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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책에
'여기서 행복할 것'
이라는 말을 써 두었더니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 < 모든 요일의 여행> 중

책의 첫 번째 챕터에 저자가 프랑스에서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적어놓은 글이다. 나도 이 글을 읽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서 행복할 것, 여행...'

모든 요일의 여행
 모든 요일의 여행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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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런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작년 한 해 해외여행객이 2400만, 국민 2명에 한 명꼴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시대, '해외여행'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는 시대다. 그런데 여행을 떠났던 이들은 모두 그 곳에서 행복했을까 ? 나를 되돌아보면 맘 먹고 떠난 여행길이 늘, 반드시,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여행지에서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저자는 자신의 여행이 왜 그렇게 행복 했는지, 자신만의 여행 비법을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책의 목차만 보더라도 저자의 여행이, 일반적인 여행과 얼마나 다른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일상을 떠나 일상에 도착하는 여행
-일요일이 있는 여행
-단골집을 향해 떠나는 여행
-사랑스러운 결점으로 가득 찬 여행
-좋은 술을 영접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
- <모든 요일의 여행> 목차
                                 
저자의 여행이 일반적인 여행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일상을 떠나 일상에 도착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계획할 때 제일 먼저 골몰하는 것은 가고 싶은 마을을 정하는 것이다.
블로그에 정보 따위는 없는 마을,
있더라도 사진 한 장이 전부인 마을,
그런 마을의 정보 한 줄을 얻는 것은 힘겹고,
그런 마을에 가는 길은 험난하다.
... 언제나 그런 마을에 도착하고는 며칠씩 머물러 버린다.
- <모든 요일의 여행> 중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로 여행을 가 한 달을 살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닌 저자의 책에 유명한 관광지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다. 대신 여행지의 골목을 돌아다니고 재래시장에 가고 아름다운 일몰 앞에 몇 시간씩 앉아서 느낀 그 곳의 바람, 햇빛이야기가 가득하다. 한없이 느리게, 천천히, 가까이 다가가는 여행이야기가 책 속에 가득하다.

<모든 요일의 여행>
 <모든 요일의 여행>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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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박 7일 일정에 유럽 3, 4개국을 돌면서, 유명 관광지 앞에서 바쁘게 사진 한 장 찍고, 가이드가 정해 준 제 시간에 깃발 앞에 모이기 위해, 시계를 보며 종종걸음을 하는 여행과는 딴판인 여행이다.

유명한 이름을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말라고
"나 거기 가 봤어"라는 말만큼 공허한 말은 없다고
그러니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 보라고
깊숙이, 더 깊숙이, 이름이 사라질 때까지
상상하지 못한 미소는 거기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진짜 여행은 그곳에 있다고
- <모든 요일의 여행> 중

자신만의 빛깔이 오롯이 드러나는 여행, 그래서 단 한 가지만을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아일랜드로 맥주기행을 떠나고, 프랑스 브루고뉴로 와인기행을 떠나고, 남프랑스로 까뮈 기행을 떠난다. 그 곳에서 호텔이 아니라 작은 집을 빌려 일정기간 머물며 골목을 돌고, 사람 사는 풍경을 들여다본다. 자신에게는 여행지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삶터인 그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때로는 여행을 떠나와
누군가의 일상이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어이 살아야 한다.
- <모든 요일의 여행> 중

'매번 같은 곳으로 떠났는데 사람마다 다른 여행을 한다'고 말하는 저자, 결국 누구나 자신의 깜냥만큼 여행을 할 뿐이라는 저자는 자신의 깜냥에 맞는 여행을 하면서 여러 도시에서 자신만의 보석을 발견한다.

포르투갈 접경 도시 마르방의 작은 시골 술집에서는 한껏 마신 술값이 5천원밖에 안 나와 부자가 돼버린 행운을 누리기도 하고, 책에서 본 도시로 떠난 이탈리아 판자노에서는 말도 통하지 않는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 끼어 4시간 동안 고기 파티를 즐기는 색다른 경험도 한다.

모든 요일의 여행중
 모든 요일의 여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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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다시 찾은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단골술집에서는 인생진리의 한 단면을 깨닫기도 한다. 3년 전, 리스본에 5일을 머물며 무려 4일을 들렀던 특별한 술집, 그 곳에서 포르투갈 전통음악인 '파두'를 처음 듣고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하는 저자에게 술집 주인 누노는 자신의 노래를 녹음한 시디를 선물한다.

그날 밤의 특별한 경험을 마음에 새긴 저자는 리스본의 술집을 사람들에게 포르투갈에 있는 자신의 단골집이라고 소개한다. 드디어 3년 만에 그 곳에 다시 갈 기회를 얻어 설레이며 찾아간 저자를 누노는 기억하지 못한다.

너무 서운해 투덜대던 저자는 곧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은 그들의 삶에 잠깐 들렀다가 떠나는 관광객일 뿐, 그들의 일상이 아니었다고. 자신에게는 특별한 그 경험이 술집주인 누노에게는 그저 일상중의 하나일 뿐이었다고. 여행지의 그들이 하나도 변하지 않고 3년 전과 똑같이 머물러 있기를 바란 것은 자신의 지나친 욕심이었다고.

"삶은 끝없이 흐르는 거니까. 그 여정 가운데 우리를 만나기도 하고 우리와 헤어지기도 하고 우리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우리를 기억하기도 하는 거니까."
- <모든 요일의 여행> 중

모든 요일의 여행
 모든 요일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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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여행지에서 행복이 목까지 차올라 다시 올 수 있을까를 되묻곤 한다고 하는 저자는 일상으로 돌아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여행자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오랫동안 머뭇거리며 바라보면' 일상에서도 마치 여행에서 느끼던 감흥을 느끼고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한강변에서 유일하게 개발이 안 된 동네 망원동에 사는 저자는 어느 날부터 여행자의 마음으로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어느새 망원동까지 불어 닥친 변화의 바람에 오래된 집들이 철거되고 대형마트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동네의 풍경들을 마치 여행자의 의무처럼 기록하기 시작한다. 이 책의 제목이 <모든 요일의 여행>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멀리 떠나든 떠나지 않든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저자에게 일상은 다 새로운 의미로 발견되어진다.

카피라이터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저자는 여행을 '마치 다음 생을 준비하듯' 치열하게 준비한다고 한다. 그의 다음 여행이 어디일지, 그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풍성한 기록으로 남을지 기대하게 하는 책이다. 아울러 나만의 빛깔이 오롯이 드러나는 여행은 과연 어떤 여행일지, 그런 여행을 한번 기획해 볼 엄두를 내게 하는 고마운 책이다.


모든 요일의 여행 - 낯선 공간을 탐닉하는 카피라이터의 기록

김민철 지음, 북라이프(2016)


태그:#김민철, #모든 요일의 여행, #여행 추천도서, #포르투갈, #카피라이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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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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