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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년 이차돈의 순교 이후 신라사회는 급격히 변화한다. 불교의 공인으로 많은 신라 사람들이 부처의 교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차돈의 ‘멘토’라고도 부를 수 있는 법흥왕은 말년에 왕의 자리를 버리고 승려가 되기도 했다. 6세기 중반 이후 ‘불국정토(佛國淨土)’가 된 신라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527년 이차돈의 순교 이후 신라사회는 급격히 변화한다. 불교의 공인으로 많은 신라 사람들이 부처의 교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차돈의 ‘멘토’라고도 부를 수 있는 법흥왕은 말년에 왕의 자리를 버리고 승려가 되기도 했다. 6세기 중반 이후 ‘불국정토(佛國淨土)’가 된 신라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 이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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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출간된 서정주(1915~2000)의 네 번째 시집 <신라초(新羅抄)>를 펼친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서정주 시인은 <신라초>와 이어진 다섯 번째 시집 <동천(冬天)>에서 '불교'와 '신라'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몇몇 문학평론가들은 1960년대 초․중반 서정주의 시 세계를 "불교의 인연사상과 신라 설화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바로 이 <신라초>에 수록된 작품 중 하나인 '꽃밭의 독백'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이 시에서 '순교자 이차돈'을 떠올리는 사람이 비단 나 하나만이 아닐 것이다. 불교와 토착의 믿음 체계(원시 종교), 그리고 풍류도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6세기 초반 신라. 이차돈과 법흥왕이 느끼기엔 그 상황이 '닫힌 문'처럼 갑갑했을 것이다.

이차돈은 바로 그 문을 자신의 죽음으로 열고자 했다. '벼락' 같은 고통 속에서 죽음의 순간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것이 스스로의 종교적 결단이었든, 법흥왕과의 밀약에 의한 예고된 처형이었든, 신라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인 '왕권강화 프로젝트'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든,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겨우 스물한 살의 젊은 청년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닫힌 문'을 열려 했다는 사실은 '숭고함' 외의 키워드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차돈이 순교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 열어젖힌 문 뒤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차돈과 법흥왕이 꿈꾼 궁극(窮極)은 무엇이었을까?

경주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磨崖石迦如來坐像). 높이가 9m에 육박하는 이 웅장한 불상을 통해 신라가 부정할 수 없는 ‘불교왕국’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경주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磨崖石迦如來坐像). 높이가 9m에 육박하는 이 웅장한 불상을 통해 신라가 부정할 수 없는 ‘불교왕국’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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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국가의 틀을 이룬 '상부구조'인 신라 불교

위의 질문에 대한 해답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6세기 서라벌에서 불교가 가졌던 성격과 위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경상북도가 출간한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제13권 '신라의 불교 수용과 확산'은 비교적 구체적이고 알기 쉽게 이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신라 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적 제도는 골품제이고, 당시 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상은 불교의 교리다. 신라 중고기(中古期)는 정치․사회적으로는 골품제적 권력구조와 계층사회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었고, 문화․사상적으로는 불교의 수용과 토착화가 이루어지던 시기다. 곧 신라에서 고대국가로의 발전과 불교의 전래․수용이 같은 시기에 일어난 것이다."

위와 같은 서술은 신라사회 변화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 것이 불교의 유입과 공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모든 것은 개인의 팔자소관"이라는 불명확하고, 두루뭉술한 원시 종교의 교리에서 벗어나 '인간 행위에서 의지가 지니는 중요성'을 설파한 불법(佛法)은 당대 신라의 백성들을 매료시켰다.

비단 백성들만이 아니었다. 왕으로 대표되는 군주제국가의 최고 통치권자 역시 불교의 공인이 절실했다. 왜였을까? '신라의 불교 수용과 확산'은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중앙집권국가가 확립되던 시기에 수용된 신라 불교는 이전 사회 단계의 부족신화와 신앙을 포용하면서 한 단계 진전된 종교와 철학체계로서의 의의를 지녔다. 불교는 국가 발전에서 야기되는 사회적 갈등이나 모순을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깨닫게 함으로써 초부족적 국가 정신과 새로운 윤리관의 확립에 기여함으로써 정신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법흥왕과 이차돈은 귀족과 나눠 가진 권력을 왕에게로 일원화해 신라의 통치체제를 획기적으로 개혁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를 뛰어넘어 정치 이데올로기와 철학의 역할도 할 수 있는 새로운 '상부구조'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불교였다. 이에 관한 부연 설명을 다시 읽어보자.

"신라 불교는 사찰 건립과 불상 조성 등 불사와 함께 수용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국가권력의 보호와 지원을 필요로 하였다. 이런 상황과 맞물려 신라 불교는 국가 불교의 성격을 띠고 전개되게 되었다."

이차돈과 6세기 신라 불교에 관한 연구를 오랜 기간 지속해온 역사학자 강석근 역시 이와 유사한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6세기 중반 이후 서라벌에서 불교가 지닌 위상과 법흥왕 이후 신라사회의 변화를 핵심적으로 요약했다.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는 특정 종교를 넘어서서 신라를 주도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신라는 종교적, 사상적, 문화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차돈 순교 이후 신라는 불교를 받아들여 많은 사찰을 새롭게 만들었다. 그중 규모와 미려함에서 첫손에 꼽히는 불국사.
 이차돈 순교 이후 신라는 불교를 받아들여 많은 사찰을 새롭게 만들었다. 그중 규모와 미려함에서 첫손에 꼽히는 불국사.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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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돈과 법흥왕이 살던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불상. 1천500년의 세월을 잊게 만들 만큼 여전히 아름답다.
 이차돈과 법흥왕이 살던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불상. 1천500년의 세월을 잊게 만들 만큼 여전히 아름답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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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돈 연구에서 남겨진 몇 가지 문제들

이제 앞서 제기한 "이차돈이 순교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 열어젖힌 문 뒤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내놓을 때가 됐다. 이차돈과 법흥왕은 불교를 국민통합의 수단으로 삼아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정치적 관점에서의 해석이다.

그렇다면, 제기된 두 번째 질문 "이차돈이 꿈꾼 궁극은 무엇이었을까"에 대해서는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과 함께 다수의 역사학자가 '화엄(華嚴)'을 이야기한다. 화엄이란 "스스로 덕을 닦아 장엄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 이것이야말로 이차돈과 법흥왕, 불교왕국 신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다.

명민하고 심지 곧았던 신라 청년 이차돈이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이르고자 몸부림쳤던 '화엄의 길'. 보통의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아득한 경지다. 그렇다면 '이차돈의 순교'로부터 1천500년 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은 뭘까.

경주학연구원 박임관 원장은 "이차돈 순교비의 마멸(磨滅)된 글씨를 복원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한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이차돈 순교비는 새겨진 글씨의 50% 이상이 닳아 없어져 온전한 해독이 불가능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짐작으로만 해석하던 이 순교비의 글씨를 현대 과학기술로 복원할 수 있다면 6세기 신라 사회와 불교 공인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지역의 사학자들과 관광업계에선 "이차돈이 지닌 역사적, 종교적 의미를 후세들에게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차돈과 관련된 흥륜사와 백률사, 천경림과 경주박물관을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이차돈 루트(Route)'의 개발은 경주의 관광 인프라를 풍요롭게 해주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러한 후대의 노력은 이차돈이 꿈꾸었던 '화엄의 길'을 밝히는 연등(燃燈)이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내용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이차돈, #법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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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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