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스크>의 포스터.

영화 <리스크>의 포스터. ⓒ Praxis Films


줄리언 어산지는 6년이 넘도록 영국 런던에 있는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살고 있다. 스스로 걸어 들어간 그 건물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니 지금 그는 '영어(囹圄)의 몸'이나 다름없다.

어산지는 위키리크스 창립자로, 지난 2010년 해킹을 통해 입수한 미국 기밀문서들을 전 세계에 대량 방출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또한 첼시 매닝, 에드워드 스노든 등 대형 기밀 유출 사건과 연결되면서 미국 정부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덕분에 미국의 힘 있는 정보·안보 관련 기관들은 그를 자국 법정에 세우는 일에 혈안이 돼 있다.

지난해 5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리스크(Risk)>는 2010년 이후 어산지의 행적을 담은 영화다. 당시 위키리크스는 이라크에서 미군 군용 헬기가 로이터 통신 기자 2명을 포함한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어산지는 스웨덴 검찰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소환 명령을 받고 에콰도르 대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신청했다. 또 NSA(미국 국가안보국)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을 러시아로 탈출시킨다. 영화에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등장한다.

로라 포이트러스 감독은 해당 사건들을 파고들어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그 사건들을 배경으로 어산지가 보여주는 언행을 기록하고 관찰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영화 중간 중간 등장하는 감독의 내레이션에서는 이런 위치 선정에서 오는 딜레마와 감정, 갈등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녀는 스노든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시티즌포>(2015)의 감독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 어산지의 두 가지 면모에 집중하게 된다. 신념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는 돈키호테 같은 행동가의 모습 그리고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살아가는 도망자의 모습이 그것이다.

 영화 <리스크>의 한 장면. 줄리안 어산지가 변장을 하고 있다.

영화 <리스크>의 한 장면. 줄리안 어산지가 변장을 하고 있다. ⓒ Praxis Films


영화에 등장하는 어산지는 대부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끝없이 주위를 살피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어디서든 도·감청 위험과 추적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애쓰는 그 모습은 항상 포식자를 경계해야 하는 아프리카 초원 영양 무리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가 한 일의 시비 여부를 떠나 안쓰러움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다. 감독은 이를 두고 그의 연약함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감독은 동시에 그를 용감한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영화를 보면, 어산지는 자신이 미국 정부에 잡히면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국이라는 초강대국 이익에 심히 반하는 일을 끝없이 벌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행동은 그의 가족과 친구들의 삶까지 영향을 준다. 그들 역시 점점 어산지처럼 불안한 처지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산지는 이렇게 말한다.

"원칙에 따른 견지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오래 못 살아남죠. 동시에 많은 일을 달성하지 못해요. 사람이라면 당연히 위험을 감수해야 된다고 봐요. 인생은 길지 않아요. 소중한 걸 위해 싸우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사라지고 나는 지는 거예요. 세상을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고 싫어하는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움직여야 해요."

어산지는 지식의 완성도가 인류 문명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중대한 정보들을 독점하고 있는 거대 비밀 조직에 맞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정보들이 지구촌 인간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어산지는 에콰도르 시민권자가 됐다. 스웨덴 검찰은 기소 없이 그에 대한 조사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물론 그는 여전히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영화 중간에 감독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성추행이 사실이라면, 그와 그가 한 일을 분리해서 평가할 수 있을까? 필자는 어산지의 성추행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할 위치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와 그가 한 일은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고 믿는다. 비록 그것이 매우 힘든 일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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