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눈을 의심했다. 유력 일간지의 칼럼이라고는 이해하기 힘든 글이었다. 게다가 필자가 '경제부장'이라니, 분노를 넘어 좌절감이 느껴졌다.

지난 1월 30일, <조선일보>에 칼럼 하나가 올라왔다. "걱정되는 '워라밸' 신드롬"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워라밸'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쓰이기 시작해 이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다. '워크(Work, 일)'와 '라이프(Life, 여가)' 사이의 '밸런스(Balance, 균형)'를 의미한다. 회사에서의 노동과 일상에서의 여유가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이다.

과거 노년층, 혹은 중장년층들의 삶이 일을 최우선에 두며 국가나 회사의 발전에 개인을 몸 바치는 것이었다면(그리고 그 과정에서 착실히 돈을 모아 저금하는 방식이었다면), 오늘날 젊은이들의 가치관은 크게 바뀌었다. 일이 중요한 만큼 '나'라는 개인의 삶 자체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보편화한 것이다.

그렇기에 원하는 제품을 소비하고, 국내외에 여행을 다니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자신만의 취미 생활을 즐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동반될 수밖에 없는 돈과 시간의 지출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건강한 여가생활을 일만큼이나 삶에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의 30일자 칼럼의 내용은 이러한 근래의 가치관을 전적으로 비판하는 것이었다. 작성자 개인이 해외에 여행을 갔다가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여행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여럿 목격한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일은 안 하고 해외에 나가서 돈만 너무 많이 쓴다고 주장하고 있다.

'돈 아까우니까' 일만 하라는 건가요

<조선> 30일자 칼럼 中
 <조선> 30일자 칼럼 中
ⓒ 조선일보

관련사진보기


칼럼은 이렇게 말한다.

"관광지엔 중장년층 단체뿐 아니라 개별 여행을 나온 한국인 청춘 남녀가 넘쳐났다. 특파원 시절 봤던 과거 장면과 비교하면 청년들의 여행 행태가 사뭇 달랐다. 배낭을 멘 채 값싼 유스호스텔을 전전하는 게 아니라 코트를 멋지게 차려입고, 맛집과 특색 있는 호텔을 섭렵하며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중략)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우리가 이렇게 흥청망청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가 여가가 아닌 일에서 의미를 찾아야 국가에 미래가 있다고 현 세태를 꼬집는다. 칼럼니스트의 시야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하는 한국인들의 현실은 눈에 띄지 않나보다. 한국인들은 OECD 2위의 노동시간을 기록하며 독일이나 네덜란드에 비해서는 연 700~800시간, '일개미'라 불리는 일본인들에 비해서도 연 400시간 이상을 더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 노동에 대한 대가는 OECD 내에서 열악한 수준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OECD 평균의 2배를 웃도는 가운데, 그들에게 지급되는 임금과 복지는 동일노동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턱없이 적다. 두 집단의 2016년 기준 월평균 임금 격차가 2배로 벌어지기까지 했을 정도다.

여기에 고질병이 되어가고 있는 청년 일자리 문제와 최근 며칠 사이 폭로되고 있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문제까지, 한국 청년들은 가장 '길고도 불공정한' 워크(근무환경)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잠시나마 해외여행을 통해서라도 라이프(여가)를 찾으려는 것이 한 중년의 눈에는 그렇게 부적절하게 느껴진 것일까. 해외에서도 힘들게 고생하며 다녀야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것일까. 20대 당사자가 힘들게 번 적은 임금조차도 어떻게 쓰는지 하나하나 간섭하려는 기성세대의 모습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 시절의 생각, 언제까지 들고 가시겠습니까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쓰는 돈이 너무 많으니 나라 경제가 우려된다'는 식의 담론은 마치 1990년대 말부터 불과 최근까지 이어져 온 일부의 주장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IMF를 불러들인 것은 한국인들의 지나친 과소비 때문이다'.

위 문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이들이 교과서에서 그대로 배워온 내용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어땠는가. 정작 학계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IMF 유발의 주된 요인들은 따로 있었다. 국가의 외환 리스크 관리 실패, 금융회사들의 무분별한 기업대출과 해외 융자 유지 전략 실패, 그리고 일부 재벌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에 기반을 둔 방만한 경영 방식 등.

그럼에도 국가는 정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영향을 미쳤는지도 불확실한, 그 실체도 의심되는 '국민의 과소비'를 국가적 재난의 '제 1원인'으로서 지목해 서민들에게 절약과 희생을 강요해왔다. 그렇게 서민들이 피땀 흘려 살아가는 동안 그 과실은 갈수록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집중되었고 체감하는 삶의 질은 악화하기만 했다. 갈수록 극악으로 치닫는 출산율 감소 문제는 그것의 가장 명백한 지표다.

지금 청년 세대가 더 이상 윗세대처럼 살지 않겠다고 행동하는 것은 이미 자신들이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체험해온 현실 때문이다. '일'에 매몰되는 삶은 결코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결국 사회가 더 나아지지도 않았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과연 해외에서 젊은이들이 쓰는 돈을 아까워하며 그 시간에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만 주장하는 것이 옳은 생각인지 의심스럽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근로시간 단축'정책이 '워라밸' 가치관을 더 확산시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단언하는 칼럼의 결론은 그런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애석하게도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젊은 세대의 삶과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함께 엮어 폄하하려는 시도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조선일보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각종 포털에서도 해당 칼럼의 댓글에는 비아냥과 비판이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제대로 된 경제 사설을 내기 위해서라도 이전 시대에 매몰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태그:#이슈, #시사, #조선일보, #여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