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염기훈이 느긋하게 경기 운영을 펼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원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일부러 새 멤버들을 시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유독 새로운 얼굴들이 중요한 순간에 뛰어난 집중력과 완벽한 결정력을 자랑했다. 눈길을 뚫고 경기장에 찾아온 홈팬들을 위한 최고의 선물 보따리였다.

서정원 감독이 이끌고 있는 수원 블루윙즈(한국)가 30일 오후 7시 30분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2018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FLC탄호아(베트남)와의 홈 경기에서 5-1 완승을 거뒀다. 데얀, 임상협, 바그닝요 등 새 얼굴들이 맹활약을 펼치며 본선 H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수원의 이적생들, 5득점 4도움 합작 놀라워

 30일 수원삼성 블루윙즈 데뷔전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한 임상협.

30일 수원삼성 블루윙즈 데뷔전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한 임상협. ⓒ 대한축구협회


살짝 얼어 있는 잔디 위에 눈까지 내렸으니 몹시 미끄러웠지만 경기를 연기할 수는 없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일정에 밀려 예년보다 일찍 시작한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가 또 하나의 진풍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홈팀 수원 블루윙즈 선수들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전반전 시간이 다 흘러갔지만 베트남에서 온 상대 선수들이 낯선 기후 조건 때문에 흔들릴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경기 시작 후 30분만에 새 시즌을 앞두고 가장 화끈하게 이적한 골잡이 데얀 다미아노비치(몬테네그로)의 오른발 감아차기가 크로스바를 때리고 나오면서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는 본격적으로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전반전 종료 직전에 수원 선수들의 공격 집중력이 눈꽃처럼 피어올랐다.

44분에 귀중한 선취골이 나왔다. 오른쪽 측면에서 미끄러지며 지혜롭게 공 소유권을 지킨 임상협이 정확한 오른발 바깥쪽 크로스로 바그닝요의 오른발 골을 도운 것이다. 거짓말처럼 수원의 이적생들이 자신의 이름을 홈팬들에게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수원 블루윙즈의 서정원 감독은 이 경기를 통해 다섯 명의 새 얼굴을 선발 멤버로 썼다. 맨 앞 골잡이로 라이벌 FC 서울에서 극적으로 데려온 데얀 다미아노비치를, 그 아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부천 FC 1995 출신의 바그닝요,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부산 아이파크에서 데려온 임상협을 들여보낸 것이다. 아울러 왼쪽 풀백으로 울산에서 데려온 이기제를, 오른쪽 풀백으로 브라질 2부리그 파라나에서 데려온 크리스토밤을 내세웠다.

수원이 이 경기를 통해 뽑아낸 5득점 모두 어시스트가 기록됐다. 그러면 산술적으로 10개의 공격 포인트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염기훈의 1도움만 빼고 모두 이적생들이 그 이름을 빼곡하게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기록이다. 비교적 약한 팀을 상대로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것이기 때문에 새 얼굴들을 더 많이 시험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이적생들의 첫 성적표 '5득점 4도움(바그닝요 2득점 1도움, 임상협 1득점 2도움, 데얀 1득점 1도움, 이기제 1득점)'은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데얀의 마침표까지 완벽한 승리

까다로운 그라운드 조건 속에서도 전반전을 끝내기 전에 골을 터뜨렸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었다. 그런데 수원 선수들은 전반전 추가 시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멋진 추가골을 만들어냈다. '바그닝요-데얀'으로 이어진 패스가 오른쪽 측면에서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임상협에게 도달했고 임상협은 미끄러지면서도 오른발 슛을 성공시킨 것이다.

전반전 점수판 0-0과 2-0은 좀처럼 넘보기 힘든 차이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후반전 시작부터 수원 선수들의 자신감 넘치는 공격이 계속된 것이다. 그 덕분에 48분에 중요한 추가골을 터뜨릴 수 있었다. 임상협이 오른쪽 끝줄 가까이에서 꺾어준 공을 바그닝요가 기다렸다는 듯 오른발로 차 넣었다.

56분에는 수원의 베테랑 미드필더 염기훈이 왼쪽 풀백 이기제의 추가골을 도왔다. 이것이 이 경기를 통해 수원 블루윙즈의 기존 선수들 중에 유일하게 만들어낸 공격 포인트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크로스 어시스트는 아니었지만 염기훈의 넓은 시야가 돋보이는 명장면이었다.

그래도 수원 팬들은 골잡이 데얀의 골을 첫 경기부터 즐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 염원을 잘 알고 있었다는 듯 데얀은 86분에 바그닝요의 패스를 받아서 침착하게 오른발 슛을 성공시키며 다섯 번째 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탄호아 골키퍼 쩐 부 응옥이 방향을 잡고 왼쪽으로 넘어지며 잡아내려고 했지만 데얀의 슛이 미끄러운 그라운드에 깔려 뻗어오는 바람에 겨드랑이 사이로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미 승부의 갈림길이 분명하게 새겨졌지만 탄호아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90분에 골잡이 파페 오마르 파예의 오른발 만회골을 터뜨릴 수 있었다.

이로써 지난 시즌 K리그 1(클래식) 3위 자격으로 플레이오프를 치른 수원 블루윙즈가 챔피언스리그 본선 H조에 이름을 올려 가시마 앤틀러스(일본), 상하이 선화(중국), 시드니 FC(호주)를 상대로 모두 여섯 차례의 홈&어웨이 경기 일정을 받아들게 됐다. 2018 K리그 1 개막전은 3.1절에 열리는데 수원 블루윙즈는 지난 시즌 10위 전남 드래곤즈를 빅 버드로 불러들인다.

2018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결과
(30일 오후 7시 30분, 빅 버드-수원)

수원 블루윙즈 5-1 FLC 탄호아
득점: 바그닝요(44분,도움-임상협), 임상협(45+2분,도움-데얀 다미아노비치), 바그닝요(48분,도움-임상협), 이기제(56분,도움-염기훈), 데얀 다미아노비치(86분,도움-바그닝요) / 파페 오마르 파예(90분)

수원 선수들
FW: 데얀 다미아노비치
AMF: 염기훈(80분↔유주안), 바그닝요, 임상협(57분↔전세진)
DMF: 김은선, 이종성
DF: 이기제, 최성근(57분↔윤용호), 조성진, 크리스토밤
GK: 신화용

AFC 챔피언스리그 동아시아 본선 조편성 결과
E조: 전북 현대(한국), 키치 SC(홍콩), 텐진 취안젠(중국), 가시와 레이솔(일본)
F조: 울산 현대(한국), 가와사키 후론타레(일본), 멜버른 빅토리(호주), [상하이 SIPG(중국) vs 치앙그라이 유나이티드(태국)] 승리 팀
G조: 제주 유나이티드(한국), 부리람 유나이티드(태국), 세레소 오사카(일본),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
H조: 수원 블루윙즈(한국), 가시마 앤틀러스(일본), 상하이 선화(중국), 시드니 FC(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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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수원 블루윙즈 데얀 다미아노비치 바그닝요 임상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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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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