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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8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무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당사에 들어서고 있다. 국민의당 당무위원회의는 민주평화당 창당발기인대회에 참석한 의원들과 당원들의 징계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됐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8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무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당사에 들어서고 있다. 국민의당 당무위원회의는 민주평화당 창당발기인대회에 참석한 의원들과 당원들의 징계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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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미친 놈들이여.", "대통령병 걸리면 그래부러."

걸쭉한 사투리를 섞은 말들이 쏟아졌다. "살다 살다 별 희한한 일을 다 봤다. 전당대회를 세상에, 23곳에서 하는 역사를 보셨나"라는 정인화 국민의당 의원의 말에 맞장구 치듯 쏟아진 말이었다. 모두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안철수 대표를 겨냥한 힐난이었다.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은 하나부터 열까지 꼼수로 추진되고 있다. 당위성도 없다. (두 당의) 정체성이 다르지 않느냐"는 말엔 누군가 "쫓아내부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손에는 녹색 바탕에 "민주평화당"이라고 적힌 손깃발이 들려있었다.

# 28일 오후 4시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

안철수 대표가 굳은 얼굴로 기자들 앞에 섰다. 비공개 당무위원회에서 통합반대파에 속한 현역 국회의원 등에 대한 무더기 징계를 강행한 직후였다. 그는 "다른 의견이 있었다면 전당대회를 통해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제대로 된 민주정당"이라며 "당직을 맡고 있는 분들조차 신당 창당에 나섰다. 지금껏 없던 일이다. 정당파괴행위라 부르고 싶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은 이날 바른정당과의 통합논의체인 통합추진위원회의 5개 분과위원회 인선을 확정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놓고 다투던 국민의당 통합파와 반(反)통합파가 결국 갈라섰다. 2016년 창당 이후 약 2년 만에 둘로 쪼개지는 모양새다. 천정배·정동영·조배숙·박지원 등 현역 의원 16명을 비롯한 반통합파는 이날 가칭 '민주평화당' 창당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창당준비위원회도 공식 출범했다. 이에 안 대표는 이들을 포함한 당원 179명에게 '2년 당원권 정지' 징계를 강행했다.

양쪽 모두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셈이다.

바른정당과 통합해도 39석 어렵다, 원내 3당 '몸집' 어디까지 축소?

민주평화당 창당준비위원장인 국민의당 조배숙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의원과 권노갑 정대철 고문 등 참석자들이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창당발기인대회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민주평화당 창당준비위원장인 국민의당 조배숙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의원과 권노갑 정대철 고문 등 참석자들이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창당발기인대회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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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양측의 감정은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다.

민주평화당 창당발기인대회에서는 안 대표와 바른정당과의 통합 방침에 대한 비판이 내내 쏟아졌다. 이용주 의원은 "안철수 대표는 상식과 금도를 넘어서는 꼼수의 정치로 국민의당을 사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동영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국가안보를 위해서 쓰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매달 상납 받은 행위는 국가반역죄라고 본다. 그런데 안철수·유승민당은 이를 정치보복이라고 한다"면서 민주평화당 창당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은 조배숙 의원은 "안 대표가 합당하려는 사람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킨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안철수 대표는 반통합파를 향해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당무위 소집을 앞두고 발표한 입장문에서 "(민주평화당 창당발기인대회는) 정치패륜 행위", "디지털 시대의 각목 전당대회나 다르지 않은 저열한 행위", "정당정치 농단" 등의 표현을 쓰면서 "당적을 정리하고 떠나라"고 요구했다.

그는 특히 민주평화당 창당 발기인에 이름을 올린 비례대표 의원들에 대해선 탈당을 요구했다. 이들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출당시켜달라는 반통합파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이는 통합 파트너인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앞서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을 예로 들면서 반통합파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권했던 것과 다른 선택이다. 

당의 탄생 과정을 돌이켜 보면 역설적 상황이다. 당초 국민의당이 창당 2개월 만에 치른 20대 총선에서 '녹색 바람'을 일으켰던 역량은 '덧셈 정치' 덕이었다. 안철수 대표로 상징되는 '새 정치'와 민주화 세력의 뿌리를 자처하는 '호남'이 만나 총 39석의 원내 3당을 일궈냈다. 그러면서 그 어느 당도 원내 과반을 장악하지 못한 20대 국회의 '캐스팅 보트'로서의 존재감도 발휘했다.

그러나 바른정당과 통합, 새로운 덧셈을 하려는 과정에서 '새 정치+호남'으로 구성됐던 당 구조에 대한 '뺄셈 정치'가 가동됐다. 이대로라면 바른정당(9석)과 합당해 탄생할 중도신당 의석수가 원래 국민의당 의석수(39석)보다 더 줄어들 형편이다.

무엇보다 '민주평화당'이라는 깃발 아래 모인 현역 의원 중 비례대표 박주현·장정숙 의원을 제외한 14명 모두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다. 여기에 권노갑·정대철·이훈평 등 동교동계 상임고문들도 민주평화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제 귀에는 하늘나라에 계신 김대중 대통령께서 우리 행사를 보시고 '이제 됐다'고 말하시는 게 들린다"고 말했다. 애초 민주평화당이란 신당 명칭부터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뺄셈은 더 확대될 수 있다. 반통합파지만 민주평화당 창당 발기인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 이상돈 의원은 이날 당무위로부터 징계를 받으면서 이탈이 불가피해졌다. 이 의원은 향후 박주현·장정숙 의원 등과 함께 출당 요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의 최측근이지만 최근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진 박선숙 의원이 이 모임에 합류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권은희(광주 광산을)·김관영(전북 군산) 의원을 제외한 '중재파' 호남 지역 의원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박주선(광주 동남구을)·김동철(광주 광산갑)·주승용(전남 여수을)·황주홍(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이용호(전북 남원임실순창)·손금주(전남 나주화순) 의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앞서 안 대표에게 '전당대회 전 대표 조기사퇴'를 중재안으로 제시했지만 결과적으로 거부당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2월 4일 예정된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 전당대회를 전후로 이탈해 민주평화당으로 합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통합파·반통합파 모두 6월 지방선거 '빨간 불'

2016년 2월 2일 오후 대전 중구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초대 공동대표로 선출된 안철수, 천정배 공동대표가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며 인사하고 있다.
▲ 국민의당 초대 공동대표로 선출된 안철수-천정배 2016년 2월 2일 오후 대전 중구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초대 공동대표로 선출된 안철수, 천정배 공동대표가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며 인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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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뺄셈 정치'를 택한 양측의 앞길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 통합하면서 중도신당으로서의 저변을 넓히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녹색 바람'의 근거지인 호남을 잃었다. 이는 오는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감안할 때 치명적인 일이다.

'새 정치'라는 안 대표의 이미지도 약해졌다. 안 대표는 지난 12월 바른정당 통합 전당원투표 시행 안건 의결을 위해 반대파의 출입을 통제한 채 당무위를 열어 '불통'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또 평창올림픽 한반도기 문제·이명박 전 대통령 검찰 수사 등 정치 현안에 대해 유승민 대표와 보조를 맞추면서 '우향우'·'보수야합'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반통합파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평화당은 '지역 정당'으로 회귀했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비례대표 의원들을 제외하고 모두 호남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을 주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충청 지역정당으로 존재감을 발휘했던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을 연상케 한다. 또 국민의당에서 반통합파 비례대표 의원들에 대한 출당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원내 교섭단체(20석)을 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적폐청산과 햇볕정책 계승 등을 주장하는 민주평화당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그 정체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이는 민주평화당이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결국 더불어민주당으로 흡수될 것이라는 전망의 근거 중 하나다. 

당장, 안 대표 측근인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구태 정치·기득권 정치로 상징되는 박지원 의원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2중대당, 박지원 신당이 수준 높은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는 호남의 선택을 받을 것으로 보는가? 이것이야말로 호남팔이, 호남배신"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민주평화당의 조배숙 의원은 이날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보수대야합 하려는 세력들이야말로 자유한국당 2중대 아닌지 묻고 싶다"라며 "우리는 다당제와 민주·평화·개혁 정치를 병행, 발전시킬 당이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당의 가능성을 키울 것"이라고 장담했다.


태그:#안철수, #국민의당, #박지원, #민주평화당, #바른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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