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원주 DB 프로미 경기. 창원 LG에 승리한 원주 DB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10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원주 DB 프로미 경기. 창원 LG에 승리한 원주 DB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농구 원주 DB 프로미가 전반기를 1위로 마감했다. 원주는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24승 9패, 승률 .727을 기록하며 2위 전주 KCC(23승 11패)를 1.5게임 차이로 제치고 선두를 지켜냈다.

원주의 선전은 전반기 프로농구의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원주는 개막 전까지만 해도 중하위권 정도의 전력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당당히 1위까지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허웅의 입대와 김주성-윤호영의 노쇠화로 전력이 약해져 올시즌은 사실상 '리빌딩'에 주력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분위기였다. 2014년 안양 KGC 인삼공사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 3년 만에 현장으로 복귀한 이상범 신임 감독 역시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원주는 탄탄한 전력을 과시하며 초반부터 반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전문가와 팬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선전이었다. 무엇보다 원주의 돌풍은 일시적인 반등을 넘어, '리빌딩' 과정과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원주의 이번 선전이 의미 있는 이유다.

원주의 선전은 외국인 디온테 버튼 효과?

원주의 반등을 사실상 '디온테 버튼 효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원주는 지난 시즌(정규리그 5위)에 비해 버튼(21.5점, 9.1리바운드)을 제외하면 전력상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단숨에 반등한 것에 버튼의 활약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KBL의 특성상 외국인 선수 한 명의 영향으로 팀 전력이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드문 일도 아니다.

하지만 창원 LG나 서울 삼성의 부진에서 보듯이 아무리 좋은 선수를 보유하고 있어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버튼은 우수한 선수지만 개인 기록에서 보듯 득점력이나 골밑 장악력에서 특출하게 압도적인 선수는 아니다.

그러나 버튼의 장점은 지금의 원주에 가장 최적화된 성향을 갖춘 선수라는 점이다. 193cm, 113kg의 버튼은 체형만 보면 언더사이즈 빅맨을 연상하기 쉽지만 실제 플레이스타일은 1번에서 4번까지 전천후로 소화 가능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에 가깝다. 버튼은 수비에서는 빅맨의 역할도 가능하지만, 공격에서는 정통 포인트가드가 없는 원주에서 리딩능력이 떨어지는 공격형 가드 두경민의 약점까지 보완한다. 여러 포지션에서 빈 자리를 메워줄 수 있는 소금같은 존재인 셈이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걸출한 외국인 선수보다 오히려 국내 선수들과 팀플레이에서 유기적인 조화를 이뤄줄 수 있는 버튼을 선택한 것은, 선수와 팀 서로에게 모두 윈-윈이 됐다.

한 시즌에 '성적과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는 것도 원주식 리빌딩의 특징이다. 기존에 KBL에서 리빌딩을 시도한다고 하면 아예 한 두시즌 성적을 포기하고 외국인 선수나 신인드래프트를 노리는 '탱킹' 전략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원주는 허웅이 군에 입대했음에도 성적은 오히려 급상승했다. 재능은 있지만 생산성에서 엇갈리는 평가를 받던 두경민이 사실상 토종 에이스로 각성했고, 서민수-김태홍 등 지난 시즌까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식스맨들이 당당히 팀 전력의 한축으로 성장하며 큰 전력 보강 없이도 반년 만에 전혀 다른 팀으로 환골탈태했다. 지난 시즌까지의 원주는 KBL에서도 주전 의존도가 높은 팀으로 항상 거론됐다. 결국 똑같은 자원이라도 감독의 신뢰와 활용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선수-다른 팀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베테랑과 신예의 조화, '리빌딩'이란 이런 것

베테랑과 젊은 선수들간의 신구조화도 빼놓을 수 없다. 프로스포츠 어느 종목이든 흔히 리빌딩을 추진하는 팀에서 나이든 베테랑들의 존재란 종종 걸림돌로 취급받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선수와 감독, 구단간에 불화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원주에서는 KBL에서 보기 드물게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10년 이상 원주 농구의 트레이드 마크인 '동부산성'의 주축이었던 김주성과 윤호영이 어느덧 모두 나이를 먹었지만 팀의 주역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조연의 역할을 자처하며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특히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예고한 '원주의 전설' 김주성(평균 13분 27초, 5.5득점 2.2리바운드)은 주로 후반에만 출장하고 있지만 승부처에서 결정적인 활약으로 팀을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내며 베테랑의 클래스를 과시하고 있다. 이상범 감독은 잔부상과 체력적인 문제로 오랜 시간을 뛰기 어려운 김주성과 윤호영의 출전시간을 철저히 관리하면서도 적재적소의 기용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후배들의 모범이 되면서 믿고 의지할수 있는 멘토이자 구심점의 역할까지 해내는 베테랑의 존재는 원주의 보이지않는 힘이다.

무엇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는 말처럼, 이상범 감독의 존재는 전반기 원주의 선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상범 감독은 안양 KGC 인삼공사 사령탑 시절을 통해 수년간에 거친 '리빌딩을 이끌어본 경험'이 있는 지도자다. 사실 당시에는 이상범 감독도 몇 년간 성적을 포기하여 좋은 선수들을 끌어모아 성적을 냈을 뿐이라는 저평가가 많았다. 2012년 안양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감독의 능력이 크게 높은 주목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올시즌 원주의 선전을 통하여 이상범 감독의 리빌딩 노하우는 새삼 재조명받고 있다. 돌이켜 보면 안양 감독 시절에도 이상범 감독의 세밀한 팀운영 스타일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리빌딩의 과도기에서 '원클럽맨' 은희석이나 트레이드로 재영입한 김성철같은 베테랑들을 쏠쏠하게 활용하여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시도한 것이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덕장의 면모, 전술적으로도 자신의 농구 스타일을 강조하기보다 그때그때 선수구성에 어울리는 팀컬러를 만들어가는 유연한 리더십이 대표적이다.

사실 이상범 감독의 첫 감독 경력이었던 안양 시절에는 때때로 조급한 모습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이감독도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안양 시절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원주에서의 돌풍도 없었을 것이다. 지도자에게 성공이든 실패든 다양한 '경험'의 가치가 왜 중요한지를, 바로 올시즌 이상범 감독의 리더십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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