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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아래 전농) 의장이 오는 24일 4년 동안의 임기를 마치고 고향(충남 에산군 예산읍 관작리)으로 복귀한다. 그는 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전농 의장으로 선출돼 연임까지 하며 어려운 시국을 헤쳐왔다. 농업·농촌·농민정책 수립과 민주주의 가치실현을 위해 풍찬노숙했고, 지난해 촛불시민혁명의 중심에서 국정농단을 단죄했다. 오는 24일 임기를 마치는 김 의장을 지난 10일 서울 용산에 있는 전농 사무실에서 만났다. 임기와 상관없이 그의 머리와 가슴은 여전히 농업농촌현실과 농민권리로 꽉차 있었다. 김 의장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형식으로 정리한다.<기자말>

지난 10일 서울 전농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호 의장.
 지난 10일 서울 전농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호 의장.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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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년 참으로 많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임기를 끝내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2014년 2월에 의장으로 취임했어요.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정부는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색깔을 입혀 종북몰이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살벌한 정국이었지요. 그해 4월 세월호가 가라앉았고, 12월에 통합진보당이 강제해산 당했어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암흑기였죠. 쌀값을 올리라고 소리치면 종북 빨갱이로 몰아부쳤으니까. 그야말로 농업·노동·통일정책이 퇴보했고,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에 맞서 마땅히 싸워야할 정치(야당)와 언론이 모두 숨어버렸어요. 박근혜가 망나니처럼 휘두르는 칼이 무서웠던 게지.

그래서 우리 전농 지도부가 얼음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판을 만들자. 역사적 사명이다" 결의를 했어요. 그리고 나서 민주노총에 제안하고 연대해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국민이 잘 알고 있는 우리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집니다. 백남기농민대책본부를 꾸리고, 1년 동안 나쁜 정부와 처절히 싸웠습니다.

2016년 9월 25일은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고 박근혜 정권의 시녀인 경찰은 시신을 탈취하려 했지요. 백남기 농민을 지키며 끝까지 싸웠습니다. 그리고 11월 110만명이 민중총궐기를 했습니다. 박근혜는 마스크를 쓴 농민들을 가리켜 IS라고 했어요. 제 나라 국민을 테러범으로 몰아붙인 거예요. 허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정국에 최순실이 등장하며 전국민적인 분노가 더해졌습니다. 전국적으로 농민회는 전봉준투쟁단을 조직해 상경투쟁을 벌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민혁명에 남녀노소가 가리지 않고 촛불을 들었고, 드디어 살아있는 권력을 탄핵하고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이같은 민주적, 비폭력적인 시민혁명의 역사는 앞으로 우리사회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에너지로 작용할 것입니다.

돌이켜 보니 지난 4년이 '찰나'였지만 억압세력을 돌파하고자 당당히 맞선 시간이었고, 우리 전농이 역사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남은 삶을 더 적극적으로 살 수 있게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 전농이 최근 '농업의 가치와 농민의 권리를 헌법에 담자'는 국민운동을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개헌은 문재인 정부가 국민과 한 약속입니다. 개헌은 농민들에게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국가의 경제발전 속에 농민들은 늘 희생만 강요받았어요. 그 결과 지금의 농촌·농민은 고사할 위기입니다.

농업·농촌의 붕괴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인 문제예요. 식량안보에 구멍이 뚫리고 농촌 환경이 파괴되면 자연재해를 막을 수 없게 되요. 그래서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농민의 권리를 명문화 하자는 얘기입니다. 가까운 예로 1987년 '최저임금제'가 헌법에 명시되고 나서 노동자의 권리와 복지가 크게 향상되고 있잖아요. 보세요. 지금 새정부가 들어서 노동문제는 큰 변화가 있는데, 농업 얘기는 대통령 입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어요.

누가 해주길 기다려선 안돼요. 농민 스스로 나서 제대로 된 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농이 소비자단체 등 45개 단체와 함께 농민헌법운동본부를 결성하고, 지난해 9월 18일 국회 대토론회를 벌였습니다. 처음엔 근처도 오지 않고 주저주저하던 농협중앙회도 뒤늦게 분위기 파악을 하고 힘을 합쳐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성과가 있었습니다. 농업의 가치와 농민권리가 헌법에 담길 때까지 300만 농민이 눈을 부릅떠야 합니다."

김영호 의장이 지난 4년 동안 지킨 전농 사무실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영호 의장이 지난 4년 동안 지킨 전농 사무실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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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농이 '농민헌법' 운동과 함께 농민수당 지급도 주장하고 있는데.

"농촌은 공기와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키고 경관을 아름답게 하는 공익적 가치를 지니고 있죠. 세계 람사르총회에서 발표한 건데, 우리나라 논의 습지로서 가치를 돈으로 환사하면 27조원이라고 해요. 농촌을 지키는 농민 한사람당 1년에 900만원의 공익적 가치를 만들기 때문에 당연히 국가로부터 수당을 지급받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동안 정부가, 아니 한국사회 전체가 농촌을 방기해 왔습니다. 농업·농촌은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살만한 나라들을 가보면 농촌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농민들의 복지가 정말 잘 돼 있습니다.

중앙정부가 못하면 지방정부가 불을 지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전남 강진군이 지난 연말에 농업인경영안정자금 지원조례를 만들었어요. 7000여 농가에 경영안정자금 70만원을 균등지급하는데, 이 가운데 절반은 지역화폐를 제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어요. 강진군농민회가 마을좌담회를 열고 의견을 모아 조례를 만들어 더 의미가 있어요. 오는 6월 열리는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이슈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쌀값 얘기를 안할 수가 없다. 올해 조금 올랐는데.
"쌀값은 시장에서 형성되지만 결코 정치와 분리돼 있지 않아요. 새정부 들어서 15만원선을 회복했는데, 어쨌든 새정부가 우리 전농의 말에 귀를 기울였어요. 강력한 시장격리 요구를 바로 정책에 반영했어요. 물론 100%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지금 쌀 1가마에 15만원이면 1㎏에 1800원, 밥 한공기에 180원이에요. 세상에 쌀값 비싸 못사먹겠단 말은 안나오는 가격입니다.

쌀값은 곧 농민값인데 최소한 밥 한공기 300원, 1㎏ 3000원, 1가마 24만원. 이 정도는 돼야 농민들이 살 수 있습니다.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쌀값도 2020년까지 1가마당 24만원을 목표가격으로 해야 해요.

- 문재인 정부에 농업정책을 제안한다면?
"지금까지의 얘기가 농업·농촌·농민을 살리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요구였다면 이를 충족시킴과 더불어 수십년간 농업을 희생시켰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개방농정의 틀을 바꾸고 식량주권을 공고히 하는 정책을 펴야 합니다. 5000만명이 아닌 8000만명의 식량주권입니다. 또 그동안 농업의 희생 위에 국가경제가 발전한 점을 감안해 농촌에 일반복지가 아닌 특별한 복지 혜택도 안겨줘야 합니다.

- 임기가 끝나면 충남 예산의 농토로 복귀하는지? 2012년 총선에 출마했었는데 정치참여는?
"예. 예산으로 내려갑니다. 내 손을 보면 부끄럽고 미안할 때가 많아요. 아스팔트 농사(농민권익보장을 위한 길거리 투쟁)만 짓다보니 농사꾼 손에 굳은 살이 사라졌어요. 앞으로 농사를 지으며 계속 농민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농민을 살려내는 정치판을 만드는 씨앗을 뿌리겠습니다. 그리고 오해가 생길까봐 덧붙이는데 이번 지방선거에 예산에서 출마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농민회, #전국농민회총연맹, #농민회 의장, #김영호 의장,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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