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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 어른들끼리는 경험하기 힘든 낯선 일들을 겪습니다. 오직 육아하는 이 때만, 부딪칠 수 있습니다. 애 키우는 동안 나를 흘려보내는 것 같아 좌절감에 글을 씁니다. '너희만 크냐? 엄마도 같이 크자'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육아일상 속 메세지를 담아 글을 씁니다-기자말

방콕 6일째, 강릉 아쿠아리움으로 떠나다

6일간의 어린이집 겨울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추운 날씨에 어린 두 녀석이 아플까봐 집에서 몸 사리기를 닷새. 구석구석 몸이 근질거리던 큰 아이는 폭발해버렸다.

"여행가요, 여행!"

사실, 엄마아빠도 둘째 임신 이후 여행 금단현상에 시달렸다. 시리고도 맑은 강원도 공기를 문 밖에 두고 즐기지 못했다. 나가고 싶었다. 큰 아이의 '여행 가자' 무한 반복 노래를 좋은 핑계로 삼았다. 가까운 강릉으로 짐을 꾸려 경포 호수 옆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첫째 취향대로 갈 곳을 정했다.

"아기 상어 뚜 루루 뚜루~ 귀여운 뚜 루루 뚜루~"

진짜를 보여줄게, 우리 부부는 몹시 들떴다. 드디어 입장! 물고기, 거북이, 상어, 펭귄, 수달, 불가사리... 그렇게 보고 싶어 했건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막상 유리벽 너머 바다 생물을 만나니 딸은 휙, 휙. 대충 보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친다.

대단한 환호성을 기대했지만 아이는 심드렁했다. 비싼 입장료에 비례해 비싸게 즐거워 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엄마 마음 같지 않았다. 5분 만에 1층 관람을 끝냈다.

윗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거북이 먹이를 주는 체험 코너가 보였다. 크고 진한 글씨로 적힌 '거북이를 만지면 아파요' 안내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한 가족이 거북이를 들고 마구 사진을 찍었다. 힘 조절 할 줄 모르는 아이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거북이는 고통스러워했다. 몰상식한 사람들! 보기 민망하여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갔다.

바다생물 체험코너에서 불가사리를 만져보는 딸
 바다생물 체험코너에서 불가사리를 만져보는 딸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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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사 드는 부끄러운 마음

2층 전시관으로 발을 디디자마자 체험코스다. 아이들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손 끝으로 오는 감각을 즐긴다. 비싼 뽕을 드디어 뽑을 수 있겠다는 마음에 아이를 재촉하여 데려갔다. 밟고 올라서면 다칠 수 있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아이를 낮은 단 위에 올렸다. "꺄하하" 바로 웃음이 터진다. 대성공이었다.

별 모양의 불가사리가 예뻤나 보다. 불가사리를 만져보겠다기에 팔까지 걷어 주고 아이 앞에 등이 붉은 녀석을 대령했다. 길게 잡아 1분을 예상했던 둘의 만남은 급기야 10분을 넘어갔다. 큰 딸은 꼼짝 않고 불가사리를 들었다 놨다 했다.

"사모님."

정중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떨어진 물을 닦고, 수시로 바다 생물들의 안위를 확인하는 직원분이셨다.

"딛고 올라서면 아이가 다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생물들은 물 속을 가장 편안해 합니다. 물 밖으로 꺼내지 말고 물 속에 있는 상태로 체험해 주세요."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했다. 여린 거북이 휘두르던 모자를 욕할 처지가 아니었다. 안 다치게 잘 보고 있으면 된다는 안일한 마음, 불가사리 정도는(?) 물 밖에서 괜찮을 거라는 비과학적 핑계. 아이 안전에 불감했고, 애먼 불가사리를 괴롭혔다. 부끄러운 마음에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얼른 자리를 떴다.

어디에나 있던 '내 아이는 괜찮아'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마음으로 배려하지 않았던 일을 더 고백하고자 한다.

이웃 중에 윗집, 아랫집, 혹은 대각선 어딘가의 집.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밤낮 가리지 않고 피아노 연주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낮에는 제법 듣기 좋은 선율이라 웃으며 넘겼지만, 밤 9시가 넘어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낮은 저음 비트를 연주할 때면 욕이 나왔다.

또 아랫집 남자 아이는 동물 흉내를 잘 낸다, 특히 밤이면 더 심했다(야행성인가?). 부엉이인지 호랑이인지 애매한 울음을 낸다. 흐으우웡~ 흐으우웡~ 가끔 깔깔 웃음 소리도 나는 걸 보면 사람이 맞긴 하다.

그럴 때마다 이웃을 흉봤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는 관대했다.

블럭을 상자째 와르르 쏟아도, 꺅 소리를 내질러도, 울며 떼써도, 발 뒤꿈치에 힘주어 걸어도 그냥 넘겼다. 분명 마음 한 구석, 이웃에게 방해 될 행동임을 은연 중에 알고 있었다. 때때로 양심이 나를 꾸짖으면 아이 키우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항의한 적 없으니 잘 안 들릴 거라 애써 외면했다.

우리 집도 누군가에겐 개념 없는 가정이었겠지. 그럼에도 너그러운 이웃들이 아기 울음 참아주고, 이해해줘서 평화를 누렸다. '나는 왜 받은 만큼도 갚지 못하는가?' 문득 부끄러움이 차오른다.

'이만하면 됐다'며 의도적으로 외면하지 말고 '웬만하면' 규칙을 지켜야겠다. 웬만하면도 기준을 함부로 낮춰잡지 않을 것이다.



태그:#내로남불, #내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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