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을 아웃으로' 명백한 오심... 지난 14일 우리카드-삼성화재 4세트 오심 장면

'인을 아웃으로' 명백한 오심... 지난 14일 우리카드-삼성화재 4세트 오심 장면 ⓒ SBS Sports 화면 캡처


"역사상 최고의 징계를 내렸다."

프로배구 V리그를 관장하는 한국배구연맹(아래 KOVO)이 초대형 오판 사태에 대해 무더기 징계를 내린 후 스스로를 평가한 멘트였다. 지난해 12월, 한국전력-KB손해보험 경기에 투입된 심판진과 경기감독관의 오심으로 인해 비판이 쏟아졌고, 이에 한국배구연맹이 징계를 내린 바 있다.

KOVO 상벌위원회는 "경기 중 비디오 판독 규칙 적용 잘못과 운영 미숙으로 발생한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해당 경기의 주심과 부심에게 '무기한 출장정지'를, 경기감독관과 심판감독관에게는 '무기한 자격정지'의 징계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추가적으로 경기운영위원장(신춘삼)과 심판위원장(주동욱)에게 관리의 책임을 물어 엄중 '서면 경고' 조치를 했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성난 배구팬들이 온라인 곳곳에서 분노를 쏟아내고, 청와대 청원게시판까지 몰려가 재경기를 요구하며 집단 시위를 벌일 정도로 파장이 컸다.

배구팬들의 분노는 결코 이날 경기에서 즉흥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KOVO는 지난해 2월에도 대한항공-한국전력 경기에서 강민웅 선수의 규정 위반 유니폼을 문제 삼아 경기 도중 한국전력의 점수 11점을 삭제해버린 배구 역사상 초유의 '오판 사태'를 일으킨 바 있다.

TV 중계로 전국의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무려 25분 동안 양 팀 감독은 물론 당시 경기운영위원장, 심판위원장, 경기감독관, 심판감독관이 모두 나서 '규정이 맞니 틀리니' 하며 설전을 벌이고 갈팡질팡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결국 KOVO는 상벌위원회를 열고 오판을 인정했다. 그에 따라 당시 경기감독관에게 시즌 잔여 경기 출장 정지, 심판감독관은 5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50만 원 등의 징계를 내렸다. 현장에 있었음에도 사태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키운 경기운영위원장과 심판위원장은 경고로 끝냈다. 이를 두고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안 돼 또다시 초대형 오판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판정 참사가 지금도 시한폭탄처럼 잠복해 있다는 점이다. 언제든지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14일 우리카드-삼성화재 경기에서도 명백한 오심을 포함해 아슬아슬한 장면이 여러 차례 나왔다.

'이대로는' 오판 사태 또 나온다

배구 관계자뿐만 아니라 배구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재발 방지'다. 오심·오판 당사자들에게 강력한 중징계를 요구한 것도 일벌백계를 통해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는 데 방점이 있었다.

물론 심판도 사람이다. 실수를 할 수 있다. 그걸 모르거나 양해 못 할 팬도 없다. 그러나 정도가 있다. 경기 전체를 망쳐버릴 정도로 중대한 오심과 규정 적용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설사 잘못된 판정을 했더라도 신속한 정정과 매끄러운 처리가 뒤따라야 한다.

지금도 배구팬들의 심판 판정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큰 상황인데, 향후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PO)와 챔피언결정전 등 중요한 경기에서 또다시 대형 오판 사고가 터진다면 그 파장은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때는 KOVO 총재가 직접 책임을 져야 할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KOVO는 최근 태블릿 PC 등 심판 보조 전자기기 도입으로 보완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오심 사태를 막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비싼 돈만 들이고 효과는 미미한 전시용 행정으로 그칠 공산도 높다.

대형 오판, 무지·무능에서 비롯된 '인재'

오심·오판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최고의 대책은 다른 게 있을 수 없다. 심판진과 경기감독관 등이 판정을 제대로 하고, 규정 적용을 정확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이들의 '능력·자질 향상'이 사태 해결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사실 지난해 유니폼 사태와 비디오 판독 사태는 '오심'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오심은 심판진의 실수로 잘못 본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두 대형 사고는 주심·부심, 심판감독관·경기감독관, 현장에서 중재에 나섰던 심판위원회 위원장과 경기운영위원회 위원장까지 '집단적 오판 참사'를 일으킨 것이다.

이들이 상황에 대한 판단 착오와 규정·규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기 운영을 망쳐버린 것이다. 한 마디로 '무지와 무능'에서 비롯된 '인재(人災)'였다.

최고 문제는 '심판위원회'... 능력 갖춘 인사로 혁신 시급

그리고 최고 책임자이자 문제의 정점에는 경기장에서 '심판감독관'을 맡는 KOVO 심판위원회 소속 심판위원들이 있다. 심판감독관만이라도 자기 본분을 다했다면, 그런 최악의 사태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V리그의 모든 경기는 경기감독관석 옆에 심판감독관이 배석한다. KOVO 규정에 따르면, 심판감독관의 핵심 임무는 경기 중 심판 판정에 대한 비디오 판독 요청시 경기감독관·부심과 함께 비디오 판독·판정을 통하여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판정 시비가 나올 때 그 상황에 대한 규정 적용과 심판 판정의 오류 등을 정확하게 판단해서 경기감독관에게 알려줄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심판감독관은 V리그 규정뿐만 아니라 모든 배구 규정에 대한 완벽한 지식과 상황 판단력을 갖춘 사람으로 배정돼야 한다. 심판감독관과 심판진은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를 해야 한다.

결국 최악의 오심·오판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심판위원회 위원장부터 심판위원들까지 그 자리에 걸맞는 능력과 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제대로 선발하는 것이 최고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특히 심판위원장은 KOVO가 가장 공정한 절차를 통해 철저하게 능력과 역량을 검증해서 선임해야 한다.

심판위원장은 모든 경기의 심판과 심판감독관을 배정하고, 이들을 교육·훈련시키는 총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심판 자격증만 있다고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풍부한 경험을 통해 역량이 검증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다.

KOVO가 추진 중인 경기 및 심판 운영 선진화 작업도 그런 프로그램을 제대로 실행할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일의 총책임자 자리를 맡기는 게 우선이다.

'유니폼 오판 사태' 징계받은 심판감독관... '심판위원장' 영전

 코트에서 발생한 심각한 오심 논란에 휩싸인 프로배구 관계자들이 사상 최고의 징계를 받았다. 사진은 지난 19일 열린 KB손해보험과 한국전력의 문제의 경기 모습.

코트에서 발생한 심각한 오심 논란에 휩싸인 프로배구 관계자들이 사상 최고의 징계를 받았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2월 14일 열린 한국전력과 현대캐피탈 경기 모습. ⓒ 연합뉴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 심판위원회 위원장과 경기운영위원회 위원장 선임은 일부 프로 구단의 단장 4명이 주도하는 KOVO 인사위원회에서 사실상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고액 연봉을 받는 심판위원장과 경기운영위원장 선임 때마다 KOVO 고위 관계자와 인사위원회 단장과의 친분이나, 외부 인사의 입김에 좌우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실제로 이번 심판위원장 선임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 심판위원장은 지난 7월 조원태 KOVO 총재 부임 이후 새로 선임됐다.

문제는 현 심판위원장이 지난해 2월 유니폼 규정 잘못 적용과 점수 삭제라는 배구 역사상 초유의 오판 사태를 일으킨 핵심 당사자였다는 점이다. 그 경기의 심판감독관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 일로 KOVO 상벌위원회로부터 5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징계까지 받았다.

KOVO 상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한국전력-KB손해보험 오판 사태와 관련해서는 심판감독관에게 '무기한 자격정지'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두 사태는 규정 적용 잘못이라는 성격도 비슷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파장 또한 매우 컸다는 점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유니폼 사태 당시의 심판감독관도 '무기한 자격정지'감이다.

그런데 KOVO는 오판 참사로 징계까지 받은 심판감독관을 불과 5개월 만에 심판위원회의 최고 수장 자리에 영전시킨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오판 참사가 재발했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가벼운 '서면 경고' 처분만 받았다. 가장 책임이 큰 인사가 가장 가벼운 징계를 받은 것이다.

과연 이런 인사와 이런 조치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까. 어쩌면 2번의 대형 사고와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오판 사태는 이런 '인사 참사'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심판위원장 인사를 주도했던 일부 프로 구단의 단장들 또한 오심 사태에 책임을 통감해야 할 당사자들이 아닐 수 없다.

인사 혁신·제도 보완이 우선... 총재 직접 나서야

오심·오판이 나왔을 때 현장에서 곧바로 정정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도 이뤄져야 한다. 특히 올 시즌을 앞두고 KOVO의 최대 패착은 지난 시즌까지 존재했던 '재심 신청' 제도를 없애버린 것이었다.

재심 신청은 '심판의 판정이 규정·규칙 적용이 잘못됐다'고 판단될 때, 감독이 현장에서 재심을 요청해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지난 2번의 대형 오판 사태처럼 규정을 잘못 적용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KOVO가 '경기 지연'을 이유로 재심 신청 제도를 없앴지만, 결국 초대형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제거한 것이나 다름없다. 재심 신청 대상에는 인-아웃, 네트 터치 등 사실 판정에 대한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 때문에 경기 중에 실제로 재심을 신청하는 사례도 극히 드물다.

문제의 핵심을 제쳐 놓고 변죽만 울려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그사이 또 다른 대형 사고의 기운이 스멀거리고 있다. 남아 있는 심판진과 경기감독관들의 운명도 징계 칼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이대로 가다간 심판진이 바닥 날 수도 있다.

이 악순환을 끊어내야 하는 최고 책임은 KOVO 총재에게 있다. 사안의 심각성과 중대성을 감안할 때, 직접 나서야 한다.

가장 중요한 직책인 심판위원장과 경기위원장을 배구계로부터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통해 그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능력을 갖춘 인사를 선임하는 일부터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그것이 오심 참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첫걸음이자 핵심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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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V리그 KOVO 오심 조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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