉴스>의 화장실 사진이 어떻게 비쳤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끄러운 일침이다. 심지어 <연합뉴스>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 국가 지원을 받는다. 2016년엔 384억 원, 지난해엔 339억 원을 지원받았고, 올해는 332억 원을 지원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일자 일부 문제된 사진을 삭제했다는 <연합뉴스>의 해명은 더욱 기괴했다. 7일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연합뉴스> 사진부 관계자는 "여성 기자가 찍은 것인데 (설명을 들어보니) 화장실 안에서 응원단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고 있는 시민들이 있었고, 그렇다 보니 '시민 스케치'를 한다는 생각에 판단이 흐려졌던 것 같다. 문제가 있는 사진이라 내부에서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국가기간통신사의 인권의식 수준은 어디로 실종됐는지 의아해지는 대목이다. 문제는 <연합뉴스>만 이런 논조의 보도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7일 북한 응원단 화장실 사진을 포토 에세이 형식으로 나열했다. <중앙일보> 역시 문제의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민영통신사인 <뉴스1>도 이날 북한 응원단의 사진을 보도하며 "코트 벗은 응원단"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마치 페티시즘을 자랑하는 듯 응원단 여성 여럿의 구두와 종아리만 따로 찍은 사진을 포토뉴스로 내보내는 '관음증적' 시선을 노출했다.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관련 뉴스들을 통해 여성을 향한 일부 한국 언론의 '시선'과 무감각한 인권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 TV조선 >의 '변태'적 몰래 카메라

 < TV조선 >이 '단독'을 달고 북한 여성 응원단이 숙소에서 남한 방송을 시청하는 것을 카메라로 몰래 찍어 보도했다.

< TV조선 >이 '단독'을 달고 북한 여성 응원단이 숙소에서 남한 방송을 시청하는 것을 카메라로 몰래 찍어 보도했다. ⓒ TV조선


그 '반인권적'인 보도 행렬에 < TV조선 >도 동참했다. 이번엔 화장실이 아닌 개인 호텔방 내부였다. 애나 파이필드 기자가 접했다면 다시금 "역겹다"를 외치기에 충분한 보도가 아닐 수 없다.

"밤이 되면 숙소에서 우리의 TV 방송을 시청합니다. 딱히 비밀스러운 시청도 아닌 듯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보기도 합니다."

여성 북한 응원단의 숙소 창문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카메라 앵글을 한껏 당겼고 조악해진 화질이어도 상관없었다. 창 안으로 여성들이 움직이고, 앉아 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흥신소에서 찍은 '몰래카메라'가 무색해 보일 지경이다. 10일 < TV조선 >은 몇 초짜리 화면을 내보내며 "[단독] 북한 응원단, 숙소에서 남한 방송 시청"이란 제목을 달았다.

< TV조선 > 앵커는 이 '몰카' 영상을 소개하며 "일정이 없는 휴식 시간, 북한 응원단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라며 "저희 취재진이 남한 TV를 시청하고 있는 북한 응원단의 모습을 단독으로 포착했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러니까, 공식 일정 외에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북한 응원단의 모습을 '동의 없이' 촬영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셈이다.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북한 측은 애초 숙소 측에 조선중앙TV 재송신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북한 주민의 남한 TV 시청은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며 북한 정권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입니다."

< TV조선 >은 이러한 멘트로 보도를 마무리했다.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들의 남한 TV 시청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그것이 위법 사안이라는 것을 < TV조선 > 역시 모르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것을 알고도 '북한 응원단'이 남한 TV를 시청했다는 사실을 버젓이 보도했다면, 북한 응원단의 안위마저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이지 않겠는가.

"[단독] 북한 응원단, 숙소에서 남한 방송 시청" 보도는 그저 '북한 응원단'의 개인 방 내부를, 그것도 여성 응원단의 방에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골몰한 흔적밖에 보이지 않는다. 북한 응원단의 인권은커녕 그들의 안위마저 위협하는 < TV조선 >의 보도는 반인권적인 언론의 보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청자들의 눈이라고 달랐을까. 이 뉴스의 포털 댓글 창에는 "[단독] TV조선 여자 숙소 몰카", "숙소를 도촬하는 게 맞는 건가?", "성추행 방송국이냐?", "고자질하고 싶었던 게로구나-매우 악질적인 찌롸씨"와 같은 댓글들이 수백 개 달렸다.

이 정도면 '보도 참사'

<연합뉴스>부터 <중앙일보>, < TV조선 >까지. 각기 국가기간통신사, 유력 일간지, 종합편성채널인 이들 언론 보도는 기존 '관음증' 수준의 여성 대상화와 북한 특수가 결합한 '보도 참사'라 할 수 있다.

그간 여성을 대상화하고, '○○녀'와 같은 기사 제목을 남발하던 다수 한국 언론의 '성희롱'과 다를 바 없는 작태가 평창올림픽 기간 짧게 방한한 북한 여성들을 향한 과도한 관심과 결합해 이러한 보도들을 양산해 내는 것이다. 더군다나 10일 < TV조선 >의 보도는 북한 응원단 개인의 안위마저 위협할 수 있음을 알고도 버젓이 보도한 비윤리성의 극치를 보여줬다.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 프레임으로 전환하는 데 일조하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한 언론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여성) 북한 응원단'의 외모와 외양을 전시하고 '몰카'와 다름없는 화면과 앵글을 잡는 데 혈안이 됐다. 불과 며칠 만에 벌어진 극적인 태세 변화다. 이것이 한국 유력 언론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아찔하고 참담하다.

북한응원단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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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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