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이 되며 유럽축구 겨울 이적시장의 마감시간이 지났다. 설기현을 시작으로 박지성, 이영표의 진출로 국내팬들에게 다가온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아래 EPL)은 이번 이적시장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움직였다. EPL뿐만 아니라 최근의 유럽축구 이적시장은 천문학적인 이적료들이 오가며 국내팬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을 매일 놀라게 만들고 있다.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를 영입했다고 밝힌 첼시. 첼시FC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를 영입했다고 밝힌 첼시. 첼시FC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첼시 홈페이지


이런 이적시장의 흐름에서 선수가 클럽에 '충성'하는 것은 희귀한 현상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영원한 충성은 없을 것 같던 이적시장에도 로맨스는 있었다. 올리비에 지루는 지난 여름 라카제트의 영입으로 입지가 좁아진 아스널에 잔류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가 잔류를 선택한 이유는 팀에 대한 충성심과 이를 알아주는 클럽에서 주전경쟁을 통해 살아남겠다는 의지였다.

시즌이 절반을 지나 시작된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지루도 로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스널은 지루를 대신할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을 도르트문트에서 영입했고, 지루의 입지는 기존보다 더 좁아졌다. 이에 지루는 자신을 원하고 더 많은 출전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첼시로의 이적을 택했다.

올리비에 지루가 보여준 아스널 향한 헌신

올리비에 지루는 2012년 여름 아스널에 합류했다. 프랑스에서 몽펠리에의 돌풍을 일으키며 득점왕에 오른 지루는 잉글랜드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프랑스와는 다른 스피드와 경기스타일 적응은 지루가 살아남기 위해 이뤄내야 할 과제였다.

지루는 첫 시즌에는 여러 약점을 보이며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아스널의 방식과 프리미어리그의 스타일에 적합한 선수가 되었다. 지루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부상과 포지션 경쟁이었다. 주전 자리는 내주었지만 벤치에서 시작해 조커로서 역할을 다했다. 팽팽한 경기에서 흐름을 바꾸는 득점이나 무너진 분위기를 살려내는 교체카드로서 임무를 확실히 해냈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할만큼 실력이 올라왔음에도 소속팀에서는 주전이 되지 못했다. 지루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스스로를 더 다그치고 주전자리를 위한 경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시즌도 라카제트를 주전으로 낙점한 아르센 벵거 감독은 지루에게 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지루가 이번 시즌 선발로 나선 경기는 단 1경기에 불과하고, 16경기를 나서는 동안 그가 뛴 시간은 375분밖에 되지 않는다. 경기당 20분 남짓의 기회를 받은 것이다.

 아스널, 지난 7일 유로파리그 조별예선서 바테보리소프에 6-0 대승… 32강 진출

올리비에 지루. 아스널이 지난 2017년 12월 7일 유로파리그 조별예선서 바테보리소프에 6-0 대승한 당시 모습. ⓒ EPA/연합뉴스


하지만 지루가 아스널에서 지지부진한 활약을 펼친 것은 아니다. 지루는 아스널 소속으로 공식경기에 215경기 출장해 88골을 넣었다. 또한 자신에 대한 이적설이 불거질 때마다 아스널에 잔류할 것을 확고히 하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는 아스널에 늘 헌신적이었고, 그의 충성심은 경기장 안팎에서 모두 빛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지루의 짝사랑이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의 짝사랑은 끝이 났다. 아스널은 벤치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는 스트라이커가 아닌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를 원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이지 않았던 아스널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스널은 도르트문트에서 오바메양을 영입하면서 공격수 보강을 시도했다.

이로인해 지루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기존의 주전 공격수인 라카제트의 백업으로 뛰고 있는 지루였지만 이 자리마저 오바메양에게 내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지루 본인도 다가오는 러시아 월드컵 출전을 위해 소속팀에서 출전시간을 늘리길 바라는 상황이었다.

이에 아스널은 오바메양의 영입과 동시에 지루의 이적을 추진했다. 때마침 첼시는 모라타의 백업 공격수와 새로운 공격자원을 찾고 있었고, 지루는 첼시의 콘테 감독이 찾는 적임자였다. 더 많은 출전시간을 원하는 지루와 새로운 공격 자원을 원했던 첼시, 오바메양 영입으로 인한 잉여자원 방출이 필요했던 아스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지루는 오바메양의 이적이 발표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첼시의 푸른색 유니폼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6년간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있던 지루는 이제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게 됐다. 누구보다 아스널에 충성했던 지루의 짝사랑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현대축구에서 더 이상의 '로맨스'는 없다

비단 지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유럽축구는 물론 현대축구 전반에 걸쳐 막강한 자본가들이 유입되면서 선수영입 문화는 크게 바뀌고 있다. 경기장 안에서의 경쟁이 경기장 밖의 선수 영입에도 도입되었고, 전 세계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이적료를 기록하며 새로운 유니폼을 입는다.

불과 10년 전에는 한 클럽에서 본인의 선수생활을 마치는 '원클럽맨'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런 충성심이 강한 선수들을 보기 힘들다. 자본의 유입이 문화마저 바꾸어 놓은 것이다. 또한 충성심이 높은 선수라도 천문학적인 이적료와 함께 이적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더 이상 선수와 클럽의 관계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선수가 클럽에 대한 애정으로 재계약을 하거나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클럽 역시 선수를 상징적인 존재로 여기며 이적을 추진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적 시장에서는 누구든지 어떤 팀으로든 이적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올리비에 지루의 이적이 시사하는 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원한 충성은 현대축구에서 어렵다는 것. 6년간 한 팀만을 바라봤던 축구선수는 이제 라이벌 구단에서 기회를 노린다. 이는 현대축구에서 선수와 구단 간의 '로맨스'는 이제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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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글은 네이버 easteminence의 잔디에서 관중석까지에도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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