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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가족협의회와 교육문예창작회의 기억시 전시회는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한 의미 있는 노력의 하나다.
▲ '기억시 전시회 ' 웹자보 416 가족협의회와 교육문예창작회의 기억시 전시회는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한 의미 있는 노력의 하나다.
ⓒ 4.16 가족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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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천과 밀양에서 잇달아 일어난 화재 참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니 답답하고 아프고, 화도 치솟는다. 우리 사회에서 이 안전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오랜 구조적 적폐와 관련되어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서서 칼로 무 자르듯 단박에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서부터 이 난마로 얽힌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부터가 안개 속인 것 같은 오늘의 현실 앞에 우리는 그저 발만 동동 구르는 처지가 되었다.

언제라도 불의의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눈먼 사고가 나만 비켜가란 법은 없다. 그러나 역대의 많은 대형 '사고'가 '사건'이 되고 만 것은 예견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정직한 보통 사람들의 불안, 우려, 걱정, 경고, 호소를 힘 있는 누군가가 무시, 외면, 은폐했기 때문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어렵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과 생명보다는 돈과 이익이 먼저고, 정의나 양심보다는 불의나 편법, 거짓말이 더 힘을 발휘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뜻밖의 참혹한 사고는 예고된 참담한 사건의 다른 이름일 따름인 것이다. 저 잊을 수 없는 4.16 참사처럼.

부산광역시 교육청 2층 로비. 단원고 희생 학생들을 기리는 '기억시 전시회' 오픈 행사 직전 참석자들이 시화를 둘러보고 있다.
▲ "단원고의 별들, 기억과 만나다" 부산광역시 교육청 2층 로비. 단원고 희생 학생들을 기리는 '기억시 전시회' 오픈 행사 직전 참석자들이 시화를 둘러보고 있다.
ⓒ 윤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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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의 별들, 기억과 만나다"

1월 26일 오후 2시, 부산광역시 교육청 2층 로비에는 이 같은 플래카드가 붙었고 1층에서 3층까지의 긴 복도 벽에는 일정한 크기의 수많은 시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부산답지 않은 맹추위가 채 물러가지 않은 이날, 단원고 학생들을 기리는 '기억시 전시회'가 오픈한 것이다. 

'기억시'란 무엇이며 '기억시 전시회'가 부산시 교육청에서 열리게 된 사연부터 얘기해 보자.
 
2014년 4.16 참사 후 전국에서 모인 일군의 작가들은 희생된 학생(245명)과 교사들(11명)의 생전 삶을 담은 약전을 혼신을 다해 썼고 경기도 교육청은 이를 12권의 책 ('416 단원고 약전 - 짧은 그리고 영원한')으로 펴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듬해 5월 13일 안산합동분향소 희생자들의 영정 앞에 헌정되었었다.

교육문예창작회 교사들이 쓴 '기억시'들

4.16 작가단이 쓰고 경기도 교육청이 펴낸  이 책은 세월호 희생자 영전에 헌정되었다.
▲ <4.16 단원고 약전> 4.16 작가단이 쓰고 경기도 교육청이 펴낸 이 책은 세월호 희생자 영전에 헌정되었다.
ⓒ 예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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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전을 바탕으로 교육문예창작회 (1989년 발족한 전국 문인 교사들의 모임)가 '단원고 희생자 261인' 한 명 한 명에 대한 '기억시'를 나누어서 쓰기로 결의한 것은 2016년 여름이다.

이것이 완성되자 이들은 4.16 가족협의회가 주최하고 4.16 기억저장소가 주관하는 '기억시 낭송 문화제'에도 참여한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이름의 이 낭송 문화제는 그해 9월 23일에서 이듬해 4월 14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안산의 기억전시관에서 열렸다.

4.16 가족협의회와 교육문예창작회 교사들이 기억시들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기억시 전시회 전국 순회를 결의한 것은 반년에 걸친 낭송 문화제가 끝난 직후. 교사 시인들이 한지나 도화지에 직접 쓴 기억시에 화가들이 희생 학생과 교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 넣음으로써 261개의 시화는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 시화들을 가기고 전국을 순회 해 온 이들은 4.16 가족협의회의 운영위원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유가족들이었다. 기억시 전시회는 작년 국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경기, 충남, 충북, 세종, 강원, 광주의 교육청에서 차례로 열렸고 마침내 부산시 교육청 차례가 온 것이다.  

기억시 전시회 오픈 행사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단원고의 학생과 교사들을 기리며 기억시 전시회 오픈 행사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부산시 교육청 공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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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전시회 오픈 행사는 김석준 부산시 교육감을 비롯한 교육청 관계자, 4.16 가족협의회 어머니들 (2학년 1반 한고운 어머니, 3반 김도언 어머니이자 기억저장소 소장, 6반 이영만 어머니, 이태민 어머니, 7반 허재강 어머니, 9반 김혜선 어머니) 그리고 몇몇 교사들이 2층 로비를 가득 메운 가운데 열렸다.

행사 첫머리에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기반과 교육 환경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당부도 하고 다짐도 한 김석준 교육감은 준비해 온 기억시 한 편 (서울 조현설 시인이 쓴 2학년 7반 허재강 학생에 대한 기억시 <파충류 소년>)을 낭송해 참석자들을 숙연케 했다.  

허씨 할배의 장손 강이
허씨 집안의 종손 강이
경상도 영주 시골에 가면
할배가 만들어준 연을 훨훨 날리던 강이
그때, 툭, 끊어진 연줄
연을 따라가며 울던 강이
기억의 연줄을 팽팽히 당기며
아득한 방패연이 되어
하늘을 날고 있는 재강이

동물이면 다 좋아하던 강이
친구라면 다 사랑하던 강이
꿈속에 하얀 물뱀으로 찾아와
살며시 엄마의 발꿈치를 물던 강이
애완동물학과의 꿈도 키우던 강이
꿈틀꿈틀 하얀 도마뱀이 되어
엄마의 가슴을 아빠의 어깨를
하염없이 걷고 있는 재강이

2학년 7반 허재강을 생각하는 기억시 시화
 2학년 7반 허재강을 생각하는 기억시 시화
ⓒ 윤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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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하나하나의 이름 기억해 주길 바랄 뿐"

시인은 이 짧은 시에서 재강이의 이름을 열 번이나 불렀다. 또한 김석준 교육감도.

"(그냥 세월호 희생자가 아니라) 아이들 하나하나를, 하나하나의 이름을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재강이의 엄마는 교육청 복도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날 참석한 교육문예창작회의 조향미 시인은 6반 권순범을 생각하며 쓴 자신의 시 <엄마의 밥상>을 낭송했다. 

하루에 투잡을 뛰는 엄마
잠시 집에 들렀다 나가는데
엄마, 뭐 먹고 가야지
재빨리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었지
엄마의 엄마 같은 아들 순범이
친구들이 찾으면 언제든 달려가고
바쁜 엄마 누나 대신 스스로
밥하고 빨래 개고 김치찌개 끓여놓던
착하고 평화로운 아이
누구에게도 해 끼치지 않고
자기를 먼저 드러내지 않던
속 깊은 아이 눈빛 맑은 소년
(중략)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아들이
넘기지 못한 가시처럼 걸려있는 엄마는
뒤늦게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있단다
처음 들은 민중가요 가슴에 북받쳐
차창 모두 내리고 볼륨을 한껏 높였어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깨어나도록
차 밖으로 마이크라도 달고 싶구나
어른들이 어리석어 너희를 죽게 했지
아들아, 너무 늦게 눈을 떠서 미안해
네게 못 다한 사랑 세상에 갚을게
너처럼 고운 아이들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
기어코 만들어 볼게 있는 힘을 다 할게
그리운 내 아들 한번만 다시 만났으면
따뜻한 밥상 차려 느긋이 먹였으면

세상에 어느 엄마라 이런 마음이 아닐까? 6반 이태민 엄마가 아들에 대한 기억시 <스페니쉬 오믈렛>(밀양 이응인 시인 작)을 낭송하는 모습은 떠올리기만 해도 또 눈물이 난다.

"태민이는 열 살 어린 동생 나연이를 너무너무 잘 챙겨줬지요"
▲ 2학년 6반 이태민의 기억시를 바라보는 태민이 엄마 "태민이는 열 살 어린 동생 나연이를 너무너무 잘 챙겨줬지요"
ⓒ 윤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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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결인듯 네 초대를 받고 우리는 호텔로 갔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 있는 너를 만나자 먹은 것 없이
배가 부르고 행복했어
네 손끝에서 나온 것 하나하나 이름을 말했지만
하나도 모르겠어.
네 얼굴만 가득했으니까.

역시 오빠가 최고야. 폴짝폴짝 뛰던 나연이가 네 요리를 먹는 동안
넌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붙어서 있었지.
아빠가 몇 번이나 부르고, 소연이가 옆구리를 쿡 찔러서야
정신이 돌아왔지.

어젯밤 내 아들,'
호텔 요리사 태민이를 만나고 알게 되었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가 무엇인지
세상에서 하나 뿐인
가장 멋지고 눈물 나는 요리가 무엇인지.

2학년 6반 이태민을 생각하는 기억시 시화
 2학년 6반 이태민을 생각하는 기억시 시화
ⓒ 윤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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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4월 봄날의 '금요일'에 돌아왔다면 태민이는 올해로 22살. 벽에 걸린 기억시를 바라보며 태민이 엄마는 "태민이는 두 살 아래인 소연에게도 그랬지만 10살이나 어린 동생 나연이는 너무너무 잘 챙겨줬지요"라며 아득히 미소 지었다.

내가 기억시 전시회를 진행하는 중에 제일 힘든 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4.16의 엄마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우리 아이들 일인데, 힘들다고 말할 순 없지요. 세월호는 잊혀져만 가는데 진상이 밝혀지지도 책임자가 처벌 된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다. 사실 내 질문은 참 바보 같은 것이었다. 서럽고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야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참사 이후 정치 모리배들과 일부 인면수심의 사람들, 권력 유착 언론들이 내지른 저 '짐승의 시간'도 견뎌낸 엄마들이고 유가족들이 아닌가.

기억시를 둘러보는 김석준 교육감 (왼편)과 4.16 기억저장소 소장이자 3반 김도언 엄마(오른편)
▲ 부산 교육청에 전시된 기억시의 행렬 기억시를 둘러보는 김석준 교육감 (왼편)과 4.16 기억저장소 소장이자 3반 김도언 엄마(오른편)
ⓒ 윤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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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과 대구 교육청에서도 이 전시회가 열릴 수 있었으면 해요."

부산과의 좋은 인연을 떠올리며 부산시 교육청에 깊이 감사도 표한 기억저장소 소장이자 3반의 도언이 엄마는 이렇게도 말했다.

전시회 가능여부를 섭외하고, 261점이나 되는 시화들을 마치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가슴에 다시 품듯 안아서 차에 싣고, 멀고 먼 길을 달리고, 때론 교육청 관계자들의 고마운 도움도 받아가며 청사 안 긴 복도에 그 시화들을 걸고, 전시기간이 끝나면 다시 수거하여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오늘도 이런 힘겨운 과업을  기꺼운 마음으로 마다 않는 4.16의 엄마들의 바람은 단 하나밖엔 없다.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4.16의 아이들, 4.16의 희생자들을, 세월호 이후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영영토록 기억하자는 것이다.

경북 상주에서 달려온 교육문예창작회의 조영옥 시인, 희생된 아이들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는 기억시 앞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경북 상주에서 달려온 교육문예창작회의 조영옥 시인, 희생된 아이들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는 기억시 앞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윤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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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과 밀양 보며 눈물 흘렸을 세월호 아이들과 선생님들

전시회 오픈 행사를 마치고 부산시 교육청 청사를 나선 나는 맑은 겨울 하늘을 올려다 보며 생각했다. 차디 찬 겨울 하늘이라 '단원고의 별들'은 더욱 빛나는 것 아닐까? 제천과 밀양에서 일어난 슬픈, 아픈, 가슴 답답한 참사를 4.16의 아이들도 내려다보지 않았을까?

그 아이들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흐르지 않았을까? 그 아이들과 함께 바다로, 하늘로 가신 단원고의 열한 분 선생님들의 눈에도 필경. 아, 우리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안다. 모를 수가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일까? 

끝으로 서울 최성수 시인이 쓴 전수영 선생님에 대한 기억시 <밤마다 그 바다에는 하얀 분꽃이 핀다>를 가만히 읽어 본다.  

전수영 선생님이 입혀 준
단원고 2학년 2반 아이들의 구명조끼가
어스름 바다에 희디흰 분꽃으로 피어난다

첫 제자를 마지막 제자로 둔,
스물네 명 애기들의 영원한 엄마가 된,
하얀 분꽃 같이 빛나던 그 사람

밤이 깊도록 그 바다에는
하얀 분꽃이 핀다

단원고 고 전수영 선생님을 생각하는 기억시 시화.
 단원고 고 전수영 선생님을 생각하는 기억시 시화.
ⓒ 윤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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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의 말미에 '전수영 선생님의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그를 분꽃을 닮았다고 했다'는 사연도 전해 놓았다. 

부산시 교육청의 기억시 전시회는 2월 12일까지 계속된다. 많은 이들의 발걸음은 '단원고의 별들'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태그:#4.16 기억저장소, #단원고 희생 학생과 선생님들, #교육문예창작회, #세월호 , #조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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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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