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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다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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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절, 사망 등의 어떠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본사에는 책임이 없음을 동의합니다.'

7월의 뜨거운 하와이 섬, 덜그덕거리는 버스 안에 앉은 청년 둘. 그들은 '사망'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나오는 각서에 끄적끄적 서명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전 각서였다.

'황새가 날아와서 낙하산을 터트리면 어떡하지?', '안개가 껴서 착륙을 제대로 못 하면 어떡하지?', '다른 비행기랑 충돌하는 것 아니야?' 나는 호기롭게 예약을 마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온갖 잡생각들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내 몸은 비행기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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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카이다이빙 스카이다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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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추락과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백퍼 죽겠구나!'라는 것이었다. 누가 떨어지는 느낌이 하나도 없다고 했던가? 나는 이 상공 1만5000피트의 어마어마한 높이를 제대로 실감하고 있었다!

마치 갈피를 못 잡는 하찮은 민들레 홑씨가 된 기분이었다. 내 몸에 분명히 발이 달려있는데 밟을 땅이 없다. 팔을 휘저어보아도 잡히는 것이 없다.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오로지 바람의 힘에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뿐이었다.

이렇게 비행기에서 떨어지고 나면, 곧바로 구름떼와 부닥치게 된다. 순간 어렸을 때 아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빠! 저 구름들은 얼마나 폭신할까? 한 입 먹어보고 싶다." 그것은 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내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얼음 알갱이들을 만나야 했다. 마치 누군가 내 얼굴에 슬러시를 뿌린 것만 같았다. 내가 쓴 웃음을 지으며 친구들에게 "너네 구름 만져봤어? 난 만져봤어"라고 말한 것은 훗날의 일이다.

여기까지 쓴 글을 보면 대체 왜 그 비싼 돈을 주고 스카이다이빙을 했나 싶다. 최고의 경험이라던 사람들의 말은 다 거짓말이었던 것일까? 대체 이 파트너들은 뭐가 신나서 웃고 있는 것일까? 아까 차라리 환불할 걸! 등등의 온갖 의심과 후회에 빠질 때 쯤, 하늘은 참을성 없는 나에게 꿀밤을 주듯 커튼을 확 걷었다. 아, 이제야 알겠다. 사람들이 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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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사람의 두 손으로는 감히 끌어안을 수도 없을 만큼 광활한 산과 바다, 그리고 바람의 품에 안겨 넘실넘실 여행하는 작은 인간. 공격적이던 바람은 금세 꽃바람이 되어 한없이 작은 나를 안아주었다. 눈시울이 빨개졌다.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시끄럽게 외쳐도 질책하는 이가 없었다. 눈물은 주륵주륵 나오지만, 입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참 볼품없는 민들레 홑씨라고 생각했다. 갈피도 못 잡고, 땅에 정착하지도 못한 채 허공을 떠다니는 떠돌이 신세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곳은 길이 필요 없는 곳이라는 것을. 내가 가는 그대로가 온전히 길이 되어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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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생을 땅을 밟고만 산다. 그 위에서 끊임없이 길을 찾고, 헤매고, 넘어진다. 맞는 길이라 믿었는데 잘못된 길이기도 하고, 다시 돌아 가야하나 갈등하기도 하고, 차라리 길을 이탈해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있다. 왜 우리는 그럴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길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오늘도 하늘에 홑씨 하나가 흩날린다.


태그:#스카이다이빙, #정누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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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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