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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들의 모습
 우리집 강아지들의 모습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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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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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사람이 반, 동물이 반 살고 있다. 엄마, 아빠, 나. 사람은 이렇게 셋뿐인데 강아지도 셋이다. 게다가 제각각 닮은 구석 하나 없다. 털 색깔도, 나이도, 크기도, 성격도. 모든 것이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저희 강아지 세마리 키워요"라고 말하면 사람들 반응이 참 다양하다. '허억' 하고 기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존경과 동정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무척이나 부러운 눈빛을 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 마리 동물에 둘러싸여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는 장면.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 한 마디를 건네고 싶어진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개는 남의 개랍니다."

안 그런 일이 어디있겠냐만은 동물은 직접 키워보면 정말 느낌이 다르다. 생각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간다. 하루 종일 이어달리기 하듯 돌아가면서 똥을 싸고, 덩치가 크면 클수록 냄새도 심하다. 사람 똥보다 더하다. 세 마리 미용 한번 할라치면 십만원은 훌쩍 넘어버리는데, 며칠 안 지나서 또 다시 털이 북실북실해져있다.

한 마리가 짖으면 세 마리가 하모니를 펼쳐서 온 동네방네 고성방가는 다 하고 다닌다. 화음까지 넣는다. 얘네가 사람이었으면 백퍼 수십 번은 경찰서에 끌려갔을 것이다. 잘 때는 돌아가면서 깨운다. 자기 앞발이 솜털인 줄 아는지 그 거대한 발톱으로 얼굴을 북북 긁는다. 치킨이라도 한번 먹을라치면 제물을 둘러싼 원시인처럼 나를 둘러싸고 짖어댄다. 한 마리여도 벅차는 것이 세 마리가 되면 시너지가 그 배가 된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일을 왜 하고 있는 걸까. 어째서 10년 넘는 세월을 이렇게 지내고 있는걸까. 분명 물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는 왜 이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을까? 우선 내 일상을 곰곰이 되짚어보자.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는 복슬한 검은 털뭉치가, 옆구리에는 조그마한 갈색 털뭉치가, 다리에는 커다란 고동색 털뭉치가 있다. 딱 달라붙은 그 느낌이 보들보들하니 좋다. 내가 일어나는 것이 그들 하루의 시작인지 저마다 기지개를 피고 귀를 턴다.

화장실에 가는 나를 졸졸 따라온다. 밥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여니 모두 아이들처럼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간식을 주면 저마다 찹찹 받아먹는다. 인형 하나 가지고도 참 재미있게 논다. 막내는 기린인형 목덜미를 잡고 상투 돌리듯이 머리를 빙빙 돌린다. 옆에 있는 형아는 그 모습이 당황스러운지 자리를 피한다.

낮이 되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방바닥에 늘어져 햇살을 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불안감도, 초조함도 사라진다. 분명 방바닥은 차가운데 기운은 따뜻하다. 덩치 큰 막내를 베개 삼아 누워 슬픈 영화를 본다. 자기들도 뭔가 알기는 하는지 티비를 같이 쳐다본다. 감수성이 벅차올라 베고 있던 막내를 안으면 심장 고동소리가 느껴진다. 갑갑하지도 않은지 가만히 내 어깨에 턱을 얹는다. 가장 눈치 빠른 둘째는 내 옆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는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은하수를 박은 듯 아름답다.

이내 해가 사라지고 달이 찾아오면, 나는 이불을 편다. 제 집에 얌전히 앉아있던 첫째는 재빠르게 나에게 달려온다. 들어올려주면 자연스럽게 내 옆구리에 둥글게 똬리를 틀고 잠에 든다. 그리고 나는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 모든 것이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일상이다. 평범하다 생각했던 하루가 이렇게 나열해보면 소소한 이야깃거리들로 꽉 차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주는 것은 내가 아니라 세 마리의 강아지들이다. 귀가시간을 기대하게 하고, 홀로 여행을 떠났을 때 그리워할 누군가가 되어주고, 몸이 잔뜩 늘어지는 주말에 내 엉덩이를 걷어차는 것은 요 생명체들이다.

이 아이들은 나에게 이미 일상이 되어있다.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다. 그냥 '나' 그 자체이다. 내 몸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해서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세 마리의 강아지와 산다는 것은, 세 배의 행복을 얻는 것이라고.



태그:#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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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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