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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게 처음에는 낯설었죠. 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이면 어떻게 하나라고 걱정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개의치 않아요. 오히려 '혼밥'이 익숙해졌어요. 어디서 뭘 먹어야 할지 사람들과 이야기 할 필요도 없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편해졌습니다." 

얼마 전 학교 후배와 만나 나눈 대화의 일부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울 것 같았던 혼밥은 이제 삶의 일부와 편안함의 상징이 됐다. 사실 10여 년 전만 해도 혼자 밥 먹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사회 부적응자라는 '딱지'가 붙곤 했다. 점심시간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반찬을 나누어 먹었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누구와 밥 먹느냐가 그 사람의 성격을 알아보는 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는 어느 기업인의 말처럼 세상은 셀 수 없이 변했다. '밥은 함께 먹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고, 본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혼자 자유롭게 먹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혼밥 레벨' 분류표가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혼밥'을 어디까지 경험했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일종의 자가 '혼밥 진단표'였다. 1단계 편의점에서 밥 먹기부터 2단계 학생식당에서 밥 먹기, 8단계 고깃집, 횟집에서 먹기 등 단계가 높아질수록 난이도가 올라가 '혼밥의 경지'를 보여준다. 네티즌들은 자신의 레벨을 자랑하며 혼밥 애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혼자 여행하는 모습(사진=무료이미지).
 혼자 여행하는 모습(사진=무료이미지).
ⓒ 최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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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외로움, 고독함'이라는 등식도 사라지는 추세다. 영화관에는 혼자 눈물 흘리며 멜로 영화를 보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혼자 노래 부르기에 알맞은 1인 노래방도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매슬로우(Maslow)가 주장한 '인간은 소속감과 사랑에 대한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된다'는 욕구단계론이 어느덧 옛말이 된 듯하다. 바야흐로 혼밥, 혼족, 혼술 전성시대라 부를만하다. 

국내 대표적 결혼 정보회사 듀오는 최근 20~30대 미혼남녀 260여 명을 대상으로 '혼밥 인식'에 대한 설문 조사를 벌였다. 전체 응답자의 71%(186명)가 '혼밥을 즐겨 먹는다'고 응답했다. 이 중 89.2%(남 94.5%, 여 84.2%)는 한 달에 2번 이상 혼밥을 한다고 밝혔다. 남자는 한 달에 '11회 이상' 혼밥을 먹는다는 응답이 38.5%로 가장 많았다. 혼밥을 먹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체 응답자의 42.4%(남 42.2%, 여 42.5%)는 '편하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혼밥을 선택했다. '스스로에 집중할 수 있다'23.7%(남 31.9%, 여 17.1%), '외롭다'18.7%(남 6.9%, 여 28.1%) 등이 뒤를 이었다.

1인 가구 증가가 가장 큰 요인

혼자 밥 먹고, 영화 보고, 여행을 다니는 이른바 '혼자 족'이 느는 이유는 1인 가구 증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미 한국사회는 출산율 저하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해체됐고,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 홀로 사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은 2015년 기준 1인 가구가 서울에만 98만, 전국적으로 500만에 달한 것으로 추정했다. 2022년에는 현재보다 약 3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평균 초혼 연령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2014년 기준 남성은 32.8세, 여성은 30.7세로 1991년 남성 28.4세, 여성 25.6세과 비교해 약 4~5세가량 높아졌다. OECD가 펴낸 '한눈에 보는 사회상(相) 2014' 보고서를 보면, 한국 성인 인구 중 미혼자 비율은 39%로 10명에 4명꼴에 이른다. OECD 평균 미혼 비율과 비교해 볼 때 10% 포인트 이상 상회한 것으로 34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전통적인 가족관이 무너지고, 개인성향이 강해지면서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초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혼자 삶의 재미를 찾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변 눈치 보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 활력소를 느끼기에 쏠쏠한 부분도 적지 않다.

집단생활 더는 집중하기 싫어

혼자 생활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은 대부분 집단적인 관계에 집중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한 번 관계가 맺어지면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직책과 의무, 비용 등으로 스트레스 탓에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해 심리적 안정을 갖길 원한다.

채용 전문 기업 사람인에 따르면, 직장인 1000명 중 54.7%가 일부러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돼 '불필요한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집단생활과 조직에 대한 규칙 등에 얽매이기보다 홀로 생활하는 게 훨씬 편안하다는 의미다. 

SNS에서는 친구 신청을 해도 상대방이 수락해야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관계를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한다. 본인과 비슷한 취향, 목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최소한의 비용과 자신에게 도움 되는 이익 관점으로 판단하는 이른바 '온디맨드(On-demand)' 관계가 뜨고 있는 것. 필요할 때 일시적으로 맺는 관계로, 본인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심리로 볼 수 있다. 페이스북, 카페, 블로그 등 SNS를 통해 관심사를 공유하는 일들이 대표적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문제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의결하는 모습. 정부는 이날 저소득층의 주거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거급여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의결하는 모습. 정부는 이날 저소득층의 주거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거급여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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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혼자 생활하기가 편안함의 상징으로 볼 수 있지만,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도 있다. 전대미문의 청년 실업과 내수 부진, 낮은 사회적 연대로 1인 가구의 삶은 생각보다 넉넉한 편이 아니다. 변미리 서울연구원 글로벌미래연구센터장이 지난 2015년 펴낸 <도시에서 혼자 사는 것의 의미>라는 논문을 보면 상황은 매우 암울하다. 서울에 홀로 거주하는 20대부터 60대까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이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혼자 살면서 얼마나 힘들다고 느끼는지'라는 질문에 10점 만점 기준으로 '경제적 측면' (6.77점)이 가장 높았고, '감성적인 측면' 6.21점, '거주 안정성'(4.59점), '주변의 시선'(4.38점), '일상생활 편의성'(4.09점) 순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계층에서 '경제적 측면'에 대한 고충 정도를 높게 느끼는 가운데, 50대(7.18점), 월 소득이 낮을수록 더 높게 나타났다. '감성적 측면'은 여자(6.61점), 20대(6.65점), 월 소득 101-200만 원 미만(6.91점)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들은 비자발적 1인 가구로 청년과 여성, 장년층, 노인 등이며 경제적 자립도가 낮다는 특징이 있다. 빈곤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격리감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다.

변미리 센터장은 "서울에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문제는 '빈곤'과 '사회적 고립'이다"며 "소수자로서 사회와의 연결이 약화된 채 혼자 쓸쓸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 대안으로 "생활 안전성 제고를 위한 경제적 지원과 지역복지 서비스 차원의 가정지원 서비스, 심리 상담 등의 정책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실버세대를 위해 경제적 지원이라는 기존의 지원 이외에도 지역 단위의 통합 네트워크 형성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있다고 주장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무언가 집중할 수 있고 자신을 돌아보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누군가를 만나 함께 밥 먹고 대화를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반론도 있다. 문제는 혼자 있는 시간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일이다. 관계의 복잡성 속에서 홀로 재미를 찾으면서도 사회적 연대를 통해 소속감을 갖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태그:#혼자, #솔로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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