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래미 어워드는 올해로 60번째 해를 맞았다.

미국 그래미 어워드는 올해로 60번째 해를 맞았다. ⓒ The Recording Academy 트위


'전 미국 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아래 NARAS)'가 주최하는 제60회 그래미 어워드가 성대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래미 어워드는 6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LA 스테이플스 센터가 아닌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자리를 옮겼다. 매년 초, 졸린 눈을 비비며 Mnet 채널을 켜는 것도 벌써 5년째다. 팝계의 전설부터 신예까지 한 자리에 모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그래미에는 4개의 주요 부문(General Field)이 있다. 올해의 앨범상(Album Of The Year), 올해의 노래상(Song Of The Year), 올해의 레코드상(Record Of The Year), 그리고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상(Best New Artist)이다.

올해의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상은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알레시아 카라(Alessia Cara)에게 돌아갔다. 성공적인 데뷔 앨범은 물론, 제드(Zedd)와 로직(Logic)과의 컬래버레이션 역시 높게 평가된 결과였다. 한편, 브루노 마스는 올해의 앨범상(24k Magic), 올해의 노래상(That's What I Like), 올해의 레코드상(24k Magic)을 모두 석권하는 등 7관왕을 차지했다. 브루노 마스는 < 24K Magic >의 영감이 된 테디 라일리(Teddy Riley), 베이비페이스(Babyface) 등 선배 뮤지션들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각기 다른 시대의 공존

 도널드 글로버(Donald Glover)의 솔로 프로젝트 차일디쉬 감비노(Childish Gambino) 역시 올해의 레코드, 앨범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불발되었다.

도널드 글로버(Donald Glover)의 솔로 프로젝트 차일디쉬 감비노(Childish Gambino) 역시 올해의 레코드, 앨범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불발되었다. ⓒ Recording Academy 트위터


올해 역시 인상깊은 라이브 공연들이 즐비했다. 오프닝 무대에 오른 래퍼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다. 누가 켄드릭 라마를 의심할 수 있을까. U2의 보노와 디에지 역시 무대에 함께 올라 'XXX'를 부르며 무대를 가득 채웠다. 차일디쉬 감비노(도널드 글로버)는 특유의 섹시한 그루브를 과시했으며, 지난해 최고의 히트송의 주인공인 루이스 폰시와 대디 얀키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파티장으로 만들었다.

매년 그래미에서는 수많은 컬래버레이션을 만날 수 있다. '올해의 주인공' 브루노 마스는 카디비와 함께 'Finesse'의 흥겨운 리믹스 버전을 선보였다. 스팅과 자메이카 뮤지션 섀기(Shaggy)가 함께 부른 'Englishman In New York'도 근사했다.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스팅의 목소리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 외에도 엘튼 존(Elton John)과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가 호흡을 맞추는 등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모습은 부러움을 자아냈다.

예년보다 점잖아진 핑크(Pink)나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공연도 깊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세상을 떠난 뮤지션들에 대한 추모 공연도 그래미의 중요한 포인트다. 지난해에도 톰 페티(Tom Petty), 척 베리(Chuck Berry),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 등 굵직한 이름들이 세상을 떠났다. 특히 기타리스트 개리 클락 주니어가 로큰롤의 선구자 척 베리의 'Maybellene'을 부르는 모습은 묘한 감동을 자아냈다.

 켄드릭 라마는 제60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아쉽게 본상 수수상을 놓쳤다.

켄드릭 라마는 제60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아쉽게 본상 수수상을 놓쳤다. ⓒ 유니버설 뮤직


미국의 오늘을 비추는 창

그래미는 매년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반영하곤 한다. 특히 올해 그래미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노골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 날 준비된 VCR에서 스눕독, 디제이 칼리드, 존 레전드, 카디비 등의 뮤지션들은 트럼프를 비판하는 마이클 울프의 책 '화염과 분노'를 낭독했다(심지어 이 VCR의 말미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등장했다).

대선 이전부터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줄곧 드러냈던 록밴드 U2는 자유의 여신상 앞 야외 무대에서 'Get Out On Your Way'를 부르며 자유의 가치를 역설했다. 마렌 모리스(Maren Morris)와 에릭 처치(Eric Church), 브라더스 오스본(Brothers Osborne)은 왼쪽 가슴에 흰 꽃을 달고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Tears In Heaven'(에릭 클랩튼)을 불렀다.

'1-800-273-8255'를 부른 랩퍼 로직(Logic)은 노래 말미에 성, 인종 등 모든 종류의 차별에 맟설 것을 외치며 박수를 이끌어냈다. U2를 소개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Havana'의 주인공 카밀라 카베요는 이민자들의 꿈이 미국을 지탱했음을 연설하기도 했다(그녀는 쿠바 출신이다). 대중 음악은 결코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떼어놓고 볼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랩에 인색한 그래미, 보이지 않는 벽 존재하나?

2016 그래미 어워드에 이어, 올해에도 많은 음악팬들의 관심은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에 집중되었다. 켄드릭 라마는 최우수 랩 퍼포먼스, 랩 노래, 랩 앨범상을 모두 수상했지만 정작 본상 수상은 불발되었다. 지난 해 발표한 < DAMN > 켄드릭 라마의 전작 < To Pimp A Buttefly >에 밀리지 않는 명작으로 평가받았지만, 켄드릭 라마는 다시 한 번 고배를 마셨다.  < 레버넌트 > 이전까지는 늘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나마 이쪽은 사정이 낫다. 거장 제이지(JAY-Z)의 < 4: 44 >는 무려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나, 단 한 개의 상도 받지 못했다.

최근 그래미는 트렌드와 음악성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지 못 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NARAS 역시 자신들에 대한 거센 비난이 무엇에 기인하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특히 힙합 음악에 대한 상대적 홀대는 오랫동안 지속된 것이었다. 로린 힐(Lauryn Hill)이나 아웃캐스트(Outkast) 등 극소수 케이스를 제외하면, 그래미는 백인 뮤지션의 손을 들어주기에 바빴다.

 켄드릭 라마는 다섯 개의 상을 수상했으나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다. 브루노 마스는 신인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본상을 수상했다.

켄드릭 라마는 다섯 개의 상을 수상했으나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다. 브루노 마스는 신인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본상을 수상했다. ⓒ The Recording Academy 트위


매니아들과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21세기의 걸작으로 손꼽은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의 <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는 무관에 그쳤다. 이러한 사례는 한 둘이 아니다. 2016년 그래미 당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걸작 < To Pimp A Butterfly >는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 1989 >에 밀려 앨범상을 수상하지 못 했다. 랩퍼의 앨범은 아니지만, 인종 차별 이슈와 페미니즘 등을 내세운 비욘세(Beyonce)의 < Lemonade >가 아델(Adele)의 < 25 > 앞에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아델 역시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머지, 트로피를 쪼개지 않았는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수많은 음악팬들은 NARAS의 보수성을 꼬집었으며, '화이트 그래미'라는 비아냥 역시 끊이지 않았다. 드레이크(Drake)나 프랭크 오션(Frank Ocean) 등의 거물들 역시 그래미의 공정성을 문제삼으며 연이어 불참을 선언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부정할 수 있을까?

물론 변화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주요 부문 후보의 상당수가 흑인 음악이었고, 백인 아티스트가 그 어느 때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올해의 앨범 후보에서도 < Melodrama >의 로드(Lorde)만이 백인 후보였다. '화이트 그래미'라는 오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한 것이 느껴졌다.

올해 3개의 본상을 휩쓴 브루노 마스의 < 24K Magic > 역시 8~90년대 흑인 음악에 대한 헌사 그 자체 아니었는가. 늘 강세를 보였던 장르 컨트리 역시 주요 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 했다. 심지어 2017년 최고의 팝스타 에드 시런 마저도 주요 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 했다. 표절 논란이 발목을 잡았는지도 모르겠지만, 최고의 백인 팝스타가 그래미에서 주춤했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그래미는 느리게나마 변하고 있는 중일까, 아니면 아직 오랜 관성을 유지하는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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