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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13년 12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통상임금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앉아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13년 12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통상임금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앉아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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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24일 오후 9시33분]

'판사 블랙리스트'에 대한 법원 내부 반발이 커지고 있다.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조사결과 발표에 대해 23일 대법관 13명이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며 반박하는 입장문을 냈지만, 일선 판사들이 연이어 법원 내부 게시판 등에 실명 글을 올리며 비판하고 있다. 일부 판사는 조사위의 조사에 협조를 하지 않는 관계자들의 행태로 인해 검찰 조사까지 언급했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검찰에 의한 법원 수사'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가는데는 선을 긋는 모양새다. 김 대법원장은 24일 오후 입장문을 통해 "공정한 관점에서 조치 방향을 논의하여 제시할 수 있는 기구를 조속히 구성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속 남인수 판사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검찰 수사를 촉구한 데 이어 24일에는 차성안, 김동현, 류영재 판사가 판사 블랙리스트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블랙리스트 피해 판사 "치졸하게 무슨 뒷조사인가, 무서워서 글 하나 쓰겠나"

차성안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통신망(코트넷)에 '블랙리스트 개념 정의 논쟁의 시작'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자기 부정에 가까운 자정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차 판사는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니 블랙리스트로 볼 수 없다며 사안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주장에 대해 "문제 판사로 찍히는 그 자체가 불이익"이라고 반박했다. 차 판사는 이번 문건에서 언급된 인물 중 한명이다.

차 판사는 "나는 서울중앙 형사합의 배석도 하고, 행정처 TFT를 장애인 사법지원, 성폭력 피해자 지원 등 관련해 2번을 한, 행정처와 각을 세운 적 없는 평범한 판사였다"면서 "그런 내가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글을 올리고, 상고법원에 찬성하는 다른 판사들이 이미 다수 하고 있는 칼럼 기고를 했다고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뒷조사를 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이런 식으로 (뒷)조사를 하는데, 무슨 소통이 가능하고, 평판사가 사법행정과 법원의 미래에 대하여 의견을 낼 수 있겠나"라며 "내용을 가지고 토론하면 되지, 치졸하게 무슨 뒷조사인가, 무서워서 누가 게시판에 글 하나, 댓글 하나 쓰겠나"라고 비판했다.

차 판사는 또 이번 사태를 두고 일부가 보인 미온적 반응에도 쓴 소리를 남겼다. 그는 "(법원행정처가) 제 아버지 임종 같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사적 그룹의 메일링에서 뽑아 보고하고, 저를 고립시키기 위해 지인-친척-지원장-주변 지인 판사들까지 이용한 행태에 대해 '조금 과하다'는 평가에는 저는 동의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추가조사 결과는 나에게도 충격"이라며 "이런 광범위한 뒷조사로, 문제판사로 찍히는 과정은 그 자체로 불이익"이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판사 뒷조사가 실제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섣부르다고 반박했다. 차 판사는 "추가조사보고서 내용에 보면 비밀번호 걸려 보지 못한 파일 중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인사).hwp'라는 파일도 있었다"면서 "관련 파일들도 다 안 열린 상태에서, 또 실제 사무분담, 근무평정을 분석해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라고 남겼다.

"충격적 결과… 필요하다면 강제수사 받아들여야"

같은 날 김동현 판사는 "조사결과를 보고 연일 잠이 잘 오지 않는다"며 판사 블랙리스트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김 판사는 "제한된 범위에서의 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인 결과"였다며 "명백히 드러내 상응하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사법부에 더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판사는 "당시 법원행정처의 모든 기록, 저장매체 및 관계자들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추가조사가 불가피하다"며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부분은 대법원이 직접 고발 등 조치를 취하는 게 검토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영역이 있다면, 강제수사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용한 컴퓨터 및 물적 조사로 추출된 정상파일 460개와 유실 파일 300개가 암호화 파일로 추가조사위의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감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판사는 "사실을 밝혀 정의를 세우는 것이 법원의 본령"이라며 "사법부의 명예는 감춤이 아니라, 밝혀 드러냄으로써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법부에 판사로 남아있기 힘들다"

춘천지방법원 소속 류영재 판사 역시 코트넷에 "법관 사찰,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사이의 판결에 대한 의사소통 등이 법원의 통상적인 행위였다면 사법부에 판사로서 남아 있기 힘들다"는 글을 올렸다.

류 판사는 "김소영 법원행정처 처장님, 김창보 행정처 차장님, 이승련 기획조정실장께 공식 질의를 드린다"며 '판사 블랙리스트' 조사로 밝혀진 사실들에 대해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의 통상 업무인지 묻고 싶다. 신속하고 정확한 답변 내려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또 "공식적인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며 "지난해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임 전 차장을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의 지시자라고 인정했는데 왜 임 전 차장의 컴퓨터 하드를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한 건지 묻고 싶다"고 했다.

반대 주장까지… 법원 내부 갈등 심화

반면 울산지방법원 소속 김태규 부장판사는 정 반대 입장의 글을 올렸다. 아직 이런 입장은 코트넷에 상대적으로 소수이지만, 이런 글이 공개적으로 올라온다는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법원 내부 갈등이 만만치 않음을 나타낸다.

김 부장판사는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한 분과 추가조사위의 해명이 필요하다"며 블랙리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추가조사위가 영장주의 위배, 프라이버시 침해, 절차위반 등을 정면으로 돌파해가면서까지 이뤄낸 조사 결과는 '블랙리스트가 없다'로 귀결됐다"며 "무리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서로에 대한 반목과 마음의 깊은 생채기"라고 밝혔다.

그는 판사 동향 문건이나 청와대-법원행정처 사이에 원 전 원장 재판을 두고 나눈 의견 교환 문건에 대해서도 "꿩을 잡겠다고 했다가 못 잡았으면 못 잡았다고 하면 될 일을 굳이 닭을 잡았노라고 목청을 높일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제기 배경에 대한 역조사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한다"며 "정치권에서는 가칭 '김명수 방지법'을 거론하고 있다. 답변이 없다면 이제는 강제로라도 들어야겠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저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한편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통해 "합당한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국민들의 충격과 분노, 실망감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사법부 구성원들도 커다란 충격과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며 "필요한 범위에서 조사결과를 보완하고 공정한 관점에서 조치 방향을 논의하여 제시할 수 있는 기구를 조속히 구성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법원 스스로의 힘으로 이번 사안이 여기까지 밝혀졌듯이 앞으로도 그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저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법원 스스로 밝힐 것" 검찰 수사 선 그은 대법원장


태그:#판사, #블랙리스트, #양승태, #법원행정처,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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