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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 돌아 선물 하나가 나의 손에 들어왔다. 이른바 '양갑 (兩甲) 선물'이다. 아마 고등학교 동기들 대부분이 환갑을 맞았고, 1년 빨리 입학한 친구들은 진갑이 되는 해인 모양이다. 진갑 환갑을 합쳐 '양갑'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 단어가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양갑잔치가 토요일에 치러져 나는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다. 주일 예배를 준비해야 할 목회자 입장에서 토요일 그것도 당일치기로 경북 김천에서 서울까지 다녀온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무리인 게 분명하다. 그래서 토요일 장거리 이동은 가급적 피하며 생활하고 있다.

동기회 김용빈 회장과 양승관 총무 등 친구들이 전화로 또 문자로 행사 참석을 권했지만 그들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유로 참석을 하지 못한 것이다. 행사에 가지는 못했지만 SNS를 통해 양갑 잔치를 시시각각 생방송 보듯 엿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몸은 비록 참석하지 못했지만 내용을 훤히 꿰뚫을 수 있어서 함께 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시절이 하 수상해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부부 동반 포함 2백 여 명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고 하니 듣는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았다. 고교 친구들이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부부용 은수저 세트 양갑연에 참석도 하지 못했는데 은수저 세트를 보내왔다. 이 은수저 세트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 부부용 은수저 세트 양갑연에 참석도 하지 못했는데 은수저 세트를 보내왔다. 이 은수저 세트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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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나는 양갑 잔치를 한동안 잊고 지냈다. 어제 자그마한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발송한 사람은 대구의 신재원으로 되어 있었다. 재원이는 고등학교 동기로 같은 대구경북 권역에 살고 있고 종종 연락해서 만나는 임의로운 사이의 친구이다.

물건을 개봉하지도 않은 채 보낸 친구에게 전화를 넣었다. 포장지를 뜯어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어떤 용도의 선물인지 또 내용물이 뭔지 등을 물었다. 재원이의 답변은 이랬다.

"평소 많이 도와주었다고 우리 동기회 회장이 특별이 선물 세 개를 챙겨 내게로 보냈네. 대구 동유는 직접 전달했고, 이 목사님 건 마음이 급해 우선 택배로 먼저 보낸 거라네. 선물 내용물은 부부 은수저 세트, 노년 초입에 들어섰으니 부부 금슬을 더욱 다지라는 뜻이 아닐까 싶네."

'70 양갑 잔치 기념'이라는 글자가 숟가락 손잡이 윗부분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보기만 해도 값나가는 제품임이 분명해 보였다. 두 가지 생각이 클로즈업 되었다. 잔치에 가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에 이어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내가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찬조금도 보내지 않았는데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게 된 것이 미안했다. 이 미안한 마음 속에는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될 줄 미리 알았다면 농촌 목회를 하는 빈한한 목사지만 적은 액수나마 찬조를 했을 것이다. 마음 홀가분하게.

부부용 은수저 세트에서 갑자기 나이를 읽은 것은 나만의 독특한 주관적 사고이긴 하다. 청춘 남녀가 결혼을 하고 새 가정을 꾸릴 때에도 부부 쌍 수저 세트는 필수 준비물다. 허나 그들의 수저에서 노년을 연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싱싱한 젊은이들의 전도양양한 미래를 조망할 뿐.

그런데 양갑 잔치 선물로 받은 은수저 세트에서 왜 노년의 나이를 읽게 된 걸까. 인생은 육십부터 또는 백세 인생 운운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환갑을 지나면 상노인에 속했다. 환갑잔치도 따지고 보면 오래 산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마을 전체가 모여 축하 잔치를 즐겼다.

쌍 수저를 보고 이런 생각이 몰려왔다. 내 연배의 사람들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훨씬 짧을 것이다. 두 벌의 수저는 언제 균형이 깨질지 모른다. 둘 중 누가 먼저 세상을 뜨는 날 하나의 수저는 주인을 잃게 되는 것이다. 가능한 한 오순도순 오래 살라는 염원이 그 선물에 담겨 있지 않을까.

사람은 한 가지 일이 지속 이어질 때 타성에 젖기 쉽다. 이것은 자칫 싫증으로 연결된다. 사람과의 관계도 이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처럼 모자라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일까. 금슬이 좋은 부부를 원앙지계(鴛鴦之契)라고 한다. 원앙은 한 쪽이 죽으면 다른 한 쪽도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 자유의지는 사고의 틀을 바꿀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된다. 친구들 중 벌써 짝을 잃은 이들이 있다. 고생만 하다가 먼저 세상을 뜬 친구의 아내가 불쌍하지만 남은 친구의 삶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수저 세트 선물로 인해 건강하게 백년해락(百年偕樂)할 다짐을 해 본다.

동기 모임에서 준비한 은수저 세트 선물은 과외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삶이 주위를 돌아 볼 틈을 주지 않았다. 환갑 진갑을 지나고 보니 없는 중에도 보는 시야가 다소 넓어졌다. 형제들과도 더 자주 연락하고 친구들과의 만남 횟수도 더 늘려야겠다.

삶에 대단한 차이가 존재하는 게 아닐 것이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은 사유의 산물이 아닐까. 황금성을 쌓고 부자유하게 사는 것보다 시골 누항(陋巷)이지만 늘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며 인정을 나누는 삶을 그려본다.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여기서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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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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