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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뜰 때, '주민등록을 말소하고 올까?' 했다가, 순전히 '말소'란 단어의 어감이 싫어서 동생 밑으로 나와 아들의 주소를 이전해 놓고 왔다. 어차피 남편은 외국인이라 주민등록에 올라오지도 않으니 처리할 사항도 없었다.

한국의 겨울 방학을 맞아 멜버른을 방문한 조카가 아들의 '취학 통지서'를 들고 왔다. 공문을 읽다 보니 어제가 배정된 학교의 예비 소집일이었다. 한국에서 교육자로서의 경험상, 아이가 배정된 학교의 교사들은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아이는 부모가 이혼을 했나 봐. 애가 엄마의 성을 땄고, 주민등록에 아빠는 올라와 있지도 않아(교사 중에 외국인 부모는 법적으로 주민등록 등본에 기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엄마는 애를 학교에 입학시키지도 않았네. 앞으로 속 꽤나 썩이겠어.'

우리 가족이 아직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과연 아이가 이곳처럼 잘 적응해서 활기 찬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멜버른의 학령기는 '프렙'이라 불리는 예비 과정이 있어서 한국보다 일 년 정도 일찍 시작한다)?

3. 예비소집일을 포함하여 입학기일 이후에도 연락 두절이나 정당한 사유 없이 학교에 입학하지 않을 경우, '초중등교육법시행령'에 따라 내교요청, 가정방문 실시 및 경찰의 협조 등을 통해 아동의 소재·안전 확인 절차를 실시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내가 살고 있는 멜버른에선 이런 협박조의 가정통신문 대신, 입학 전 약 6개월간 예비 신입생들을 해당 학교에 적응시키는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학교마다 프로그램에는약 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Transition Day' 가 매달 한 두 번씩 입학 할 학교에서 열린다.

2018년도 예비 초등생을 위해 작년 두 학기간 실시된 Transition day 일정표
▲ 신입생을 위한 준비 프로그램 2018년도 예비 초등생을 위해 작년 두 학기간 실시된 Transition day 일정표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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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tion Day에는 다음 해에 만날 아이들과 부모들이 학교에서 준비한 각종 적응 프로그램과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다. 체육, 미술, 음악, 제2외국어 교사들과 활동하는 시간, 교장이나 교감과 학교 투어하는 시간, 교사들과 아이들이 함께 친분을 쌓는 동안  부모들에게'아이들의 독서는 왜 중요한가?', '놀이 교육은 왜 필요한가?','어린아이들의 수학과 언어 교육은 어떻게 접근하는가?' 등에 대한 주제로 전문가를 불러 학부모 강연을 하는 학교도 있다.

2018 예비 학부모와 가정을 위해  지난 해 두 학기 동안 학교 적응 활동 들을 실시했다.
▲ 예비 학부모를 위한 transition day 프로그램 2018 예비 학부모와 가정을 위해 지난 해 두 학기 동안 학교 적응 활동 들을 실시했다.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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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청에 해당하는 기관에서는 각 가정으로 각종 안내문들을 보낸다. 자녀의 첫 학교생활 적응을 효과적으로 돕는 방법에 대한 안내문, 안정적인 입학이 아이들의 정서나 교육에 미치는 영향, 예비학부모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사이트들을 소개하는 내용들이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1월 29일 새 학년 첫 등교일, 이곳엔 한국처럼 혼란과 긴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개학 첫날은 'Students Free Day'로 교사와 스태프만 출근하여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30일 둘째 날은 재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31일 셋째 날은 신입생이 등교를 한다. 물론 한국에서처럼 신입생을 운동장이나 강당에 몰아넣고 열리는 개학식은 없다.

이곳의 합리적인 일 처리와 구성원을 배려하는 문화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신입생의 경우, 첫 등교일 등교 시간은 학생마다 다르다. 반별로 학생당 10분 정도의 간격을 두는데, 이는 교사가 아이와 학부모를 환영하고 가방이나 도시락 등을 정리하는 방법을 한 명씩 지도하기 위함이다.

한국의 지인 중에는 겨울 방학 때 초등학교에 입학할 딸을 데리고 배정된 학교를 며칠씩 방문하는 이가 있었다. 교무실에 가서 양해를 구하고 학교의 구조와 급식실, 화장실, 양호실 등을 데리고 다니며 아이에게 최소한의 적응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교사였기에 학교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개학 첫날 아이들이 겪는 긴장과 공포를 예측할 수 있었기에 자녀에게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그런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멜버른에서 한국에서 날아온 아들의 입학통지서를 받고 생각했다. '선진국은 부모 개인의 능력과 정보량에 무관하게 국가 차원에서 구성원에게 공평하게 배려와 존중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호주의 입학 적응과정, #취학 통지서, #멜버른, #TRANSITION DAY, #멜버른의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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