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현 X우분투 'WHITE RABBIT'전시 중 관객 인터뷰 중인 정강현 작가.

정강현 X우분투 'WHITE RABBIT'전시 중 관객 인터뷰 중인 정강현 작가. ⓒ 우분투


바야흐로 2018년 개의 해, '무술년'이 밝았다. 유난히도 추운 영하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바쁜 도시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연말 < 정강현+우분투: White Rabbit > 전시/공연이 남산 복합문화공간 정다방 3rd place에서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열렸다. 복합예술그룹 우분투는 작곡 정강현, 영상 김갑래, 무용 김봉수, 김도연 네 명의 예술가가 2013년 결성했다.

Ubuntu라는 이름 때문일까. '공유'에 기초한 아프리카 사상이자 동시에 컴퓨터 운영체제에서 리눅스와 윈도우의 호환을 매끄럽게 담당하는 우분투 OS처럼, 그룹 우분투는 서로의 존재로 함께 빛이 난다는 것이 이번 작품에서 느껴졌다.

일반 가정집이 개조되어 일상과 맞닿아 있지만, 예술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낯설게 그을려진 공간에서 < White Rabbit >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존재와 의식 사이에서 서로를 갈망한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신비감과 분명 일상의 공간이었을 장소가 주는 미로와도 같은 느낌이 관객에게는 작가가 숨겨 놓은 의도를 찾아가는 하나의 카드게임 같은 느낌을 준다. 모두 다섯 개의 방에 놓여있는 다양한 키네틱 아트와 설치물들, 그리고 공간에서는 매일 저녁 무용과 결합한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두 번째 방 '미궁 안의 우리_틈' 에서의 두 무용수들. 현대인에게 미디어가 탄생되는 순간을 '줄탁동시'에 빗대어 표현했다.

두 번째 방 '미궁 안의 우리_틈' 에서의 두 무용수들. 현대인에게 미디어가 탄생되는 순간을 '줄탁동시'에 빗대어 표현했다. ⓒ 박순영


각 방의 입구에는 방의 이름이 적혀 있다. 첫 번째 방 < BLACK RAIN >은 내던져진 존재와 공간과의 조우다. 어두운 방의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려진 분해된 스피커와 유리, 전선은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별처럼 보이기도 하고, 도시인의 차디찬 꿈이 검은 비처럼 우수수 쏟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검정 마스크에 검정 의상의 무용수,도시 속 한 자아는 그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건설현장의 소음, 컴퓨터로 발진된 빗소리의 모방음, 전화수신음 등 기억의 희미한 선적인 소리들과 마주한다. 내면의 의식을 불러 일깨우는 것 같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몸짓이다.

첫 번째 방과 두 번째 방의 연결통로에는 작곡가가 철망 너머에 앉아 선글라스에 흰토끼 머리띠를 두르고 전자음향을 실시간 제어하는데, 그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소리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DJ 같아 보인다. 즉 소리를 만들면서도 소리가 하는 일에는 관심 없거나 관여하지 않는 것 같은 컨셉이다. 아니면,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토끼는 대범한 것일까? 옆에는 작은 모터 여러개와 그 끝에 매달린 고무줄과 종들로 만들어진 키네틱 아트가 의자로봇처럼 앉아 소리를 내고 있다.

두 번째 방 <미궁 안의 우리_틈>은 하나의 알이다. 천장으로부터 백열전구가 드리워져 있고, 알 안의 자아는 그 아래 웅크리고 있다. 몽롱한 a단조 3화음의 사인파와 강렬한 타격음, 그리고 구슬같은 긴 상행 글리산도 끝에 명징한 음알들이 하나씩 터져나오고, 그것에 전구빛이 싱크로니제이션 되어 번쩍거린다. 알 안의 미디어는 음악과 빛이다. 방 밖의 어미, 검은 도시인은 단절된 관계의 틈을 끊임없이 미디어를 통해 두드리고, 존재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미디어는 '줄탁동시'의 순간, 도시인들에 의해 소환되고 탄생된다.

10년 넘게 미디어 관련 A/S 서비스 센터에서 근무한 작가

 세번째 방 'What do you see?'. 미디어를 들고 있지만 사실은 미디어에 갇혀있다.

세번째 방 'What do you see?'. 미디어를 들고 있지만 사실은 미디어에 갇혀있다. ⓒ 우분투


세 번째 방은 < What do you see? >. 알 밖과 안의 자아가 잠시 만나지만 곧 한 자아는 또 다시 미디어에 의해 통제된다. 전자음향은 앞 방의 a음으로부터 위로 b음, 아래로 g#음으로 확장되었다. 검은 마스크의 자아가 목석처럼 서서 들고 있는 아날로그 TV 속 추상적인 파형이 진실일까? 그 양 옆 또 두 대의 아날로그 TV 속에서 일렁이는 또 다른 자아의 얼굴 모습이 진짜일까. 추상파형과 양 옆 트래킹된 얼굴 모두 짧은 단위를 반복하며 질주하는 전자음향에 싱크로니제이션 되어 움직이며, 우리가 보는 미디어 속 진실은 무엇인지, 그 속에 갇혀 자유롭지 못한 도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자유롭지 못함은 곧 또 다른 꿈을 갈망한다. 세 번째 방과 네 번째 방을 연결한 거실 통로와 현관 유리창에 두 자아가 관객에게 등을 내보이고 섰다. 그들의 등에는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의 영상이 프로젝션 되어 꿈같이 펼쳐흐른다. 한 자아가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난로 주전자의 수증기가 낀 유리창에 도시의 아파트 모습을 열심히 끄적거린다. 어두운 가운데 다른 음악 없이, 고요한 정적 가운데 유일한 끄적거리는 소리와 자연의 풍경, 그리고 어두운 창문에 새겨진 아파트의 모습이 왠지 슬프기도 하지만 동화같이 아름답다.

네 번째 방 <사각형 미로>는 두 자아의 팽팽한 대결이다. 알록달록 형광 체스판 가운데 승자의 종이 놓여있다. 그것 주위에 있는 여러 형태의 쇳조각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로봇처럼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듯이 간헐적으로 들리는 b음의 긴장감 속에 두 자아는 서로의 손을 잡을 듯 말듯, 제칠 듯 말듯 망설이며 움직인다. 누가 종을 먼저 울릴 것인가. 결국 한 손이 다른 손을 맞잡고 제어하며 낮은 b음의 승자의 종을 울린다.

 네 번째 방 '사각형 미로'. 체스판 위 두 자아의 팽팽한 대경. 누가 먼저 종을 울릴 것인가.

네 번째 방 '사각형 미로'. 체스판 위 두 자아의 팽팽한 대경. 누가 먼저 종을 울릴 것인가. ⓒ 박순영


마지막 방 <토끼의 증언>은 생생한 현장의 소리이다. 전시기간 동안 방문한 관객에게 도시의 삶, 꿈, 소음에 대해서, 행복에 대해 질문한 답변들을 매일마다 편집해 설치된 전화기에서 들려준다. 관객이 방에 입장하면 센서로 감지해 그 소리들이 흘러나온다. 작가는 이것을 사운드스케이프에서 더 나아가 환경과 소음에 대한 도시인의 '감정'으로 규정해 'EMOTIONSCAPE'라고 이름 짓고 작업했다. 지금까지 무용수의 퍼포먼스는 마지막 방에서 도시 속 미로를 끊임없이 탐험하는 우리들 토끼들의 목소리로 귀결되며, 알쏭달쏭한 삶이지만 명확한 목소리를 가진 도시인들 개개인의 중요성이 왠지 느껴진다.

전자음악 작곡가로서, 실시간 제어, 키네틱 설치, 아날로그 TV까지 다채롭게 활동하는 정강현과 그룹 우분투의 이번 작업은, 2014년 문화역서울 284에서<편안한 어둠>의 공연보다 더욱 드라마틱했고, 2016년 정강현의 < What do you see? > 개인전보다 기술적으로 발전했다.

이번 작품과 같은 맥락이지만 2017년 12월 광주아시아문화의전당 <분실물보관소에서의 연설> 작업에서는 광주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보여줬다면, 이번 서울 정다방에서의 < White Rabbit >은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일상으로 살아가는 '인간'을 '미디어'와 여러 상징적 기호로 접근하며, 융복합그룹 우분투의 특징과 정강현의 기술적 강점을 작품의 내러티브로 잘 살렸다. 'Emotionscape'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접근한 것에서는 작가가 사운드와 미디어라는 '현상' 너머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소리를 관찰한다는 것, 감정을 관찰한다는 것은 음악가라고, 사운드 작가라고 해서 모두 다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닐지도 모른다. 작품 설명서에도 나와있는 바, 정강현 작가가 2005년부터 2017년 6월까지 10년 넘게 생계 때문에 미디어/방송 관련 24시간 A/S 서비스 센터에서 전화 근무했던 것, 즉 기계 미디어와 충돌한 수많은 도시인들의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마주했던 경험이 미디어 속 도시인의 소외와 왜곡으로 표현된 '자초지종'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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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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