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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문제행동을 보일 때, 남편에게 묻는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문제행동을 보일 때, 남편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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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이러면 어떻게 하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문제행동을 보일 때, 남편에게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그 일이 우리에게 당장 닥친 일이 아니어서 명쾌한 답변을 내놓진 못한다. 다만 '우리 이러지는 말자'는 다짐을 해 본다.

우리는 부모에게 혼도 많이 나고 때론 아동학대와 비슷한 훈육을 받으며 자란 세대이다. 지금처럼 훈육의 중요성도, 방법도 몰랐고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엄하게 자랐다. 부모님 세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라는 아이들은 다르다. 조금 더 풍족한 세대지만, 시대가 급변하다 보니 불확실성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부모가 훈육, 교육에 대한 정보도 얻기가 쉽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선택의 연속이다.

내가 아기와 싸움에서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는 모유수유였다. 나는 17시간의 진통 끝에 제왕절개를 했다. 제왕절개를 하고 난 후에 나는 내가 패배자가 된 것 같았다. 임신 중에 책을 통해 자연분만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학습했다. 산도를 통과할 때 아기에게 면역력을 준다, 출산 후 회복이 빠르다... 많은 책에서 자연분만과 모유수유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자연분만에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기도 작았고, 골반도 좋다고 했고, 살도 찌지 않았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아기가 버티지 못해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출산할 당시 우리 아기는 2.52kg으로 병원에서 제일 작았다. 하필 내 앞의 아기는 3.6kg, 뒤의 아기는 4.2kg였다. 그사이에 누워있는 아기를 볼 때마다 미안한 생각뿐이었다.

모유수유는 반드시 성공하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 엄마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또한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모유를 먹여야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6개월, 1년,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먹어야 한다는 기록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 1년은 먹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끝내 또 다른 실패로 돌아왔다. 제왕절개를 한 후라 일단 이틀을 직수를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가슴은 불어서 젖몸살로 온몸에 열이 나고 너무 아팠다. 게다가 빠는 힘이 약한 아기는 내 모유를 먹기 어려워했다. 그래도 모유수유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온갖 방법을 동원해 모유를 먹이려 했다. 가슴 마사지도 받으러 가고, 젖병을 물리다가 모유수유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기는 젖을 물지 않았다.

아기가 배고프면 젖을 물지 않을까 싶어 둘이 1시간 넘게 씨름했다. 아기는 울다 울다 지쳐서 실신한 듯 잠이 들었다. 나는 처음에 아기가 죽은 줄 알았다. 너무 놀랐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기의 예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후에 유축 수유와 분유를 혼합했다.

아기는 자라서 빠는 힘이 생겼고 8개월가량 혼유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8개월 이후로는 바로 거부했고, 나는 아기의 의사를 존중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단유를 했다. 하지만 후회나 미련은 없다. 아기는 당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 어느 쪽을 강요할 수는 없다.

가족은 절대 가르칠 수 없다

아이스링크장에 갔다. 한참 놀고 있는데 초등학교 3~4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와 엄마가 함께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아이스링크장에 갔다. 한참 놀고 있는데 초등학교 3~4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와 엄마가 함께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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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경험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 아이스링크장에 갔다. 한참 놀고 있는데 초등학교 3~4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와 엄마가 함께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너무 많이 넘어져서 쳐다보게 되었는데, 그 후 엄마의 훈육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타야지. 그렇게 타니까 넘어지지.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일어나"

나는 엄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케이트 선수 출신인가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아이를 잡아주거나 손을 잡고 뒤로 탈 정도의 실력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선생님을 따라 병아리처럼 스케이트를 배우는 아이들이 지나갔다. 호랑이처럼 생긴 선생님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다리를 이렇게 하는 거야. 옳지. 잘한다."

그 뒤로 볼이 발그레한 아이들이 뒤뚱거리면 한 발 한 발 스케이트를 신은 발을 움직였다.한참이 지나도 엄마는 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표정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지옥에 있는 표정이었다. 표정은 굳어있었고 시선은 땅 밑에 고정되어 있었다.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계속 쳐다보고 있자니, 두 가정이 자녀와 함께 스케이트 장에 놀러 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들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고 그 아이는 죽을 듯한 표정으로 스케이트를 탔다. 그리고 오랜 망설임 끝에 엄마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제가 참견하는 것 같긴 하지만 아이 표정을 한 번 봐주세요. 계속 지켜봤는데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요. 이러면 이 아이는 다시는 스케이트를 타지도 스케이트장에 못 올지도 몰라요."

욕을 들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하는 동시에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나와 아이를 번갈아 보다가 무척 당황한 표정으로 "제가 그랬나요? 어머 미안해"라며 우는 아이를 달래주었다. 그리고 내가 아기한테 했던 것처럼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그제야 아이의 얼굴을 쳐다봐 주었다. 그 엄마는 아이를 매우 사랑하는 것 같았다.

매점에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 엄마는 계속 미안한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달래주었다. 다만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지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경험상, 가족은 절대 가르칠 수 없다.

중요한 건 나와 아이의 선택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한다. 육아에 대해, 교육에 대해.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한다. 육아에 대해, 교육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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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한다. 육아에 대해, 교육에 대해. 나는 9개월 아들의 수면교육을 포기했다. 이건 나의 선택이다. 내가 아끼는 후배의 말 한마디가 나의 육아 패턴을 바꿨다.

"그건 엄마의 선택이에요."

아기를 키우며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나와 아기를 위한 교육을 하기로 다짐했다. 수면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연구도 있지만 반대로 그 수면교육이 아기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연구도 있다. 육아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육아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우리 아이의 특성과 나의 특성을 고려한 육아여야 한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하지만 활동적인 아이에게 펜을 쥐여준다고 그 아이가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또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운동을 시킨다고 그 아이가 운동을 좋아하게 되지는 않는다. 억지로 무언갈 시키는 게 아니라, 자발성과 책임감을 주어야 한다.

누군가는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너도 그때 되면 다 욕심나게 되어있어. 다른 애들은 하는데 어떻게 안 시킬 수 있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가 억지로 무언가를 시킬 때, 무기력해진 아이들을 학교에서 자주 본다.

성적이 안 좋다고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거나 복학하겠다고 찾아온 부모님.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학교에서 잠만 잔다. 표정이 없다. 직장에 복직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그 아이의 상황을 정확히 몰랐다. 스케이트장에서처럼 한마디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저 아이가 지금 공부가 필요한 것인지, 삶을 살아갈 힘이 필요한 것인지 부모는 모르고 있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욕심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내 아이가 언젠가 사회의 부정적 모습과 치열한 경쟁의 장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라도 나는 우리 아이가 아이다운 모습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부정적 모습, 경쟁에 부딪혀 살아남을 수 있는 끈기, 책임감, 재치를 가르치고 싶다.

과연 어른의 판단이 무조건 옳을까? 우리도 부모가 처음인데 내 선택이 반드시 옳을까? 과거엔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스포츠 스타, 연예인, 유명 강연자, 프로게이머, 앱 개발자 등 이전에 중요하지 않았던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본다.

과연 이들이 처음부터 돈이 잘 벌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직업을 선택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았고 노력했고 그 선택을 도와준 누군가 단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건 부모와 아이의 선택이다. 모를 땐 물어보고, 알아보고, 고민하고, 또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물었으면 좋겠다.

부모님들, 뚜렷한 자신의 목표나 목적 없이 과외와 학원을 전전하는 우리 아이들, 과연 그 선택이 옳은지 아이의 얼굴을 한 번만 봐주세요.


태그:#육아, #아이 교육, #부모,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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