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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엽서에는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라고 쓰여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엽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엽서에는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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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지난 주 금요일(5일)에 받지 못한 우편물 도착 안내가 붙어있었다. 보낸 사람 이름에 "문재인"이라고 적혀 있어서 '설마~' 하고 있었다. 얼마 후, 재방문 예정 시간에 맞춰 집배원 아저씨가 우편물을 갖고 도착하셨다. 봉투를 받자마자 깜짝 놀랐다.

보낸 사람은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이 글귀를 보자 봉투를 열어보는 손이 덜덜 떨렸다. 봉투 안에는 엽서 2장과 대통령 비서실에서 온 편지가 있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 학생들은 2017년 7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문정왕후어보 관람 초청장을 보낸 적이 있다. 문정왕후어보 반환운동에 최선을 다한 학생들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 대통령과 함께 가고 싶다는 내용이었다(관련 기사 : "우리 만나요", 학생들이 문재인 대통령에 편지를 보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 학생들이 2017년 7월 23일 성남시청에 모여 문정왕후어보 관람 초청장을 만들었다. 초청장은 7월 24일 청와대로 발송됐다.
▲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 학생들이 2017년 7월 23일 성남시청에 모여 문정왕후어보 관람 초청장을 만들었다. 초청장은 7월 24일 청와대로 발송됐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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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초청장을 지난해, 문재인대통령에게 보냈다.
▲ 문정왕후어보 특별전 초청장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초청장을 지난해, 문재인대통령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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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는 문정왕후어보 반환운동을 계기로 2013년 결성돼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동아리다. 학생들은 대통령 전용기를 통해 문정왕후어보가 돌아왔는데 대통령도 실물을 보지 못했고, 자신들도 반환운동만 했지 직접 어보를 본적이 없다면서 함께 전시회에 가자고 제안했다.

"귀하의 민원내용은 대통령과 함께 전시 예정인 문정왕후어보의 관람을 희망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라고 적혀있다.
▲ 특별전 초청 관련 답변 "귀하의 민원내용은 대통령과 함께 전시 예정인 문정왕후어보의 관람을 희망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라고 적혀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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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학생들이 직접 꾸민 초대장은 대통령 비서실로 발송됐고 초대장을 찍어서 국민신문고를 통해 온라인으로 접수했다. 온라인 민원의 경우,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에서 답변을 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귀하의 민원내용은 대통령과 함께 전시 예정인 문정왕후어보의 관람을 희망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중략) 이번에 공개되는 환수 어보를 각계각층의 더 많은 분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홍보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차마 아이들에게 문화재청의 답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청와대에 서신을 전달하겠다는 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비서실에서 쓴 답장에는 "업무 처리 실수로 너무 늦게 전달되는 바람에 여러분의 초청장을 대통령님께 제때 올려드리지 못해 사과드린다"라면서 "대통령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시회를 갔더라면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글을 보고 때 아닌 눈물바람이 시작됐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 학생들이 직접 초청장을 만들고 있다.
▲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 학생들이 직접 초청장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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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문화재청은 문정왕후어보와 관련 '한미수사공조를 통해 환수한 것이지 시민단체 때문에 돌아온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민단체도 노력했지만 지난해 돌아온 어보는 문화재청의 공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그렇게 공로를 빼앗긴 사연은 신문지면으로, 온라인 기사로 퍼져 나갔으며 심지어 라디오, 1인 방송도 시민단체의 억울함을 전파했다. 그러나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청소년연대 앞으로 특별전 개막식 초대장이 2장 밖에 나오지 않아 2013년부터 활동했던 형은경 학생과 김수나 학생이 청소년연대를 대표해 초대됐다. 특별전에는 과거 SBS 여인천하에서 문정왕후 역으로 열연 전인화씨도 참석했다.
▲ 문정왕후어보 특별전 청소년연대 앞으로 특별전 개막식 초대장이 2장 밖에 나오지 않아 2013년부터 활동했던 형은경 학생과 김수나 학생이 청소년연대를 대표해 초대됐다. 특별전에는 과거 SBS 여인천하에서 문정왕후 역으로 열연 전인화씨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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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울지 않는 나도 문정왕후어보만 떠올리면 눈물을 흘리게 됐다. 그 이유가 순수한 마음으로 임했던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도와준 시민들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에게 "앞으로도 우리 문화재의 가치와 위상을 제대로 알리고, 지키는 일에 여러분의 멋진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라는 청와대 비서실의 편지는 정부로부터 처음 들은 '수고했다'는 칭찬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 연대 단장인 정서연 학생(경기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은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진면목을 찾고 세상과 굳게 악수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매진하겠습니다"라며 즐거워했다. 부단장 황승민 학생(과천외국어고등학교 2학년) 역시 "늦게라도 답을 받아서 뛸 듯이 기쁩니다. 문화재 환수를 위해 앞으로도 청소년들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김수연 학생(과천외고 2학년)은 "답장이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와서 정말 즐거워요. 초대장을 작성했던 당시 느꼈던 설렘과 기쁨이라는 감정을 다시 맛보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청소년 연대 활동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세요"라면서 웃어보였다.

2017년 7월초, 문정왕후어보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 특별전에 전시됐던 문정왕후어보 2017년 7월초, 문정왕후어보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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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를 운영하면서 매번 정부에 밀려 공을 빼앗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선생님, 또 우리 이름은 없어요~"라고 슬퍼하는 아이들의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무척이나 괴로웠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 꿈이 이뤄지는데 그 공을 누가 뺏어가도 묵묵히 우리 할 일만 하자"라며 아이들에게 매번 패배주의를 안겨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셔서 감사하다. 보내준 엽서 덕분에, 앞으로 아이들에게 문화재환수운동에 대해 가르칠 때 민주시민 사회라는 것은 어떤 것이고 시민운동은 어떤 것인지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혹시나 시간이 되신다면 아이들과 꼭 한 번 문정왕후어보를 관람해주시고 직접 고생했다 어깨를 두드려주셨으면 좋겠다.


태그:#문재인대통령,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소년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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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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