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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형태 뱅꼬레 와이너리 대표
 하형태 뱅꼬레 와이너리 대표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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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기사 : ① 맥주공장 직원이 '한국와인의 선구자' 되기까지)

와인 수입이 자유화되자 회사는 와인생산이 아닌 벌크와인 수입을 결정한다. 그 결정은 하형태 대표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벌크와인 수입 때문에 호주에 6개월 동안 가 있었어요. 실습 겸 출장으로. 그 때 제가 경험을 많이 했어요. 혼자 호주 동쪽 끝 시드니에서 시작해서 아들레이드, 멜버른을 거쳐 퍼스까지 호주의 와이너리들을 전부 돌아다녔죠. 와인메이커들에게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고, 자료를 요청하기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한테는 황금기였죠."

1994년이었다.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많은 외국의 와이너리를 돌아다닌 사람은 그가 유일할 것이다. 그는 좋은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호주에서 와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고 꿈에 부풀어 귀국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리해고 통보였다. IMF 직전에 기업마다 구조조정 바람이 불던 시기였다.

오래 쉬지 않았다. 3개월 정도 지났을까? 두산그룹은 주류수입 개방에 맞춰 주류 전문 수입회사를 설립했고, 와인전문가인 그를 불렀다.

"그때는 주류 제조회사에서 술을 수입하지 못하게 해서 별도로 자회사를 만들었어요. 거기로 오라고 불러서 갔어요. 수입와인을 관리하고, 와인을 수입하기 전에 제품을 확인하러 프랑스 등에도 가면서 영업활동을 했죠. 각 지점을 돌아다니면서 와인 교육도 했고. 대단한 거는 아니고 와인 종류, 와인을 마실 때의 에티켓 같은 기초적인 것이었어요. 그거 하면서 방송 출연도 여러 번 했죠."

 뱅꼬레 와이너리 와인생산설비
 뱅꼬레 와이너리 와인생산설비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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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대표는 이 역시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이 좋은 시절 역시 오래 가지 않았다. 정부의 정책 변화 때문이다. 정부는 주류제조회사가 술을 수입할 수 있게 규제를 완화했다. 본사가 직접 술을 수입하게 되었으니 주류 수입 자회사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다. 본사에 흡수합병 됐고, 관리직이었던 그는 실직했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 변화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1970년대에 시작된 한국와인산업이 대기업 중심이었다면, 2000년대 초부터 새롭게 시작된 한국와인산업은 농민이 그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과수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생과 판매가 아닌 고부가가치 사업을 찾다가 도전한 게 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하형태 뱅꼬레 대표가 있다. 그는 대기업에서 경험한 와인양조의 노하우를 농민들에게 전파하는 중심역할을 했던 것이다. 하형태 대표는 한국와인산업의 전환을 이끌어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를 한국와인의 선구자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경북대에서 시작됐다. 실직하고 고향인 대구로 내려간 그에게 경북대 선배이자 경북대 교수인 최종욱 교수가 경북대 평생교육원에서 와인강좌를 열자고 제안한 것이다. 2000년이었나?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와인양조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 강좌였는데, 제가 교육을 담당했어요. 첫 해에 40명 정도가 왔는데, 그 가운데 김지원 그랑꼬또 대표가 있었어요. 안산에서 대구까지 와인양조를 배우러 왔던 거죠. 열정이 대단했어요. 그 먼 곳에서 어떻게 오느냐고 했더니 새벽에 집에서 나온대요. 강의가 끝나고 집에 가면 열두 시가 넘는대. 매주 금요일마다 수업이 있었는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했어요."

이때, 하 대표에게 와인양조를 배운 김지원 대표는 안산 대부도에서 그랑꼬또 와이너리를 설립,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와인메이커로 성장했다. 김지원 대표는 '대한민국 최고의 와인명가'를 꿈꾸고 있다. 하형태 대표가 뿌린 씨가 좋은 결실을 맺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뱅꼬레 와이너리 시음장
 뱅꼬레 와이너리 시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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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하 대표는 경북대, 대구대, 대경대 등에서 와인양조 강의를 한다. 자신이 35년 동안 외길을 걸으면서 축적한 와인양조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한국와인산업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와인은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캠벨 포도로 만든 와인은 맛이, 향이 안 좋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대부도(그랑꼬또 와이너리)에서 캠벨 품종으로 4가지 와인을 개발했어요. 캠벨 포도는 와인이 절대로 안 된다는 걸 김지원 대표가 끝까지 우겨서 레드, 화이트, 로제, 아이스와인까지 만들었어요. 한국 사람은 캠벨 포도가 인이 박혀 있어요. 어릴 때부터 많이 먹고 많이 접해서 싫어하지 않아요. 거부하지 않고 좋아해요."

와인강의를 하고, 그랑꼬또 와이너리 등 몇몇 와이너리에서 와인 개발을 도와준 하 대표는 영천에 와인회사를 설립한다. 바로 ㈜한국와인이다. 2006년이었다. 그가 영천에서 자리를 잡은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그의 제안으로 영천에서 영천와인클러스터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영천와인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영천에는 16개의 와이너리가 있다.

그는 영천에서 주로 재배하는 MBA(머스캣 베리 에이)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었다.

 하형태 뱅꼬레 와이너리 대표
 하형태 뱅꼬레 와이너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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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은 캠벨 포도를 주로 재배하고 영천은 MBA를 주로 재배합니다. 기후 때문이죠. MBA는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으로 가공과 생과 겸용인데 냉해에 약해요. 추풍령 위쪽으로 (재배가) 힘들어요. 추풍령 위쪽에서도 재배를 하려면 하겠지만, 겨울에 보온작업을 해야 해서 번거롭죠. MBA로 레드와인을 만들고 싶어서 영천을 택했어요."

그가 MBA로 만든 와인은 4가지였다.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로제와인 그리고 아이스와인. 여기에서 아이스와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아이스와인을 만든 사람이 바로 하 대표이기 때문이다. 아이스와인은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수확시기를 놓쳐 포도밭에서 얼어버린 포도를 버리기 아까워 와인을 담았더니 맛있는 아이스와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예전에는 독일의 아이스와인이 최고였어요. 독일에서 아이스와인은 밭에서 얼린 포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죠. 지금은 온난화로 인해 독일에서 아이스와인을 만들기 어려워졌어요. 포도가 얼지 않아서. 대신 캐나다가 전 세계에서 팔리는 아이스와인의 90퍼센트를 생산하죠. 그것도 한 때는 잘 팔렸는데 요즘 주춤했다고 해요. 너무 달아서."

그가 아이스와인 양조를 처음 시도한 것은 마주앙 공장에서 근무할 때였다. 외국잡지를 구독하면서 와인양조를 공부하던 그는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봤단다. 아이스와인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양조실험만 했을 뿐 시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정통 샴페인 제조법으로 스파클링 와인도 제조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 대표는 밝혔다.

"그 때 제가 양조한 포도품종이 100가지가 됐어요. 현장에서는 20톤, 30톤, 100톤 탱크에 와인을 만들지만 저는 20리터 용기에 100가지를 담근 거죠. 매년 실험을 했어요. 품종별로 특색 있게 했죠."

그때의 경험을 살려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밭에서 얼린 포도를 수확을 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후는 습해서 포도를 밭에서 얼리면 썩어요. 쭉정이밖에 안 남아요. 요즘은 냉동실이 잘 돼 있잖아요. 밭에서 얼리나 냉동실에서 얼리나 그게 마찬가지지. 냉동실에서 얼리면 먼지를 덜 먹고 품질관리를 더 잘할 수 있어요."

 뱅꼬레 와이너리.
 뱅꼬레 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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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200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한국와인에서 아이스와인이 출시됐다. 하 대표는 이 기술을 그랑꼬도 와이너리와 영천이 와이너리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영천의 와이너리들은 대부분 아이스와인을 생산한다. 좋은 기술을 공유해 양질의 한국와인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하 대표의 신념 덕분이다.

뱅꼬레 와이너리의 운영은 순조로울까?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직원이 15명이나 되었지만, 지금은 가족이 중심이 되어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와인양조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하 대표 때문에 가족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와인은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판매도 중요하다. 그런데 와인양조전문가인 하 대표는 경영면에서는 수완을 발휘하지 못했다. 좋은 와인을 만들면 당연히 팔릴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뱅꼬레는 농가형 와이너리가 아니라 중소기업으로 출발해서 더욱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다음 기사 : ③ "외국은 포도만, 우리는 감·복숭아로 와인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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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