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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통일의 집'은 <문익환 평전>을 쓴 김형수 작가와 함께 문익환 목사가 오랫동안 사셨던 '통일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스토리펀딩과 더불어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86년 5월 20일 서울대 '5월제'에서 강연하는 문익환 목사에게 치안본부는 이동수 군 분신투신자살과 관련 문익환 목사를 선동혐의로 수배했다.?
▲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조사를 맡은 문익환 목사 86년 5월 20일 서울대 '5월제'에서 강연하는 문익환 목사에게 치안본부는 이동수 군 분신투신자살과 관련 문익환 목사를 선동혐의로 수배했다.?
ⓒ 박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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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목사 프로젝트 ①] "문 목사님, 한국 감옥은 그렇게 신나는 곳입니까?"

"이한열 열사여!"

1985년, 80년 5월 광주의 영혼들이 시린 슬픔으로 남아있었을 때였다. 전두환은 꽃처럼 피어오르는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꺾고자 했다. 사람들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급기야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는 극한의 저항으로 번져갔다.

문익환 목사의 강연이 있었던 서울대에서도 그랬다. 1986년 5월 20일 서울대 총학생회는 '광주항쟁의 민족사적 의의'라는 주제의 강연을 문익환 목사에게 청했다. 그의 어머니 김신묵 권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의 모습에 가슴 아파하며 강연을 앞둔 아들에게 '죽기로 각오한 목숨, 죽지 말고 끝까지 싸우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꼭 전해달라고 당부하였다.

하지만 그 말을 전하기도 전에, 강연이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젊은 생명이 불길에 휩싸여 떨어졌다. 원예과 1학년에 다니던 이동수(향년 24세)군이 학생회관 옥상에서 몸에 불을 붙이고 투신한 것이다. 문익환 목사는 그 광경을 똑똑히 목격했다.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그 젊은 생을 대신 피로 살아주는 길밖에 남은 길이 없습니다."

이한열 분향소부터 찾은 문익환 목사, 그의 외침

네 번째 복역 후 출소한 문익환 목사는 그길로 이한열 열사의 분향소를 찾았다. (출처: 유튜브 화면 캡처)
▲ 이한열 분향소를 찾은 문익환 목사 네 번째 복역 후 출소한 문익환 목사는 그길로 이한열 열사의 분향소를 찾았다. (출처: 유튜브 화면 캡처)
ⓒ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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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뿐만 아니라 시린 역사의 칼바람에 찢겨지는 모든 죽음들, 상처와 아픔들이 억울하고 안타까웠다. 그런 그에게 전두환 정권은 분신과 시위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뒀다. 그리고 그가 이듬해 유월 항쟁의 승리로 7월 8일 가석방으로 출소하기까지 고문으로 죽은 박종철과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의 소식을 들어야 했다.

진주교도소에서 출소한 그는 바로 이한열 열사의 분향소부터 찾았다. 그리고 이튿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연세대)에 참석한 문익환 목사는 열사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그것은 윤동주, 장준하의 생을 대신 살겠다던 문 목사가 짊어져야 할 이름들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생명이었다.

역사 속에서 죽어간 이름들을 목청껏 부르던 문익환 목사, 그의 목소리가 다시 우리 가슴에 생생하게 울렸으면 한다. 그리고 짊어져야할 그의 삶이 있다면, 또는 평화와 통일의 꿈이 있다면 함께 짊어지고 가야겠다.
 
 
 1987년 7월 9일 연세대, '애국학생 고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 조사 전문

전 나이 일흔 살이나 먹은 노인입니다. 이젠 살 만큼 인생을 다 산 몸으로 어제 풀려나와 보니까 스물한 살 젊은이의 장례식에 조사를 하라고 하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아까 백기완 선생도 지난밤 한잠 못 잤다고 했지만, 저도 한잠 못 잤습니다. 너무너무 부끄러워서. 왜 나왔던가.

어제 저녁에 여기서 박수를 치는데 제가 거절을 했습니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당신들의 박수를 받을 것이냐? 밤을 꼴딱 새면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이한열 열사를 비롯한 많은 열사들의 이름이나 목이 터지게 부르고 들어가려고 나왔습니다. 모두 사십여 명 된다고 하는데, 제가 스물 다섯 사람의 이름 밖에는 몰라서 스물 다섯 사람의 이름을 적어가지고 나왔습니다. 빠진 이들이 있다고 하면 제가 다 부른 다음에 그 가운데서 누구나 일어나서 불러주세요.

전태일 열사여-!
김상진 열사여-!
장준하 열사여-!
김태훈 열사여-!
황정하 열사여-!
김의기 열사여-!
김세진 열사여-!
이재호 열사여-!
이동수 열사여-!
김경숙 열사여-!
진성일 열사여-!
강상철 열사여-!
송광영 열사여-!
박영진 열사여-!
광주 이천여 영령이여-!
박용만 열사여-!
김종태 열사여-!
박혜정 열사여-!
표정두 열사여-!
황보영국 열사여-!
박종만 열사여-!
홍기일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오동근 열사여-!
김용권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카카오 스토리펀딩 '문익환 목사 가택 박물관 프로젝트'에 연재된 글임을 밝혀 드립니다.
https://storyfunding.kakao.com/episode/33487#none



태그:#문익환, #이한열, #장례식, #6월 항쟁,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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