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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자연사박물관
 뉴욕 자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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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노사우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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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4층, 거대한 공룡 화석들 앞은 언제나 아이들로 북적인다. 백악기 먹이사슬의 정점이라 불리던 티라노사우루스의 매력은 뼈만 남은 오늘도 여전하다. 아이들은 수십 미터에 달하는 공룡 화석들의 사진을 찍거나 주저앉아 그림을 그리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지구의 역사를 배워간다. 뉴욕이 자랑하는 관광지 가운데 하나인 자연사 박물관은 공룡뿐 아니라 우주의 탄생부터 현생 인류의 삶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역사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중이다.
  
그러나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나면 불편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특히, 2층의 아시아 동물관(Asian Mammals) 너머 아시아 사람들(Asian People)에 있는 조선의 '선비'와 그 '아내'로 추정되는 전시물의 모습은 당황스럽다.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이 박물관이 분명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사실이다. 어린 아이들은 공룡과 호랑이의 역사 사이에 전시된 '인간사'를 스쳐가고 있었다.

물론, 자연사 박물관은 고고학과 인류학을 포함한다. 이는 인간 역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지구 역사의 한 획을 담당해왔기에 당연하다. 실제로 박물관은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 흑인, 아시아 주민의 생활상도 충실하게 담아냈다. 그러나 박물관 그 어디에도 유럽과 북아메리카 백인의 삶을 재현한 전시실을 찾을 수 없다.

'전시물'로 살았던 인간이 있다

사키 바트만을 관람하는 서구 관람객
 사키 바트만을 관람하는 서구 관람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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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자연사 박물관이 비서구인을 전시한 것은 그 역사적 뿌리가 깊다. 특히 '호텐토트의 비너스'라고 알려진 남아프리카 출신 흑인 여성 사키 바트만(Saartje Baartman, 1789~1815)은 1810년 노예 신분으로 영국에 도착한 이후 1815년 사망할 때까지 '전시품'이 돼 영국과 아일랜드, 프랑스를 떠돌았다.

1814년 프랑스로 팔려갈 때, 그녀가 동물 조련사에게 넘겨졌다는 사실은 그녀를 '인간'이 아닌 '신기한 동물'로 대했던 서구인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매일 알몸으로 '전시'됐던 그녀는 급격한 건강악화로 2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만, 그녀는 결코 쉴 수 없었다. 죽은 이후에도 박제돼 프랑스의 자연사 박물관(Muséum des sciences naturelles d'Angers)에 187년 동안 전시됐기 때문이다. 200년 가까이 '전시 동물'로 노출됐던 사키 바트만은 2002년에서야 비로소 모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록 사키 바트만은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서구가 비서구를 대하는 인종차별적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사람'을 전시해왔던 서구 자연사 박물관의 태도도 여전하다. 문제는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한 어린 아이들 역시 위와 같은 시각을 자연스럽게 학습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공룡 화석과 아시아 호랑이의 박제를 지나 만나게 될 조선 '선비'와 그 '아내'를 바라볼 어린 아이들의 박물관 방문은 앞으로도 장기 지속될 인종간 상호 몰이해와 갈등의 주요한 뿌리가 될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인종차별의 뿌리가 보인다

뉴욕 자연사박물관 내 한국관
 뉴욕 자연사박물관 내 한국관
ⓒ 김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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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선의 '선비'와 '아내'를 오랜 시간 지켜보는 아이들은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북아메리카 원주민, 오세아니아 원주민, 조선과 일본, 중국과 아프리카를 거쳐 박물관 최상층에 위치한 공룡을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선비' 앞에 잠시라도 발걸음을 멈추는 이는 역설적이게도 한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수백의 전시품으로 꾸며진 화려한 일본관 옆에 한 칸의 자리를 허락받은 한국관의 모습은 초라하다. 타지에서 모국을 만난 한국인들만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조차 넓은 공간을 점유한 일본관에 비해 단출한 한국관의 규모에 불만을 가질 뿐, 이 박물관 어디에도 '백인'을 전시한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경우는 없었다.

자연사 박물관의 '서구 중심적 시각'은 인종과 세대를 막론하고 서구와 비서구의 모든 관광객을 대상으로 암묵적이면서도 치밀하게 주입되는 중이다. 앞으로도 이와 같이 비서구의 역사를 '자연사' 혹은 '동물사'의 일부로 전시하고, 비서구 역시 이를 무비판적으로 방관한다면 인종 차별의 뿌리를 뽑기는 요원하다.

전세계가 '지구촌'으로 '하나'가 됐다는 현재, 인종 차별과 상호 비방, 자문화 강요와 폭력은 여전하다. 국내 외국인 거주자가 170만 명을 돌파한 한국 사회에서도 인종 간 차별이 초래한 갈등과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혹은 동남아 출신 이민자를 대하는 한국인의 차별적 시선은 서구가 비서구를 대해왔던 시각과 다르지 않다. 서구가 자랑하던 민주적 질서와 산업 성장을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달성해 온 한국 사회는 심지어 서구 중심적 세계관마저 받아들인 듯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국이 여전히 비서구일 뿐이며, 자연사 박물관의 전시대상이라는 사실이다.

인종 차별의 뿌리는 놓치기 쉬운 사소한 일상에 가득하다. 공룡 옆에 전시된 조선의 '선비'처럼 역사적이며, 지속적이고, 교묘하다.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교육이 장기적 편견의 근간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단기적 인종 충돌을 해소하려는 노력 못지않게 서구 각국에 잔존한 비서구 '전시품'에 비판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도 무의식적으로 퍼져있는 인종 차별적 시각을 반성하되, 서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자기 우월적 시선의 그림자를 거두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태그:#인종차별, #한국사, #오리엔탈리즘, #자연사박물관,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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