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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기차 객실 내에서 바라본 옥룡설산 정상부. 오로지 맨꼭대기만 황금빛으로 환했다.
▲ 새벽녘의 옥룡설산 이른 아침 기차 객실 내에서 바라본 옥룡설산 정상부. 오로지 맨꼭대기만 황금빛으로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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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침대칸이었지만 안락함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해발고도가 2000m를 훌쩍 넘는 고산지역이다 보니 굽은 노선이 많고, 철로마저 낡아 기차는 연신 덜컹거렸다. 게다가 객실 복도에서 중국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참다못해 포스트잇에다 중국어로 '객실 내에선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써서 붙여놓기까지 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 선잠을 깼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둠 속에 붉게 타오르는 봉홧불 같은 거대한 산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곳에 터 잡은 소수민족들의 성산, 말로만 듣던 옥룡설산이다. 여명은 설산에 머물러 오로지 산꼭대기만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기차가 마치 산을 향해 알현하러 들어가는 것만 같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느껴진다.

리장 어디에서도 눈 덮인 옥룡설산을 볼 수 있다.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는데, 실제 거리도 20km가 채 안 된다.
▲ 리장의 랜드마크, 옥룡설산 리장 어디에서도 눈 덮인 옥룡설산을 볼 수 있다.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는데, 실제 거리도 20km가 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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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 역에 내리니 이른 아침인데도 호객꾼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포토라인에 선 이에게 달려들어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처럼 순식간에 우리를 에워쌌다. 차림으로 보아 외국인이라는 걸 뻔히 알 텐데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숨 가쁜 말들을 쉼 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들의 손마다 옥룡설산과 호도협 등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는 팸플릿이 들려 있었다.

아뿔싸, 또다시 돌발 변수가 생겼다. 서둘러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영어를 알아듣지 못 했다. 사실 출국하기 전 블로그나 여행 안내 책자 등에서 긁어모은 리장 관련 정보에 의하면, 워낙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중국의 다른 지역에 견줘 영어로 소통하는 데 별문제가 없다고 했다. 되레 북경의 표준 중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설명을 덧붙여놓기까지 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관광안내소

명색이 관광안내소인데도, 중국어를 모르면, 입장권을 구입할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사진은 리장고성 뒤 사자산 풍경구의 안내소의 모습.
▲ 영어가 통하지 않는 관광안내소 명색이 관광안내소인데도, 중국어를 모르면, 입장권을 구입할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사진은 리장고성 뒤 사자산 풍경구의 안내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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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잘못된 정보였다. 리장에 닷새 동안 머물며 사람들을 숱하게 만났지만, 영어를 구사하기는커녕 아주 단순한 문장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외국인 관광객들끼리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문제가 없을 뿐, 현지인들과 만남은 늘 난감했다. 그러다 보니 현지 정보를 얻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하는 수 없이 택시 기사에게 숙소의 이름이 적힌 예약 확인서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는 그곳이 어딘지 모르겠다며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숙소의 이름이 영문으로 적혀 있을 뿐, 정작 중요한 중국어 이름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름 아래 깨알같이 적힌 주소마저 영문이었으니 그에게 보여줘 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다.

서로 난감해하며 가던 차를 잠시 도로변에 세웠다. 내려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천만다행으로 꼬깃꼬깃 구겨진 확인서 맨 아래에 숙소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던 것이다. 순간, 아라비아 숫자가 만국 공통이라는 사실이 다행스럽고 고맙기까지 했다. 통화 덕분인지, 숙소의 직원이 택시에서 내린 곳까지 미리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신히 산을 하나 넘고 나니 또 다른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인 과정에서 복병이 나타났다. 닷새간의 숙박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하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하물며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인 내로라하는 관광지인데도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니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더욱이 예약 확인서에는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다고 분명히 씌어 있었다.

챙겨온 현금이 부족하다고 했더니, 직원의 답변이 가관이었다. 가까운 중국은행의 위치를 알려줄 테니 현금을 곧장 인출해오라는 것이다. 야간 기차를 밤새 타고 와서 몸이 천근만근이었기 망정이지 체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면, 예약을 취소하고 이내 다른 숙소를 알아보겠다고 뛰쳐나갔을 것이다. 첫날이라 지갑에 현금이 있었다는 것도 마음 약해지게 한 요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비자나 마스터카드, 익스프레스 등의 외국계 신용카드는 안 되고, 오로지 중국계 은행에서 발행한 신용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숙소에서만 그런 것이었다면, 과거 우리나라에서처럼 과세를 피하려는 얕은 술책이라고 여겼을 텐데, 가는 곳마다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리장을 찾은 관광객 대부분이 찾는 '무푸(木府)'(소수민족 족장의 저택)조차도 멀쩡한 신용카드를 모두 뱉어냈다.

기술적인 문제일 리 만무하고, 대체 전 세계 어느 곳에서건 통용되는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결제 수단으로써 중국계 카드 사용을 늘리기 위한 중국 정부의 의도적 조치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어쨌든 챙겨간 지갑 속 신용카드는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고, 순식간에 '을'의 처지가 되어 출국 전 넉넉히 환전하지 않았던 걸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현금이 뭉텅이로 지갑에서 순식간에 빠져나가다 보니 정작 여행 도중 자질구레하게 쓸 돈이 부족해졌다. 물건을 사든 음식을 먹든, 주문하기 전에 신용카드 결제 여부를 먼저 물어야 했고, 신용카드 결제가 되는 곳을 찾아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여행의 즐거움을 시작부터 반감시켰다. 숱하게 여행을 다녔지만, 신용카드 결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내버스는 170원, 케이블카는 14000원

쌀국수의 나라, 베트남과 지리적으로 이웃한 탓일까. 어딜 가나 각양각색의 미시엔을 팔고, 숙소마다 아침식사도 대개 미시엔을 제공한다. 한 식당에서 주문한 네 종류의 미시엔. 가격이 40원(한화 약 6,800원)이다. 놀라지 마시라. 네 그릇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 윈난 지방을 대표하는 음식, 미시엔 쌀국수의 나라, 베트남과 지리적으로 이웃한 탓일까. 어딜 가나 각양각색의 미시엔을 팔고, 숙소마다 아침식사도 대개 미시엔을 제공한다. 한 식당에서 주문한 네 종류의 미시엔. 가격이 40원(한화 약 6,800원)이다. 놀라지 마시라. 네 그릇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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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천차만별 부정확한 관광지의 입장료 관련 정보도 한몫 거들었다. 정보가 부족하면 시간과 돈으로 벌충해야 한다는 건 여행자들의 불문율이다. 일부에서 여전히 패키지여행을 선호하는 것도 사실상 그런 번거로움 때문이다. 여행 안내 책자는 최신판조차 업데이트가 부실해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고, 인터넷 블로그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정보가 많아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다. 리장 관련 정보가 딱 그랬다.

부정확한 액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리장고성 내 별도의 관광지를 찾을 경우에는 입장료와는 별개로 고성 유지 기금을 따로 징수한다고 소개돼 있었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달랐다. 오지랖 넓게 가는 곳마다 입장권을 끊으면서 왜 유지 기금은 징수하지 않는지를 부러 묻기도 했다. 그때마다 '일 없다'는 심드렁한 답변만 돌아왔을 뿐이다.

또, 중국에선 나이가 아닌 키를 기준으로 할인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조금 달랐다. 매표소에서 그냥 '4명'이라고 하면 할인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어른 둘, 아이 둘'이라고 말하면 항상 밖을 내다보며 아이들의 나이를 되물었다. 예상했던 대로 키를 확인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른과 아이 상관없이 요금이 동일하다는 몇몇 관광지를 제외하면, 할인 기준은 늘 키보다 나이였다.

아예 몇몇 곳에서는 할인해달라고 요구하기도 전에 두 아이의 얼굴을 보곤 나이를 묻더니 이내 반값이라며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기도 했다. 물론, 매표소마다 키를 잴 수 있는 눈금자가 벽면에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어, 키를 기준 삼았던 때가 분명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어쩌면 정해진 일률적인 기준이 없고 그때그때 다르다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단 한 가지 일치하는 게 있다면, 관광지의 입장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것뿐이었다. 참고로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요금과 식비 등의 생활 물가와 외부인들이 주로 찾는 관광지의 입장료 등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백족 자치주의 주도, 따리의 랜드마크인 삼탑 뒤로 새로 조성한 우람한 숭성사의 입구 모습이다. 흡사 북경의 자금성을 떠올릴 정도로 큰 규모의 사원인데, 볼거리에 견줘 입장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다.
▲ 새로 조성한 따리의 숭성사 전경 백족 자치주의 주도, 따리의 랜드마크인 삼탑 뒤로 새로 조성한 우람한 숭성사의 입구 모습이다. 흡사 북경의 자금성을 떠올릴 정도로 큰 규모의 사원인데, 볼거리에 견줘 입장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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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어딜 가나 시내버스 요금은 1원(한화 약 170원)이지만, 한 시간짜리 '천고정(千古情)' 공연 관람료는 310원(한화 약 5만3000원)이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인 윈난식 쌀국수 '미시엔(米線)'은 대개 10원(한화 약 1700원) 남짓이면 먹을 수 있지만, 리장 인근 따리에 최근 새로 조성한 어느 사원의 입장료는 121원(한화 약 2만1000원)에 이른다. 택시 요금은 8원(한화 약 1400원)인데, 케이블카 편도 요금이 80원(한화 약 1만4000원)이니, 항공료와 숙박비를 제외하면 여행 경비 대부분이 관광지 입장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무겁기만 한 여행 안내책자를 배낭에서 들어냈다. 그렇다고 그걸 불신할지언정 아예 무시할 순 없다. 아무리 부정확한 정보들이 많다 해도, 자유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여행 안내책자와 인터넷 블로그의 정보는 여권과 비자처럼 출국 전 반드시 챙겨야 할 필수품이다. 그런 어쭙잖은 정보라도 알고 있어야 돌발 변수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긴 적혀있는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는 여행이라면,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을 것 같다. 기존의 여행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해 출판사 등에 따져 물을 게 아니라면, 웬만한 오류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여행자다. 돌아와 여행을 추억하다 보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며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던 순간순간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나.


태그:#중국 윈난 여행, #여행 안내서, #리장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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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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