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멜로디에 반가움이 앞선다. 나는 텔레비전 화면으로 눈길을 준다.

"오늘도 봐요?"
"응."
"재미있어요?"
"....... 응."

내심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아이는, 손에 텔레비전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냥 둬. 좀 보게."
"아, 저게 뭐야, 화면도 웃기고, 어? 고두심씨는 너무 젊다. 무슨 동화 같은데?"

뾰족한 내 말에 아이는 포기한 듯 자리에 누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하나하나 평가를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짐짓 모른 척 하고 꿋꿋하게 화면을 지켰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 스틸 컷

MBC 드라마 <전원일기> 스틸 컷 ⓒ MBC


MBC 드라마 <전원일기> 요즘 내가 즐겨보는 드라마다. 지난해 겨울, 무심하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ktv 국민방송 채널에서 방송 중인 것을 발견한 후로 매일 보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0시 30분부터 방영된다. 예전 같았으면 잠자리에 들었을 텐데 요즘은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야 잠자리에 든다.

<전원일기>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1088회에 걸쳐서 방송됐다. 요즘 나는 1997년 방송분을 보고 있는 중이다. 20년 전 드라마를 지금 본다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내용도 뻔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한 것도 사실이다. 또 하나 드라마 출연배우들의 20여 년 전 모습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된다.

드라마의 내용도 단순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한 부분도 많고, 우스꽝스러운 세트장이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얻는 것도 많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다보니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요즘 우리들이다. 뒤를 돌아본다는 게 자칫 뒤처지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헛헛함도 갖게 된다. 전원일기를 보고 있으면 그런 헛헛함을 달래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낯익은 요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연결하는 드라마가 많다. 그러나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전원일기>는 마치 고향에 온 듯한 정겨움을 준다. 또 출생의 비밀이나 우연의 우연을 거듭하는 요즘 드라마와 달리, 권선징악이나 효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의 단순함은 삶의 기본을 짚어보게 해 준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축되는 요즘 드라마의 화려한 배경과 달리, 조잡하고 어색한 배경이지만 오히려 더 사람 사는 냄새가 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 스틸 컷

MBC 드라마 <전원일기> 스틸 컷 ⓒ MBC


그 모든 것들이 있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가 바라는 삶의 모습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질적인 것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도.

그리고 지금 활동하는 배우들의 20여 년 전의 모습을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국민어머니로 자리 잡은 김혜자씨의 마냥 좋아 보이는 웃음, 지금도 드라마를 통해 자주 만나는 일용엄니 김수미씨의 자유분방한 걸음걸이. 거기에 드라마 속의 연인에서 지금은 부부가 된 영남이(남성진 분)와 복길이(김지영 분). 얼마 전에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배우 이미지씨. 그러고 보면 한 편의 드라마가 전해주는 것은 그 때의 즐거움은 물론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세월이 흐른 후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20년이 흐른 2027년 즈음에는 지금 방영되는 드라마를 보며 세월을 되돌려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한숨 쉬어가며,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하며. 그래도 그 때가 좋았다는 말을 되뇌며 말이다.

전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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