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나 그란데처럼 셀럽이 되고 싶어. 셀럽은 뉴욕에서 스테낄 썬다구요~" 평균나이 37.5세. 신인(?) 걸그룹 '셀럽파이브'의 노래 가사다. 셀럽파이브는 타이트하고 노출이 많은 의상 대신 중후한 트로트 가수가 입을 법한 촌스러운 재킷을 걸친다. 아찔한 하이힐은커녕 당당한 맨발인 그들은 섹시하게 보이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춤추는 중에도 시종일관 무표정이다.
무대 뒤에서 기타를 치는 보이들과 뽕끼를 담은 편곡이 엉뚱한 매력을 더한다. 셀럽파이브가 춤추는 영상을 보면 요즘 말로 '현웃(현실웃음)' 터진다. 왜일까? 촌스러운 의상과 메이크업 때문일까? 아니면 우스꽝스러운 군무 때문에? 아무래도 '예쁘다'라는 보편적인 기준과는 거리가 있는 나이든 코미디언 멤버들 때문일까?
셀럽파이브는 김신영, 송은이, 안영미, 심봉선, 김영희로 이루어진 걸그룹이다. 이 엉뚱한 걸그룹의 시작은 송은이가 대표이사로 있는 모바일 방송국 '비보티비'에서 제작하는 웹 예능 '판벌려-이번판은 춤판'이었다.
일본의 토미오카 고교 댄스팀 TDC의 춤을 따라 해보자는 김신영의 제안에 따라 다섯 명의 코미디언들이 두 달간 연습했단다. 김신영이 개사한 가사는 '반전세 6천에40'에 사는 그들이 뉴욕의 호화저택에서 사는 셀럽이 되고 싶다는 내용이다.
결과는 대성공! 셀럽파이브의 뮤직비디오는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28일 100만뷰를 돌파했다. 평창올림픽 개최 기념 공연 제안까지 받았다(결과적으로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지만). '스밍은 대환영, 실검은 I need you'라는 그들의 가사대로 된 셈이다.
나 역시 자기 전 1일 1 셀럽파이브 동영상 시청을 할 정도로 열광적인 팬이다. 왜 우리는 셀럽파이브에 열광할까? 여타 걸그룹처럼 어리고 예쁘지도, 소위 셀럽도 아닌 그들에게?
우리는 왜 셀럽파이브에 열광하나
하나, 어쩌면 뒷방 늙은이여서인지도 몰라.할머니는 종종 내게 잘난 사람은 모자라게 보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할머니가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요즘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면 할머니의 노하우가 보인다. 그들은 더이상 손에 닿지 않는 빛나는 '스타'가 아니다.
<나 혼자 산다>에서는 혼자 사는 지질한 독신남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정글의 법칙>에서 나오는 연예인들의 고생담을 보다 보면 따끈한 아랫목에 앉아 티비를 보는 내가 다 죄책감이 들 정도다.
<프로듀스 101>에서 어떻게든 심사위원단의 눈에 띄려 노력하는 아이돌의 모습은 눈물겹다. 고생하고 좌절하는 이들에게 공감과 응원의 마음이 생기는 것은 우리의 현실 역시 그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셀럽파이브 가사에 나오는 '반전세 4천에 60'이란 말을 들으면 웃기면서 슬프다. 셀럽파이브는 '불금 일 없다(불금을 즐길 수 없다-기자 말)'며 '두유 워너 워커 홀릭'이라고 묻는다. 노동시간 1위에 빛나는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가사다. 반지하에 살면서 한 방을 노리는 '신데렐라 걸스'에선 '남은 건 비트코인뿐이다!'라는 2030의 담담한 절망이 보이는 것도 같다.
공감을 사는 건 가사뿐이 아니다. 셀럽파이브를 구성하는 다섯 명의 코미디언은 웬만큼 유명하지만 '셀럽'이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하다. 걸그룹에 어울리지 않는 평균나이 37.5세도서러운데 예능에서도 뒷방 늙은이 취급이다. 누구나 얼굴을 알만한 이들이지만 정작 끼를 보여 줄 '판'이 없다.
아이는커녕 결혼도 안 한 이들에게는 '돌아올 슈퍼맨'도 없고 자신의 일상을 관찰해줄 '미운 오리 엄마'도 없다. '쬐끔 타이트'한 옷을 협찬받았다며 '택 있다'고 인증하는 셀럽파이브 노래 가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응원의 '떼창'을 하게 된다. 괜찮아! 뒷방 늙은이여도 괜찮아!
둘, 판 벌여줘야 노나? 그 판, 내가 벌인다!
그러나 뒷방 늙은이라고 뒷방에만 앉아 있다면 셀럽파이브가 아니다. 언뜻 히어로 이름처럼 들리기도 하는 '셀럽파이브'는 판이 벌어지기만 기다리지 않았다. 공중파 예능에서 불러주지 않는다면 내가 예능을 만들면 되지 않는가.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공중파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뒷방 여자 연예인들의 성공기였다면 웹 예능 <판 벌려-이번 판은 춤판>에서 뜬 셀럽파이브는 판까지 직접 짠 언니들의 영웅담이다.
<판벌려>는 송은이가 직접 제작, 기획한 웹 예능 프로그램이다. 송은이가 제작한 <김생민의 영수증>과 <비밀보장>은 공중파로 옮겨가기도 했다. 문화콘텐츠의 채널이 다양화되면서 공중파냐 아니냐보다는 콘텐츠의 힘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노래 가사는 '셀럽이 되고 싶다'지만 실상 이들의 무대는 '내가 직접 셀럽이 되겠다'에 가깝다. 판이 깔리지 않는다면 그까짓 판, 내가 만들면 그만이다.
우리 세대는 어떻게든 만들어진 조직과 시스템에 들어가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 배우며 자랐다. 손에 꼽히는 대학에, 유명한 기업에 제 한 몸 끼워 넣어야 성공한 삶인 줄 알았다. 그러나 문은 턱없이 좁아진다.
설사 그 '셀럽'에 낀다 해도 버티기가 쉽지 않다. 3포에 이어 8포까지 간 젊은이들은 '셀럽'을 버리고 자기가 선택한 그룹을 만들어간다. 셀럽파이브가 공중파가 아니라 웹 예능을 통해 자신을 알린 것처럼 말이다.
셀럽파이브는 '열정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엄격한 심사위원들에 의해 뽑힌 이들이 아니다. 비록 얼렁뚱땅 이지만 함께 할 멤버들이 오디션을 본다. 사회가 정한 셀럽에 제 한 몸 욱여넣기 지친 청년들의 응원을 받을 법도 하다.
셋, 하고 싶으면 한다는 것.
왜 셀럽파이브 춤을 추게 되었느냐는 인터뷰에 김신영의 대답은 간단했다. "하고 싶어서요." 당연한 것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그 간단한 이유로 무엇을 해 본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먹고 살기 바빠서. 야근하느라고. 여유가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었는가? 휴일마저 밥벌이를 위한 충전 정도로 치부된다. 퇴근 후 시간은 내일의 출근을 위한 기력 회복 시간이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어느 정도 벌어놓고 나면' 그때는 하고 싶은 무엇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언젠가'도 '그때'도 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어느 날 병실에 누워서야 하고 싶었던 그 일이 생각보다 그렇게 큰 시간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셀럽파이브는 어떻게 될까? 몇 주간 반짝하다 질 수도 있고 의외로 차기곡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하고 싶다'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하면 '했다'라는 것 자체가 성공이다.
그 이후의 일은 그 후의 문제다. 나는 셀럽파이브처럼 살고 싶다. 비록 '반전세 4천에 60'에살아도, '협찬받은 옷이라 택도 못 떼고 입더라도' 하고싶은 걸 하면서 말이다. 무언가가 하고 싶은데 아무도 판을 깔아주지 않는가? 그들만의 리그에 끼기 지쳤는가?
그렇다면 그 판, 까짓 거 직접 벌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