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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내기를 제안하고 싶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새해를 맞아 '책 몇 권 읽기'같은 계획을 스스로 세운 적이 있거나, 또는 그런 사람이 주위에 한 명은 있었다,에 100원을 건다.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지 못한(않은) 책에 대한 갈증과 부담이 늘 마음 한편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새해가 되면 '올해 책 100권 읽기' '일주일에 한 권 읽기' 같은 계획을 세우고,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계획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책 목록을 보며 자신의 게으름에 한숨을 쉬기도 한다.

사실 이건 내 이야기이다. 새해가 되면 작년에 미처 읽지 못한 책과 올해 읽고 싶은 책을 다이어리에 적어놓기를 15년 동안 반복했다. 결과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다. 작년에도 유행하는 페미니즘 책들을 도대체 몇 권이나 사들인 건지, 열 권 안팎이던 여성주의 책이 서른 권을 넘겼다. 이 중 끝까지 다 읽은 책이 3분의 1, 절반 정도 읽은 책이 3분의 1, 나머지는 표지만 겨우 넘겨봤을 뿐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펴낸 '국민독서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2015년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사람은 전체 성인의 65.3%에 지나지 않는다. 성인 세 명 중 한 명은 일 년 내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혹 바로 이 세 명 중 한 명에 속한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탓하지는 말기 바란다.

독서량은 '책 읽는 문화'와 관련이 깊어서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도서관 수, 여가 시간, 전문 인력, 도서 관련 프로그램 등 얼마만큼 사회에 독서 기반이 갖춰졌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가운데 공공도서관 수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그나마 있는 도서관 이용률(만 15세 이상 국민 중 1년에 1회 이상 공공도서관을 이용한 사람의 비율)도 32%로 낮다.

많은 이들이 직장생활과 육아, 자기계발에 쫓겨 책 한 권 읽을 틈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에선 오락거리가 쉴 새 없이 새어 나와 별다른 정신노동 없이도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어쩌면 굳이 책을 손에 쥐는 것이 오히려 유별난 행동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읽을 책 목록을 새 다이어리에 적어놓았다. 책을 읽으면 그냥 좋다. 영화관과 맛집에서의 즐거움이 각각 다르듯, 독서가 주는 독특한 만족감과 행복이 있다. 종이를 만지고 활자를 읽는 것은 내게 편안함을 준다. 처음 알게 된 지식과 새로운 시각, 감동을 얻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늘 성에 차지 않는다. 좀 더 열심히, 많이 읽고 싶다.

만일 걸어서 10분 거리에 장서량이 넉넉한 공공도서관이 있다면, 그곳에 좋은 책을 권해줄 사서가 있다면, 게다가 다양한 독서프로그램까지 마련되어 있다면 아마 내 독서량은 분명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고 독서의 질도 깊어질 것이다. 아직은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어있지 않으니 자력갱생하는 수밖에 없다. 새해를 맞아 '지키지 못할' 독서 계획을 세웠거나 책을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소개한다.

1. 준비단계

* <매일 읽겠습니다> (황보름 지음 / 어떤책 펴냄)

 <매일 읽겠습니다>
 <매일 읽겠습니다>
ⓒ 어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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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싶은데 아직 책읽기가 낯설거나 엄두가 나지 않을 때, 우선 다른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무슨 책을 읽는지 들여다보면 어떨까. <매일 읽겠습니다>는 '100퍼센트의 독서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황보름 작가의 첫 책이다.

이 책은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난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습관처럼 읽어 온 평범한 사람이 책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성인이 되어 자신의 경험담과 책에 대한 생각을 책으로 펴냈다. 책장을 넘길수록 책 이야기만 나오면 수다스러워지는 감수성 풍부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베스트셀러 읽기' '베스트셀러에서 벗어나기' '두꺼운 책 읽기' '천천히 읽기' 등 53꼭지의 글에는 책과 친해지기 위한 그만의 소소한 팁들이 빼곡하다.

'책을 읽고 싶은데 아직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 처음엔 다수의 취향에 기대 보길 추천한다. (중략) 이렇게 계속 읽다 보면 자신만의 취향이 생겨, 이제 더는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읽거나, 읽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21쪽)

'책을 읽기 시작하며 타이머를 켠다. 20분 동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책만 읽는다. 알람이 울리면 잠시 쉬다가 다시 타이머를 돌린다. 또 책에 집중한다. 한 번에 20분은 무조건 읽게 되므로 타이머를 세 번만 돌려도 한 시간을 '집중'해 읽는 게 된다.' (69쪽)


일 년 단위로 책 목록을 작성하는 나와 달리 저자는 한 달마다 이를 기록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책 제목을 적고, 제목 앞에는 그 달에 몇 번째 읽은 책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번호를 매긴다. 이렇게 하면 독서 패턴과 읽는 속도가 저절로 파악이 된단다.

'한 달이 보름 정도 지났을 때가 가장 긴장된다. 지난 2주간의 독서를 총평하며 앞으로 2주간의 계획을 세워야 할 시간. 스스로 납득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책 제목 앞에 3이나 4가 쓰여 있는 걸 나는 참지 못한다. (중략) 남은 2주 동안은 유독 얇고 쉬운 책을 신중하게 읽어 나가며 목록을 채운다. 바보 같은 짓인 줄 알면서도 자주 이런다.' (256쪽)


이런 꼼수를 부리기도 하지만, 그가 책 목록을 작성하는 이유는 '허전한 일상의 틈을 켜켜이 메워 준 책, 감정의 바닥을 드러낸 나에게 싫증을 내는 대신 곁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선생님처럼 근엄하게 조언도 해준 책'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저자라고 해서 느긋하게 앉아 독서할 여유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취업을 위해 토익공부에 몰두하고 야근에 쫓기며 바쁜 삶을 살았다. 그는 '내 독서의 팔 할은 틈틈이 독서'였다며 조각난 시간을 찾으라고 권한다. 일례로 그는 머리를 말리면서도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기도 한다.

53가지 이야기가 담긴 사이사이 메모를 할 수 있는 스케쥴러가 들어 있다. 맨 뒤에는 노트가 붙어 있다. 저자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가면서 독서일기까지 기록한다면 이 책은 100퍼센트까지는 아니어도 '50퍼센트 독서가'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 청어람미디어 펴냄)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청어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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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엔 '고양이 빌딩'이라 불리는 유명한 건물이 있다. 언론인 겸 평론가로 일본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다. 건물 한 면에 고양이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어 고양이 빌딩이라 불린다. 수만 권이 넘는 책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아예 서재용으로 지은 건물이다.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책으로 가득한데, 지금은 책이 더 늘어나 다른 건물에 제2서고를 또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는 50년 가까이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하며 깨달은 독서론과 서재 이야기, 그리고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생태학이나 경제학 등 다양한 전문 분야의 책을 펴냈다.

책을 통한 '독학의 산물'이라 말한다. 그가 소개하는 독학의 방법이 흥미롭다. 우선 돈을 많이 들고 서점에 간다. 관련서가 진열된 서가로 가서 일일이 책들을 살펴본다. 그 중 가장 정평이 나 있는 입문서를 세 권 정도 고른다. 이때 머리말, 맺음말, 목차 정도는 반드시 훑어보고 경향이 서로 다른 책으로 구입해야 한다. 잘 모르는 분야에 발을 들여놓는 방법은 이렇게 간단하다.

저자는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엄청난 양의 책과 자료를 읽는 것으로 유명하다. <뇌 연구 최전선>이란 글을 쓰기 위해 500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그는 말한다.

'왜 이렇게까지 공부를 하는가 하면, 기본적으로 이런 지적 욕구는 책을 쓰기 위한 욕구가 아니라 제가 본래 가지고 있는 '어떻게 해서든 알고 싶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욕구 때문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립니다만, 이는 저만이 가지고 있는 욕구가 아니라 분명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입니다.' (20쪽)


책을 많이 읽고 싶어 하는 내겐, 책 후반부에 나오는 속독법에 관심이 갔다. 도표가 많은 책은 도표 중심으로 책을 본다. 문장을 하나하나 읽지 말고 단락 단위로 첫 문장만 차례차례 읽는다. 어려운 내용이라도 책 전체를 대충 한 번 훑어본다. 독서 대가가 알려준 팁이니 참고할 만하다.

2. 실전

* <베스트셀러 30년>(한기호 지음 / 교보문고 펴냄)

 <베스트셀러 30년>
 <베스트셀러 30년>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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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책을 찾아 나설 차례다. 친절하게도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 동안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20위 안에서 든 책 600권을 소개해 놓은 책이 있다. <베스트셀러 30년>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며 출판비평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한기호씨가 2011년 펴낸 책이다. 판매량을 늘리려 사재기를 하다 처벌을 받았거나 저작권 문제로 절판되는 등 결격사유가 있는 책들은 제외했다.

연도별 시대상과 당시 인기를 끈 책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우리나라 출판의 역사도 되짚어볼 수 있다. 책 한 권으로 30년 치 베스트셀러 대강의 줄거리와 요점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건 이 책의 큰 미덕이다. 이 책에 나온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는 것도 좋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의 욕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못 읽은 책'에 대한 미련과 불안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 주저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 한 권으로 '밀린 과거사'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지금 이 시대의 욕구를 반영한 새로운 베스트셀러를 차근차근 읽으면 된다.

* <책을 읽을 자유>(이현우 지음 / 현암사 펴냄)

 <책을 읽을 자유>
 <책을 읽을 자유>
ⓒ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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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이나 철학, 인문학, 역사처럼 내용이 묵직한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책을 읽을 자유>는 그들의 입맛에 맞을 다양한 책들을 모아 소개한 서평집이다. 저자 이현우 씨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올린 서평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그의 서평은 독자를 책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고 들어간다는 장점이 있다. 어려운 내용의 책임에도 마치 쉽게 읽어 내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소개한 책을 읽은 뒤 서평을 한 번 더 읽어본다면 나와 저자의 시각이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비교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서평가라는 이름을 처음 알린 이권우의 <죽도록 책만 읽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정희진처럼 읽기>도 책을 선택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

3. 책을 읽거나, 읽지 않았다면

* 장정일의 독서일기 1~7 (장정일 지음 / 범우사 펴냄)

 <장정일의 독서일기>
 <장정일의 독서일기>
ⓒ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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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뒤엔 간단하게라도 책 읽은 감상을 적어두는 게 좋다. 하지만 어떻게 적어야 할지 막막하다면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어보면 좋다. 이 책은 소설가 장정일이 1993년부터 2007년까지 쓴 독서일기를 모은 것이다.

일기는 솔직하고 거침없다. '2월 25일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읽다. 그는 힘이 쪽 빠졌다'(18쪽)처럼 두 줄로 끝날 때가 있는 반면, 두 쪽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현재, 저자는 사회를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쓴 칼럼을 통해 독자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의 열린 시각과 시대를 해석하는 통찰력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 책을 읽으면 짐작할 수 있다.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피에르 바야르 지음 / 여름언덕 펴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여름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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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고도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제목만 보고 우스갯소리로 가득한 책이라 짐작하면 오산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는 책을 전혀 읽지 않거나, 책을 대충 훑어보거나, 다른 사람이 하는 책 이야기를 엿듣거나,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 등 '금기'나 잘못된 독서법으로 알려진 다양한 상황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대처법을 제시한다.

책의 저자인 피에르 바야르는 파리 8대학의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로 독서와 비독서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있다는 고정관념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책을 읽지 않아도 전혀 기죽을 필요 없다. 다만, 이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당당해지기 위해선 우선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모순이긴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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