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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비'가 잠시 돌아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고마운 사람"이라고 불렀던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말이다. 그가 <세상을 바꾸는 언어>(메디치미디어)라는 책을 들고 17일 일시 귀국한다.

양 전 비서관은 지난해 5월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권력의 장에서 퇴장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후 뉴질랜드의 작은형 집으로 떠났고, <세상을 바꾸는 언어>의 집필장소였던 일본 도쿄의 아파트를 거쳐 최근 미국 서부지역을 떠돌았다. '권력 실세'의 원치 않는 유랑길이었다.

그렇다고 양 전 비서관이 언론과 전혀 접촉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지난 2017년 12월 25일과 26일 1박 2일 동안 일본 도쿄 메구로구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났고, 12월 26일에는 <연합뉴스>, 최근에는 <중앙선데이>와 전화·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세 차례의 언론 접촉은 고스란히 언론 지면을 통해 공개됐다.

언론의 구설에 오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온 그로서는 뜻밖의 행보다. 곧 출간될 책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 실세라는 멍에 때문에 원치 않은 침묵을 강요당한 그에게 '할 말'이 많았던 것은 아닐까? <오마이뉴스>는 세 차례에 걸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생각①] "친노 패권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했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 양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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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전 비서관은 지난 2017년 5월 16일 지인들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주일 지난 때였다. 그는 메시지에서 "제 역할은 여기까지다"라며 "조용히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잊혀질 권리를 허락해 달라"라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 권력 실세의 퇴장 선언이었다.

그렇다면 양 전 비서관은 왜 스스로 퇴장을 선택했을까? 그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 수혈되는 인적 구조 만들기 ▲ 친노 패권 프레임 벗어나기 ▲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부정적 요소 등 세 가지를 내세웠다. 다 연결돼 있는 세 가지 가운데에서도 '친노 패권 프레임 벗어나기'가 퇴장의 핵심 이유였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부터 공격받고 시달렸던 '친노 패권'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동안 비선그룹이네 3철(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전해철·이호철·양정철 등 3명을 일컫는 말)이네 하면서 정치 경험이 없는 문 대통령이 핵심 참모에게 휘둘린다느니 어떤 결정을 누가 하는지 모르겠다느니 하는 공격을 받아왔다. 허구의 프레임이지만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 프레임과 대선 부채로부터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봤다." (<한겨레>)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먼저 부담을 덜어 드려야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참여정부 시즌2'는 안되게 하려면 우리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백 번 천 번 잘했다고 생각하다. 좋은 분들이 시스템과 팀워크로 청와대를 운용하면서 대통령을 잘 보좌하고 있지 않은가. 또 패권, 친문, 문고리 얘기는 누구도 말할 수 없게 됐다." (<중앙선데이>)

양 전 비서관은 앞서 언급한 장문의 메시지에서도 "나서면 '패권', 빠지면 '비선' 괴로운 공격이었다"라며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니 친문 친노 프레임이니 삼철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주시기 바란다"라고 당부한 바 있다.

[생각②] "왜 안 외롭겠나? 하지만 억울한 건 없다"

'MB 대통령 만들기'의 주역이었던 이재오 전 의원도 정권 초기 유랑의 길을 걸었다. 그가 워싱턴으로 떠나던 날 김진 당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자신의 칼럼(2008년 5월 25일)에서 "손에 잡힌 권력 앞에서 기습적으로 좌절한 이재오"라고 표현했다. 이 전 의원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자전거와 함께 10개월간 워싱턴을 떠돌았다.

양 전 비서관도 퇴장을 선언한 이후 뉴질랜드와 일본, 미국을 전전해왔다. 그는 <중앙선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왜 안 외롭겠나, 외롭고, 애절하게 그리운 것도 많다"라고 '외로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연합뉴스> 기자가 "(지난해) 5월 출국 당시 일성이었던 '더 비우고 더 채우고 오는 혼자만의 여정'은 언제 끝나는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나도 모르겠다. 7개월째 정처 없이 해외 유랑 중인데도 풍문이 많으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솔직히 두렵다. 아무 계획을 갖지 않고 그냥 지내려 한다." (<연합뉴스>)

"나도 권력과 거리 두는 것은 좋은데 언제까지 외국에서 떠돌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가끔 회의도 든다. 자청한 일이지만 이제 힘들어지기도 하고, 그리운 사람이 보고 싶어지는 등 외로움도 커지고 있다." (<한겨레>)

양 전 비서관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당분간은 정처없는 유랑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표현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머물던 일본 도쿄의 아파트 베란다로 나가 하네다 공항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저 비행기들을 보고 있으면 별생각이 다 든다. 저들은 어디서 왜 오는 걸까,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하냐고 말이다." (<한겨레>)

권력의 무상함이 진하게 느껴지는 발언이다. 하지만 "억울한 건 없다"고 했다. "성공하는 대통령과 정부"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절박한 운명'이라고 본 것이다. 

"대통령과 가깝다고 해서 세도를 부리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로 인해 대통령이 곤란한 상황을 겪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절박함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내가 빠져 있는 것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 (<한겨레>)

[생각③] "이제 분열하고 대결하는 것은 마무리해야 한다"

<한겨레>의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 인터뷰
 <한겨레>의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 인터뷰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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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으로 세워진 정부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최대 화두는 '적폐청산'이다. 취임한 이후 국정원과 검찰, 경찰, 국세청 등 주요 권력기관을 중심으로 적폐청산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양 전 비서관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도 지금의 적폐 청산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마무리되면 통합의 정치, 미래 지향의 정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여러 선택들을 하시리라고 생각한다"라며 "내가 아는 문 대통령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이면서 실용적 합리주의자다"라고 말했다.

언어에 천착했다는 양 전 비서관의 언어도 꽤 달라진 것이다. 언어(말과 글)가 의식의 반영이고 존재의 집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의 생각은 많이 달라진 듯했다. <세상을 바꾸는 언어>도 '평등의 언어, 배려의 언어, 공존의 언어, 독립의 언어, 존중의 언어'를 다루고 있다. <한겨레> 기자가 "책의 주요 내용이 공존과 배려, 상생 이런 것들인데 기존의 투사나 싸움꾼 양정철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라고 지적하자 꽤 흥미로운 답변이 돌아왔다.

"참여정부가 당시 여론이나 정치권으로부터 과도한 공격과 비판을 받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강하게 대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하면 공직자로서 현명한 대응이나 처신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언론이나 야당 의원에게 거친 말과 공격적 언사를 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앞으로도 저는 그런 방식이 우리의 컬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한겨레>)

양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시기 5년간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국가와 정부는 너무도 책임이 막중하고 국민 삶에 무겁고 중한 존재이기에 이념과 당파와 진영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걸 절감했다"라는 것이다.

"본인 지지자들에 의해 대통령이 됐지만 되고 나서는 지지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끌고 가는 국가 지도자가 대통령이다. 따라서 지난 역사에 대해서도 분열하고 대결하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서로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보수-진보의 틀에서 이제 빠져나가야 한다." (<한겨레>)

그런데 이렇게 변화된 생각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모순을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인적 협력이든 연대 등 정치지형상 협력이든 인위적으로 할 때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라온다"라며 "지금은 더구나 부패나 부정을 단호하게 진상 규명하고 사법적 처벌을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게 급선무다"라고 강조했다.

"지금 하고 있는 불법, 부패, 비리 청산(적폐 청산이란 말은 정확지 않다고 생각한다)은 국민적 요구고 지난 대선에 담긴 민의다. 지방선거 이후를 두고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앙선데이>)

[생각④] "지금이든 다음이든 청와대나 내각에 들어갈 상황이 아니다"

양 전 비서관은 "잊혀질 권리를 허락해 달라"라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권력 실세로 인식되고 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복귀설'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그의 위상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는 복귀설에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겨우 7개월 지났는데, 작별인사로 남긴 편지에 잉크도 안 말랐다. 왜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 참모들 전부 건강도 상해 가며 열심히 하고 있는데, 멀리서 그런 얘기 들으면 괜히 미안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더 모질게 권력과 거리를 둘 것이다." (<연합뉴스>)

양 전 비서관은 청와대나 내각에도 입성하지 않고, 지방선거나 총선에도 출마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지금이든 다음 기회이든 청와대든 내각이든 들어갈 상황이 아니다"라며 "공직으로 가는 건 꿈꾸거나 계획하거나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남는 것은 정치를 하는 일인데, 당에서 나를 아끼고 걱정해주는 중진 또는 선배 의원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조차 출마할 생각이 별로 없다. 체질에 안 맞는 것 같다." (<한겨레>)

양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이 임기 중 '나 좀 도와줘야겠다'고 손을 내밀면 어떻게 할 거인가?"라는 <중앙선데이> 기자의 질문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라며 "혹시 그런 상황이 와도, 그때 가서 또 설득하는 한이 있어도 선을 긋고 싶다"라고 답변했다. 아주 단호한 태도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양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준비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의 임기 중에는 "성공한 대통령과 정부"를 만들기 위해 유랑할 수밖에 없지만 퇴임한 후에는 '성공한 전직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는 뜻이다. 

"내 역할은 문 대통령 퇴임 이후를 혼자 일찌감치 그리고 묵묵히 준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은 퇴임하시면 대통령도 나도 자유로우니까. 역사에 평가받을 전직 대통령 문화도 우리가 처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런 일에 도움을 드릴 것이다. 내가 첫 비서니까 마지막 비서로 의리와 도리를 지키는 게 목표다." (<중앙선데이>)

<세상을 바꾸는 언어>, '양비 생각 변화'의 강력한 증거?

양정철 전 비서관의 신작 <세상을 바꾸는 언어>.
 양정철 전 비서관의 신작 <세상을 바꾸는 언어>.
ⓒ 메디치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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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전 비서관은 이념대결의 시대를 거치면서 상당히 지친 듯보였다. 그는 "조로한 느낌이 든다"(<한겨레>)라고도 했다. 어쩌면 그에게서 "공존", "통합",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선택", "거버넌스형 리더십" 등의 말들이 나오는 데도 극단의 시대를 끝내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있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세상을 바꾸는 언어>는 그의 정치 경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 이념의 시대, 대결과 배타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공존과 평등의 언어'는 설 땅이 좁아졌다. 극단적 효율의 시대, 경쟁과 속도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배려와 존중의 언어'도 설 땅이 좁아졌다. (중략) 우리 정치가 먼저 증오와 배제와 대결의 언어를 거둬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에서 먼저 대결의 문화가 완화돼야 대결의 언어가 줄어든다. 정치에서 대결적·극단적 혐오의 언어가 사라져야 댓글 문화를 포함한 사회적 언어가 덜 각박해질 것이라는 게 나의 믿음이다."(<세상을 바꾸는 언어> 중에서)  

한편 양 전 비서관은 오는 30일과 2월 6일 각각 광화문 교보빌딩과 한남동 블루스퀘어 카오스홀에서 <세상을 바꾸는 언어> 북콘서트를 연다.


태그:#양정철, #문재인, #세상을 바꾸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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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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