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과잉'이라는 인류의 문제를 '새로운'시각으로 바라보고, 적당히 신선한 소재를 통해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본래의 목적인 인류의 문제와 환경오염, 지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예고편 속 내용은 이렇습니다. 인구과잉에 대한 해결책으로 인간축소프로젝트인 다운사이징 기술이 개발됩니다. 이 기술은 단순히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1억 원의 재산이 120억 원의 가치가 돼 왕처럼 살 수 있는 기회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영화 <다운사이징> 스틸 이미지 _

▲ 영화 <다운사이징> 스틸 이미지 _ ⓒ 파라마운트 픽처스


영화에 대한 실망 섞인 목소리도 이해가 됩니다. (네이버 기준 관람객 평점 5.94) 시니컬한 코미디, 혹은 SF 코미디를 기대했다면 분명 영화의 핀트가 벗어났다 생각될 수 있습니다. <다운사이징>은 초반을 제외하면 '코미디'와 'SF'가 잘 드러나진 않습니다. 사실 저도 예고편만 봤을 땐 이후 벌어질 일들이 기존의 인간과 소인의 갈등, 시술의 부작용, 혹은 소인 세계를 위협하는 외부 위험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개연성이 떨어진다거나, 전개에 어색함이 있던 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느낌이 다른 이유는 주인공이 작아지며 영화의 초점이 소인국에 맞춰졌고, 몸만 작아졌지 사람 사는 세상이란 건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류 문제도 그대로고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똑같은 세상 - 래저랜드

영화 <다운사이징> 스틸 이미지 _

▲ 영화 <다운사이징> 스틸 이미지 _ ⓒ 파라마운트픽쳐스


그렇습니다. 영화의 시점이 소인국 '래저랜드'로 옮겨진 다음부턴 분명 다운사이징 된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만 우리들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래저랜드에도 명암이 존재합니다. 분명 이곳의 사람들은 자유의지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다운사이징을 택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다운사이징 기술을 이용한 경우입니다. 영화 속 '녹 란 트란'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그 외에도 단순히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돈이 없어) 다운사이징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래저랜드에 와서도 부유하게 살지 못합니다. 그나마 있던 재산도 다 털어 다운사이징 수술을 했기 때문입니다.

'꿈의 나라'라고만 불렸던 래저랜드에도 이렇게 빈부격차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생각한 래저랜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매일 밤 파티와 사치가 일상이지만, 그 반대에는 수백명의 목숨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고비를 넘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개는 다운사이징 된 이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해도, 결국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걸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기적 같은 과학기술이 있더라도 유토피아는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지요.

영화 <다운사이징> 스틸 이미지 _

▲ 영화 <다운사이징> 스틸 이미지 _ ⓒ 파라마운트픽쳐스


따라서 "이런 내용에 왜 굳이 '다운사이징'이란 소재가 쓰였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다운사이징' 기술은 그냥 영화를 끌고 가기 위한 하나의 신선하고 재미있는 아이템이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독은 지구와 인류에 대한 접근 방법으로 '다운사이징'을 택한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작게 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할 만큼, 인구과잉과 자원 고갈이 심각해진 상황이란 걸 그려낸 것입니다. 그러나 인구의 아주 일부만이 다운사이징을 했기 때문에 십여 년 후에도 문제는 나아지지 않았고, 주인공이 비록 소인이 되었지만 똑같은 지구의 문제에 직면해 인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주인공의 말처럼 이 모든 과정은 굉장히 필연적입니다.)

사람을 끌어안은 공상과학 영화

'녹 란 트란'은 이 영화가 던져준 질문 거리들을 아주 잘 표현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국에서 환경운동을 하다 다운사이징 당하고, 탈출 과정에서 다리마저 잃고 본인 생활도 어려운 와중에 래저랜드의 빈민촌 사람들을 돌봅니다. 녹 란 트란 덕분에 주인공은 하루아침에 래저랜드의 빈과 부 모두를 목격하고 경험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곳의 빈부격차가 더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현재 자신이 다운사이징되어 소인국에 와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와 같은 문제보다는 지금 눈앞에 놓인 병들고 아픈 사람들이 우선이었습니다.

영화 <다운사이징> 스틸 이미지 _

▲ 영화 <다운사이징> 스틸 이미지 _ ⓒ 파라마운트픽쳐스


마지막에 주인공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존재가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녹 란 트란과, 미래의 인류를 생각하는 주인공은 선택의 순간 선명하게 구분됩니다.

녹 란 트란의 삶과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미래의 인류를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에겐 아직 돌봐야 할 이웃들이 너무 많다. 노아의 방주 앞에서,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명의 생명을 돌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다운사이징>은 SF·코미디로 사람을 끌어안은 영화입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 갑작스럽 게 튀어나온 건 아닙니다. 영화 초반 '다운사이징'기술이 발표되자 주인공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왜 내 병은 못 고친대?"

영화 <다운사이징> 스틸 이미지 _

▲ 영화 <다운사이징> 스틸 이미지 _ ⓒ 파라마운트픽쳐스


우리는 인류와 미래를 위해 눈부신 과학기술로 삶의 질을 높이고, 미래를 대비하려 하지만 그로 인한 수혜는 대부분 다수를 이루는 사람들한테 돌아간 적이 많았습니다. 다수의 유권자, 혹은 구매력 높은 이들 말입니다. 소수를 이루는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와 발전의 영광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죠. 래저랜드에서도, 천국을 즐길 수 있는 건 일정 재산을 보유한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다수' 보다 부족하거나, '다수'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철저히 천국에서 분리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축소할 정도의 높은 기술력을 가진 사회에서, "그러면서 왜 내 병은 못 고친대?"라는 어느 짧은 대사의 울림은 강력했습니다. 다운사이징 기술과 병든 부모의 불치병, 미래를 내다본 노아의 방주와 아무도 미래를 봐주지 않는 래저랜드의 빈민촌. 그리고 각각을 대표하는 인물 녹 란 트란과 주인공. 어려운 물음과 대답이지만 질문은 선명해집니다. 인류를 위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영화 <다운사이징> 스틸 이미지  _

▲ 영화 <다운사이징> 스틸 이미지 _ ⓒ 다운사이징


개인적으로 아쉬운 게 있었다면 녹 란 트란과 주인공의 러브라인입니다. 사랑에 빠지지 않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섹스가 빠질 수 없는 건가요? 아무튼 자칫하면 영화의 흐름에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녹 란 트란이 주인공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던 장면. 굳고 강건했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다 "하지만 나도 여자야"라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강하지만 사실은 나도 의지하고 싶어"라고 하면 되는 건데, 강건한 삶의 역을 이야기하며 왜 굳이 여성성이 나와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 역시 조금 아쉬웠습니다.

SF 모험 코미디에서 나아가 환경오염, 인류의 미래, 빈부격차, 자본주의 등 우리 사회의 고민들이 정성스럽게 녹아든 영화입니다. <다운사이징>은 질문과 생각이 항해할 수 있는 바다를 내어주었습니다.

다운사이징 맷데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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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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