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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1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1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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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에 대한 지원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청와대와 국정원까지 나섰는데,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밀양 송전탑, 강정 해군기지 건설, 한진중공업 파업 등 시국과 관련된 영화들이 주요 배제 대상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합동 '블랙리스트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아래 진상조사위)는 6일 "사회 참여적 독립다큐영화들이 박근혜 정부 시기, '문제 영화'로 분류되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지원사업에서 배제된 사실을 확인하였다"고 밝혔다.

이번에 드러난 지원 배제 영화는 모두 27건. 이번 추가 확인에 앞서서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이나 천안함 사건을 소재로 한 <천안함프로젝트> 등 사후적 지원배제 5건과 예술영화 지원배제 3건이 특검 수사 등에서 확인된 바 있다.

진상조사위는 이를 두고 "그동안 알려진 영화계 블랙리스트 사례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진상조사위가 지금까지 확인한 주요 지원 배제 영화를 살펴 보면 용산 참사(두개의 문2), 밀양 송전탑(밀양아리랑), 한진중공업(그림자들의 섬), 강정 해군기지(구럼비 바람이 분다), 세월호 참사 등 시국사건과 연관된 독립다큐영화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동시에 국가보안법(불안한 외출), 간첩(자백), 위안부(Twenty Two) 등 민감한 소재를 다루거나 노동(산다), 성 소수자(불온한 당신), 특정 정치인(투윅스)을 다룬 영화들도 포함되었다.

국정원까지 나서 "대통령님 비하 영화 개봉 차단 추진"

이들 영화에 대한 지원 배제에는 청와대와 국정원까지 개입한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문체부가 '문제영화 배제실행 계획'을 수립해 청와대 비서실에 보고하면 국정원이 수시로 문제영화에 대한 정보 동향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 진상조사위가 확보한 지난 2014년과 2015년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자료에는 "국가 정체성 훼손 독립영화 제작 및 유통(전용상영관) 방지를 위한 지원체계 개편" 등의 내용이 발견됐다.

국정원도 "대통령님 비하 독립영화 <철의 여인> 개봉 차단 추진"이란 보고에서 이를 "좌파의 노이즈 마케팅"이라 언급하며 "상영등급 제한 방안 및 상영 시 법적 대응 조치 강구" 등을 조치 사항으로 적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규탄 시위를 벌이는 모습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규탄 시위를 벌이는 모습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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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영화가 애초 제작되지 못하게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 예산을 끊고, 설사 제작되더라도 개봉을 하지 못하게 '다양성 영화개봉지원사업'을 막는 일은 영진위가 떠안았다. 진상조사위는 "영진위는 사회적 논란이 되지 않도록 심사위원구성 등 심사과정에 내밀히 개입하여 문제영화 배제를 실행하였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좌파', '반정부' 등 작품 내용을 사유로 지원사업에서 원천적으로 배제시킨 것은 심사과정의 공정성과 평등한 기회 보장을 훼손한 위법 부당한 행위"라면서 "독립영화 활동 자체를 위축시키고 독립다큐영화 제작 환경을 퇴보시키는 등 블랙리스트 실행으로 파생된 사회적·문화적 문제 또한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지원 배제 영화인 "화가 난다"... 진상조사위 "조사 범위 확대"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자료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지원에서 배제되어 온 영화인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밀양 송전탑 건설에 대한 주민들의 저항을 다룬 <밀양아리랑>이 '문제 영화'로 분류돼 지원 사업에서 배제된 것으로 나타난 박배일 감독은 <오마이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짐작은 했지만 실질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없어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이번에 확인하고 보니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 감독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전에는 다양한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있어 영화산업도 발전하고 독립영화인도 늘어났지만, 이후 사회적으로 민감한 영화들은 지원을 받지 못해 제작 환경이 힘들어졌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드러난 문건 외에도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영화들을 계속 배제해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위 역시 "박근혜 정부 시기 문제영화 배제 실행이 매우 은밀히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채로 실행되었기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배제 사례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면서 "영진위 사업 전반으로 조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태그:#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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