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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을 아내와 둘째와 함께 매가박스에서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감동의 무게가 그만큼 컸던 탓일 게다.

그 시절 대학을 다니고, 의경을 복무하면서 데모를 막고, 또한 제대 후 데모 행렬에 동참한 세대로써 감회가 클 수밖에 없었다. 박종철 열사가 죽은 1987년 4월이면 제대 말년 때이다. 처음 의경으로 입대를 할 때는 하는 일이 치안보조인 줄 알았다. 모집 요강에 그렇게 나와 있었기 때문에 경찰들이 하는 일을 경찰서나, 파출소에서 보조를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 당시 육군으로 입대를 하려면 만 20세가 되어야 했고, 호적에 1년이 늦게 올라갔기에 입대 연령이 되지 못했다. 대학교 2학년일 때, 공부가 진짜 하기 싫었고 어차피 군대에는 한번 갔다 와야 했기에 1학기를 다니고 휴학하면 바로 갈 수 있는 곳이 의무경찰이었다. 복무기간이 36개월이어서 엄청 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안보조를 하면서 사회를 배울 수 있다는 점과 바로 입대가 가능하다는 메리트가 있어 자원입대를 하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데모진압에 투입될 거라고는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당시 육군도 충정훈련이라는 데모진압 훈련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었기에 군인이라면 누구나 데모진압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만 받아들였다. 훈련소 4주를 마치고 경찰종합학교 12주 교육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5주 정도 교육을 받았을 때 서울로 출동을 나갔다.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80년대 후반 6,29 선언까지 매년 데모가 끊이질 않았다.

아마도 서울로 출동 나갔을 그때도 데모가 극심해져 기존 경찰 인력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출동을 나가니 기존 경찰들까지 치안은 뒷전이었고 모두 진압복을 입고 데모를 진압하고 있었다. 의경은 치안보조를 한다는 모집 요강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현실이었다. 그 당시 국가로부터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하기야 데모 진압도 치안이라고 말하는 당시 경찰들이었으니 할 말은 없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딜레마에 빠졌다. 이 영화에서는 경찰을 정권의 완전한 꼭두각시로 묘사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를 고문하여 죽이는 경찰,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며 데모 진압을 하는 경찰, 그리고 이한열 열사를 향해 직격탄을 쏘아 죽이는 경찰. 경찰로서 할 수 있는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하는 경찰로 묘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경찰조직에 3년간 몸을 담았다. 자의든 타의든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 나쁜 조직에 몸을 담은 사람으로서, 그 영화 속에서의 악역인 조직폭력보다 더 잔인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근무했던 나로서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 당시 집체교육이라는 이름의 정신교육을 수시로 받았고, 일 년에 두 번씩 데모진압 훈련을 받았다. 데모 진압에 나가면 동고동락을 함께 한 동료들은 화염병을 맞고,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시고 돌을 맞고 다쳐서 병원으로 실려 나갔다. 나도 돌멩이를 맞아 손톱이 빠진 적이 있다. 좁은 버스 안에서 진압복을 입고 앉아 대기하는 시간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앞 좌석에 무릎이 받쳐 통증이 왔고, 밥을 먹는 것도 언제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편하게 먹지 못했다. 잠자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울로 출동을 나가면 건물 지하실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거나 경찰서 회의실 등에서 자는 것이 다반사였다. 우리는 단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누구나 가는 군대를 간 것뿐이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쿠데타 세력의 편에 서서 방패막이를 생고생을 한 것이다.

똑같이 우리도 박종철 고문치사에 분노할 줄 아는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불합리한 정권의 꼭두각시가 되어 원치 않는 데모진압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싫었던 평범한 청춘이었다. 1987년 영화를 보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의 편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어떻게 보면 그 당시 전경, 의경 그들도 정권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영화는 경찰들의 긍정적인 면은 나오지 않는다. 시나리오 구성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아쉬운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5.18 당시 군부의 시퍼런 독기 아래 맹종했던 언론, 그 언론으로 인해 더 비참하게 된 국민들. 그런 언론마저도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고 있다. 교도관조차도 민주인사를 돕는 의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경찰보다 더 큰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검사마저도 박종철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촉매 역할을 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경찰은 그저 폭력을 휘두르는 부정적인 장면밖에 나오질 않는다.

그렇지는 않다. 그 당시에도 양심 있는 경찰들이 있었고, 데모진압을 하면서도 학생들을 친구처럼, 동생처럼, 가족처럼 대한 경찰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 장면이 한 번쯤,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라도 한 번쯤 나와 주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생각을 표현하면, 흑백논리에 젖은 자칭 민주의 선봉이라고 자부하는 인사들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1980년대를 지나온 경찰들이 너무 매도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많이 민주화가 되었다. 오늘날의 발전된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에, 1980년대를 함께 겪은 그들의 역할은 정말 하나도 없었을까?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스스로 생각하면 나도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가 진실을 외치고 있다. 하나의 진실 규명을 위하여 경찰 전체가 폭력집단으로 묘사되고 희화화되는 것은 또 다른 진실을 묵살하는 것은 아닐런지.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우리 경찰을 다시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태그:#CYYOU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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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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