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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갑작스러운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어버릴지도 모른다. - 기자 말

진료를 받으러 올때마다 가장 먼저 들러서 채혈을 한다
▲ 채혈 진료를 받으러 올때마다 가장 먼저 들러서 채혈을 한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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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엄청난 한파로 인해 전국이 영하권의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던 지난 25일, 6개월 만에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최근 들어 밤낮이 바뀌다시피 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일어나는데 평소와 달리 일찍 일어나려니 힘들었다. 추워서 그런지 따뜻한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더 싫었다.

2013년 10월 수술하고 벌써 만 4년이 훌쩍 지났다. 암이라는 병을 겪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찾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며 한달이 1년처럼 길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다.

매일이 새로운 경험으로 신기했고 넓은 세상을 마주한다는 사실에 설렜다. 그런데 어느샌가 이 생활에도 적응을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특별한 것' 없는 똑같은 일상 속에 살고 있다.

그렇게 어느샌가 4년이 지났고 '완치'가 가까워 오고 있다. 1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받는 초음파 검사는 이번이 마지막 검사다. 가끔 보면 수술 후 방사성 요오드 치료 한번에 치료가 안 되서 여러차례 반복치료를 하며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는 그래도 운 좋게 한번의 방사성 요오드 치료에 특별한 재발 소견없이 잘 지나가고 있다.

오랜만에 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병원으로 갔다. 아무래도 대학병원의 외래진료가 있는 날은 병원 주차장이 너무 혼잡해 주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기도 했고, 때마침 부산에 또 다른 스케줄이 잡혔는데 주차장 협소로 대중교통을 이용해달라는 권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청 추운 날이라 내복까지 단단히 챙겨입고 병원으로 갔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부산지하철 2호선 구명역에 내려 지하철 2호선으로 개금역까지 이동, 또 내려서 백병원으로 올라가는 마을버스까지 환승을 해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 버스 내리는 위치가 지난번과 달라져 있었다.

마을버스를 내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본관으로 들어가 3층으로 올라갔다. 본관 3층엔 채혈실이 있다. 채혈을 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병원에 오면 무조건 채혈부터 하고 움직여야 한다.

채혈실 앞에 도착하니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대기중이었다. 채혈실 접수카운터에 번호표 기계도 새로 생겨있었다. 그만큼 환자들이 더 많이 늘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울에 하는 채혈은 여름보다 불편하다. 아무래도 옷을 두껍게 입고 있기 때문이다. 채혈 번호표를 받고 패딩점퍼를 벗은 후 니트와 셔츠 그리고 그 안에 내복까지 3겹으로 된 팔을 걷어부쳐야 했다.

순식간에 채혈을 하고 알콜 솜으로 5분간 지혈을 하기 위해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채혈한 부위를 누르고 있으니 지혈 하고 붙이라며 조그만 반창고를 나눠주었다.

1년만에 수술부위 초음파 검사를 하는 날이다
▲ 갑상선,두경부검사실 1년만에 수술부위 초음파 검사를 하는 날이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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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고를 붙이고 옷을 입은 뒤 별관 5층에 있는 '갑상선센터'로 올라갔다. 오늘은 센터에서 1년 만에 목 초음파 검사를 하는 날이다. 당연히 이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검사실 앞에서 기다릴 때는 언제나 긴장된다. 오전 9시반 예약이었는데 앞 예약자 검사를 아직 못하고 있을 만큼 밀려있어, 10분을 넘게 기다려야 겨우 검사 받을 수 있었다.

어깨 밑에 베개를 넣고 목을 뒤로 최대한 젖히고 눕는다. 그러면 간호사 분께서 목 부분의 옷을 아래쪽으로 끌어내리고 초음파 검사에 사용하는 약물이 옷에 묻지 않도록 타월을 끼워서 준비해주신다. 그리고 검사가 시작된다.

찝찝하기 그지없는 초음파 검사 약물을 온 목과 턱에 묻혀가며 초음파 검사기로 목 안을 살핀다. 나도 누워서 초음파 검사기에 나오는 화면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내 목안은 수술 당시 제거한 갑상선과 림프절들의 흔적으로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보다 검사가 빨리 끝났다. 아무래도 특별한 이상이 없는 듯했다. 경험상 특별히 이상징후가 발견되면 해당 부위를 집중적으로 촬영해서 화면캡처를 연신 해대는데 오늘은 그런 거 없이 무난하게 끝났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다.

이제 혈액검사 결과와 초음파 검사결과가 모두 정리되면 교수님을 만나 진료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혈액검사 결과 나오기까지 2시간 정도는 할일없이 병원에서 시간을 때우며 기다려야 한다. 항상 이렇게 시간이 남으면 병원 정문 앞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시간을 보낸다.

오늘도 그곳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블로그 이웃들에게 '번개'를 쳤다. 혹시 같은날 병원에 와 있는 분 계시면 내가 커피를 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날짜가 맞는 분이 안 계신지 번개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피곤함도, 추운것도 잊을 만큼 기분 좋았던 하루

다음 진료가 완치전 마지막 진료가 될 예정이다
▲ 진료예약증 다음 진료가 완치전 마지막 진료가 될 예정이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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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진료시간이 됐고 교수님을 만났다. 초음파 결과는 역시 예상대로 '재발소견 없음'으로 깨끗했다. 하지만 문제는 혈액검사다. 지난 2번의 혈액검사에서 'TSH(Thyroid-Stimulating Hormone)'수치가 기준치보다 많이 높아 몸이 피로하고 은근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다행히 이번 검사에서는 그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대신 최근에 대인관계나 일적인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살았더니 소화가 잘 안되고 '신물'이 계속 역류해서 별도로 다른 약을 추가로 처방받았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해결되고 있고 건강상태도 지난번보다 괜찮은 결과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다음번 진료인 9/27일을 마지막으로 혈액검사 한번이면, 나도 긴 5년간의 투병을 끝내고 '완치' 판정을 받을 수가 있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완치판정 후에는 소견서 등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병원을 나오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흥얼거려졌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서 느껴졌던 피곤함도, 날씨가 너무 추워 오그라들었던 몸도, 그 어느 것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얼굴엔 미소가 나왔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아침은 온다'는 말처럼 드디어 나도 '중증환자'가 아니라 '일반인'이 될 날이 가까워 온다. 그리고 긴 시간 써온 나의 투병일기도 이제 마무리 할 때가 다가 온다.


태그:#갑상샘암, #갑상선, #혈액검사, #초음파검사, #대학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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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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