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 말

 지난해 12월 27일 나온 가수 윤하의 새 앨범

지난해 12월 27일 나온 가수 윤하의 새 앨범 ⓒ C9엔터테인먼트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내가 되기를 다짐하면서 1월 1일을 맞았겠지만, 지난해 이별을 경험했다면, 새해의 의미는 더욱 특별할 것이다. 연도가 바뀐다는 것은 지난 아팠던 시간과의 단절된 느낌을 갖게 하기에 힘들었던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내가 되기로 다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어떻게 하면 이별을 후 새로운 나로 거듭날 수 있을까? 윤하의 '종이비행기'(작곡 그루비룸, 윤하, 작사 윤하, 김이나, pH-1)는 이별 후 보다 나은 나로 성장하는 과정을 노래했다. 새해 첫 '가사 공감'은 '종이비행기'를 통해 이별에 성공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괜찮아
자유롭게
자, 훨훨 바람을 따라

지켜볼게
할 수 있도록
봐, 벌써 하늘을 날아

때론 힘들었고 때론 행복했던
모든 순간을 묻을 수 있을까
내내 함께였고 내내 외로웠던
우릴 그만 보내주려 해

갖고 있긴 너무나도 아팠었지만
그건 그만큼의 사랑이었어
다신 내가 걷지 못할 길이겠지만
잊지 못할 풍경들이었어
I'm gonna be alright - 윤하의 '종이비행기' 중

이별 후 성장의 인식

이별한 후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할까? 온통 슬픔과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고, 자신에 대한 가치를 잃어버리는 경험만을 할까?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이별 후 개인적인 성장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메릴랜드대학 상담심리학과 Margit I. Berman교수 팀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적어도 이별 후 한 가지 이상의 긍정적인 경험을 보고한다.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신감이 높아진 것, 파트너를 더 잘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관계에 대해 전반적으로 더 지혜로워진 점, 이별 경험을 통해 친구들과 우정이 더욱 견고해진 점 등이 이별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긍정적인 면이다. 이별 후 경험하는 이 같은 면들은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보다 성숙하는 개인적인 성장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괜찮아, 자유롭게, 자, 훨훨 바람을 따라 지켜볼게 할 수 있도록, 봐, 벌써 하늘을 날아' '종이비행기'의 첫 소절은 힘든 일을 겪어낸 후 긍정적인 면들을 발견하고, 자신이 이전보다 좀 더 성장을 지각했을 때 갖는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윤하는 힘들었지만, '벌써 하늘을 날아' 라며 고통스런 시간들을 이겨낸 자신을 대견해하며, 더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보라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별 후 윤하처럼 성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까?

먼저, 자신이 경험한 사랑을  균형 있게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별 직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 슬픔, 불안 등 극심한 부정적인 감정에 시달린다. 동시에 머릿속에는 행복했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이 번갈아가며 떠오른다. 때문에 슬프다가 화가 나고, 그 사람이 그립다가 미워지는 양극단의 힘든 감정을 오가게 된다. 여기서 이별에 성공하기 위해 중요한 건 나에게 양 극단의 감정을 오가게 하는 그 기억들 모두가 내 사랑의 모습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윤하는 '때론 힘들었고, 때론 행복했던'이라며 지나간 사랑의 두 모습을 모두 바라본다. 또, '내내 함께였고, 내내 외로웠던'이라며 사랑하는 동안 지지받았던 순간과, 홀로라고 느꼈던 순간이 함께 있었음을 인정한다. 지난 사랑을 애써 좋은 것으로 포장하지도, 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고 폄하하지도 않고,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함께 보는 것. 이별에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나아가 이별 후 지금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별 후 분명 감정적으로 힘든 면이 많겠지만, 연애기간 동안 상대방에게 소모했던 시간을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혼자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시작해볼 수도 있다. 슬픔 가운데서도, 이별로 인해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해진 자신의 일상을 발견했다면, 성공적인 이별을 위한 발판은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네 탓도 내 탓도 하지 않기


이별한 후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생각 중 하나가 바로 '왜' 이다. 사랑이 파국을 맞게 된 원인을 찾다보면 '내가 잘못해서'라며 죄책감을 갖거나, '그 사람의 이 면 때문에'라며 상대방을 탓하기 쉽다. 그런데 Magit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별 후 성장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이별의 이유를 '내 탓'도 '네 탓'도 아닌 '관계 그 자체'에서 원인을 찾는다고 한다.

즉, 내가 못나서도, 네가 못 되어서도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조합이 잘 안 맞아 이별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Magit 교수는 상호관계 자체에 원인을 두는 것이 나와 상대방의 고유한 특성 자체를 깎아내리지 않고 이별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윤하의 노래 속 커플은 이를 알고 있었던 듯하다. '우리 사일 백 번 이어보려 했지만, 날카로워져만 갔던 모서리'. 이는 네 잘못도 아니고 내 잘못도 아니고 우리 둘이 만든 관계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다. 즉, 지금 우리의 관계가 주어진 환경과 상호작용하기에는 너무 힘들고 개선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넌 매번 내게 말했지 절대로 서로를 미워하기 전 이별이 곧 배려'는 '네 탓'으로까지 문제가 비화되기 전에 관계 안에서 결론을 맺자는 제안이다.

어떤 이유든 아프지 않은 이유는 없겠지만, 나와 상대방의 고유한 특성보다 관계에서 원인을 찾는 건, 다른 사람과의 다른 상호작용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성장의 가능성을 높인다. 다음번에 맺을 관계는 지금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때는 환경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번 관계가 끝나더라도 너와 나의 존엄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때문에 노래 속 커플은 이별을 하면서도 서로의 존엄성에 상처를 주지 않고 '맘을 반듯이 접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시간의 가치를 인정하기

이제 나의 지나간 사랑에서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모두 찾아보았고, 이별의 원인도 생각해보았다. 그럼 지난 사랑을 어떻게 정리하고 규정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남는다. 지나간 사랑은 그냥 다 잊어버리면 되는 걸까?

연인 사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을 수 있는 가장 친밀한 관계 중 하나다. 어린 시절 엄마와의 애착관계에 못지않은 깊은 애착이 두 사람 사이에는 형성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관계가 평생 우리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듯, 연인관계는 알게 모르게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흔적을 남긴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고, 때로는 이렇게 해선 안 된다는 깊은 깨달음을 남기기도 한다.

이런 관계를 그냥 다 잊고, 그 시간을 없었던 시간으로 여기겠다는 것은 나 자신의 시간과 가치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기억을 모두 지운다는 것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나 가능하지, 갑작스런 사고나 병으로 인한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는한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나의 지난 사랑의 과정과 시간은 그대로 가치 있게 간직하는 것이 좋다. 내가 경험한 관계에서 좋았던 점은 간직해 일상의 원동력으로 삼고, 힘들었던 점은 다음 사랑을 위한, 그리고 나를 변화시킬 발판으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

윤하는 지혜롭게도 이 지점에도 도달했다. '갖고 있긴 너무나도 아팠겠지만, 그건 그만큼의 사랑이었어' '다신 내가 걷지 못할 길이겠지만, 잊지 못할 풍경들 이었어'는 지난 사랑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고, 내 인생에서 가치 있는 시간들이었음을 인정하는 표현이다. 때문에 윤하는 '지난 날과 오는 날의 사이에서 서서' 두려워하지 않고 'Hello, hello, hello, hello' 라며 설레일 수 있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분리에서 오는 불안은 분리 자체가 아니라 분리의 실패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이별 자체는 실패가 아니며 그 이별을 어떻게 치러내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다. 우리가 어머니와 분리되어 가며 어른으로 성장했듯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과정을 치러내면서도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이별에 이른 관계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지금 이별을 겪고 있는 상황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균형있게 살펴보고, 내 탓도 상대방 탓도 하지 않으며, 지난 시간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별을 통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새로 시작된 2018년에는 이별이 두려워서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과오는 저지르지 말자.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사랑 그 자체는 물론, 이별마저도 가치 있는 것이다. 지난 이별로 인해 힘들다면, 그리고 이별이 두렵다면 윤하가 들려주는 성장담에 귀 기울여 보자. 그리고 '하루만큼 어른이 되어 가는' 기쁨을 놓치지 말아보자.

* 참고문헌
 Magit I. Berman, Ty Tashiro & Patrica A. Frazier <이별 후의 개인적인 성장>
- 2011, Shane J. Lopez 편, 권석만, 박선영, 하현주 공역 '역경을 통해 성장하기' 학지사  중 제2장-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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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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