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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만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와 남북정상회담을 제의 받았다.
▲ 김여정으로부터 대북초청 메세지를 전달 받은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만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와 남북정상회담을 제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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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준비된 대화 제의, 평창 올림픽은 사태의 임시동결

2018년 2월 9일, 서해 직항로를 통해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한국에 도착했다. 서해직항로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으로 처음 열린 하늘길이며 편명 PRK-615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서해직항로와 6월 15일 기념하는 편명, 북의 '로열패밀리' 김여정. 북한은 어느정도 구색을 갖춰 대화를 준비 해온 모양이다.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의는 위와 같은 과정에서 이미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북한과 같은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에서는 지도자의 복장으로 대외기조를 밝히는 경우가 잦다. 북에서 국가지도자가 인민복을 착용한 경우 주로 자주적(고립적)인 의미와 지도자의 정통성을 강조하며, 양복은 대외개방의 의지를 표현할 때 착용되는 경향이 있다. 2016년의 김정은은 인민복을 입고 신년사를 했지만, 대조적으로 2018년의 김정은은 밝은 색 양복을 착용하며 평창 올림픽 참가의사를 밝혔다. 이것이 오늘자 김여정의 정상회담 용의 타진의 시발이었다.

북한이 신년부터 공세적으로 대화를 제의하는 이유가 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세력 일각이 주장하는 '위장 평화공세'는 절반은 사실이다. 북한의 우방이었던 중국이 본격적으로 대북제재에 참여하고 있어 북한 경제가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미국은 대화가 용이치 않으면 곧바로 '코피 터트리기(bloody nose) 전략'에 돌입하겠다 벼르고 있는 중이다. 한반도에는 불과 한 달여전 만해도 전쟁위기가 감돌았고, 평창 올림픽에 참여를 망설이는 나라가 제법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북한은 이 난국에 잠깐 시간을 벌 기회로 올림픽에 참여한 것이다. 평창 올림픽은 이 상황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잠시 '동결'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여건을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 발언의 취지는 무엇인가?

정치는 거래다. 현재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에게 '채찍'과 '회초리' 중에 하나를 고르라며 점잖게 어르고 있다. 김정은도 이를 잘 알고 다소 자세를 낮추어 성의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북의 대화제의에도 즉답을 하지 않고 "여건을 만들어 보자"고 말했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늦추고 어깃장을 놓는 등 그 진통의 과정을 이용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고 남남갈들을 유발할 요인을 미연에 차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북미대화에 북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며, 남북관계 못지 않게 이 문제의 주요한 변수는 '북미대화'라는 단서를 덧붙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정말 미국이 코피를 터뜨릴지 모르며, 대한민국은 여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북에게 앞으로의 예상 손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뒤, 합리적인 선택을 하라는 암묵적 압박인 셈이다.

김정은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통미봉남 전략이 어그러졌다. 미국은 일단 한국과 이야기 해보라며,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몸을 풀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바람에 의지할 곳이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잠시 평창 올림픽으로 과열 상황을 냉각한 후, 김정은의 의사를 묻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나서서 북의 고립에 숨구멍을 틔워주면, 북은 그 대가로 대한민국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물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거래 내용이 마음에 들지않으면, 언제든 대한민국이 미국에 보조를 맞춰 대북제재에 가세할 수 있다는 대한민국의 증가된 외교입지를 앞세웠다. 펜스 부통령은 때맞춰 강경발언을 해줌으로써 북한의 고립처지와 위기상황을 더욱 자극했다. 역설적으로 이 덕에 문 대통령의 거래 제안이 '약발'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대한 김정은의 대답은 '특사파견과 남북 정상회담 초청' 이었다.

평창이 제공한 마지막 기회, 김정은은 오판 말아야

문제는 평창 이후의 정세다. 한 번의 선택이 이야기의 결말을 결정지을지도 모른다. 김정은이 김여정을 특사로 보냈듯, 우리 정부는 임종석 비서실장 내지는 국정원장을 특사로 파견해 북한에 의견을 전달할 것이다. 아마 그 내용에는 '대화를 지지부진하게 끌면서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 것'과 '군사의제, 특히 핵문제 논의를 피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하는 조건으로 정상회담 밑바탕을 그릴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밀고 당기기 과정의 불필요한 잡음이 정권의 동력을 갉아먹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금강산 관광재개 및 경협 복원-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6자회담의 복원-김정은의 서울 방문이라는 하나의 흐름과, 트럼프의 코피 터트리기 북폭공습-한미일의 군사적 단합-중국의 외면이 불러올 파국의 흐름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대북문제를 민족의 애착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인접한 적국을 나의 의지대로 다루는 기술. 그것이 외교기에, 막다른 길에 몰린 북한에 조그만 숨구멍을 틔워주고 문재인은 김정은에게 청구서를 들이밀 것이다.

사인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김정은의 선택이다. 단 우리가 원하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더 얹을 회초리는 굉장히 매서울 것이다. 매를 덜어줄 때 줄 것 주고 끝내는 것. 어떠한 속내를 품더라도 예전처럼 쉽게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것을 감안해서 선택을 해야할 것이다. 평창은 대결 국면을 대화로 되돌릴 마지막 기회다. 김정은은 오판하지 않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입니다.



태그:#문재인, #김여정, #김정은, #특사, #평창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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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근로자, 부업 작가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과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를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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