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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산업과학고등학교는 31일 제66회 졸업식을 개최했다. 원래 이 자리에 있어야 할 故 이민호 군에게는 명예 졸업장이 수여됐다. 이 군의 아버지(왼쪽)가 아들을 대신해 졸업장을 받고있다.
 서귀포 산업과학고등학교는 31일 제66회 졸업식을 개최했다. 원래 이 자리에 있어야 할 故 이민호 군에게는 명예 졸업장이 수여됐다. 이 군의 아버지(왼쪽)가 아들을 대신해 졸업장을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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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잃은 부모 속 냄새를 맡아 봤느냐. 10리 밖까지 간다"

딸을 삼킨 괴물을 추적하는 어느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말이다. 비록 짧은 대사일 뿐이지만 그 의미를 아는 사람에게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공감을 안겨준다. 어엿한 성인으로서 희망찬 새 출발을 알리는 고등학교 졸업식,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안고 가야할 상처를 다시 꺼내야 하는 순간이다.

현장실습 중 안전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 이민호 군과 친구들의 졸업식이 31일 열렸다. 아들을 대신해 명예졸업장을 받은 부모는 멈추지 않는 눈물과 한숨으로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서귀포 산업과학고등학교는 이날 오전 11시 체육관에서 제66회(연80회) 졸업식을 개최했다. 본래 66회 졸업생은 170명이 돼야 하지만 최종 명단에는 169명으로 기록됐다. 체육관 주변은 자녀, 손자, 후배, 조카의 졸업을 축하하는 이들로 성황을 이뤘다. 한 가득 꽃다발과 케이크를 안겨주며 기쁨을 나누는 인파 속에, 이민호 군 부모는 말없이 좌석 한 쪽에 있었다.

이민호군은 지난해 11월 9일 제주용암해수단지 내 음료제조업체 공장에서 일하다 제품 적재기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4분 가량 방치된 민호군은 같이 현장실습 나간 친구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사고 열흘 뒤인 19일 만 18세에 세상과 이별해야 했다.

이날 졸업식에서 학교 측은 이 군에게 자영생명산업과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위 학생은 고등학교 3개년의 과정을 수료했으나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해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이 명예졸업장을 수여합니다'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는 이민호 군의 어머니.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는 이민호 군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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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졸업장을 유심히 살펴보는 어머니.
 아들의 졸업장을 유심히 살펴보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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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대신해 단상에 올라 졸업장을 받은 이민호군 아버지는 복받치는 슬픔을 삼키려는 듯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어머니 역시 연신 눈물을 닦아내면서, 소중한 아들 이름 석 자가 새겨진 명예졸업장을 보고 또 봤다.

강원효 교장이 회고사를 통해 "고 이민호 군이 노동재해로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고 할 때는 장내가 숙연해졌다.

쓸쓸히 졸업식장을 나서는 이민호군 부모를 위해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공동대책위원회'는 꽃다발을 건네며 위로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민호 군 사고에 대응하고자 도내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 등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이민호군과 같은 반 친구인 전용민군은 "민호와 같이 졸업을 하지 못해 무척 아쉽다. 민호가 성실하게 학교도 나왔고, 사고 역시 전혀 예상 하지 못했는데...너무 빨리 세상을 떠나서 슬프다. 민호를 보고싶다"고 밝혔다.

이민호군의 아버지는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남긴 채 교문 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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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제주의소리>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이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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